‘미니 중수부’ 칼바람 대형 국책사업 몰아친다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6.01.20 21:36
  • 호수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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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있거나 비리 가능성 있는 사업들 리스트 만들어 관리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은 서울고등검찰청 12층에 마련된다. 외형상으로는 고검 산하지만 실제로는 검찰총장의 지휘를 직접 받는 ‘직속 부대’로 운영된다. 사실상 과거 중수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특수단 멤버들은 검찰 특수수사 분야에서도 ‘에이스’로 통하는 최정예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당장 사건이 배당된 건 아니다. 그러나 향후 굵직한 사건들, 특히 조 단위 국가 예산이 투입된 국책사업에 대한 수사를 전담할 것이다.” 최근 시사저널과 만난 한 검찰 관계자는 ‘미니 중수부’로 불리는 특수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특수단이 박근혜 정부가 올해 초 강조한 부정부패 척결 작업의 ‘전진기지’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중수부의 부활’이라는 시선을 받고 있는 부패범죄특별수사단(특수단)이 향후 1조원 이상의 국비가 투입된 국책사업에 대한 사정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특수단이 설치된 서울고등검찰청사. ⓒ 시사저널 고성준

주요 감시 리스트 포함된 국책사업 무엇?

이번 부정부패 척결 작업은 박근혜 대통령이 1월5일 올해 첫 국무회의에서 부정부패 척결을 주문하면서 본격화됐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부패 요인을 선제적으로 감시·경고하는 인프라를 구축해 예산 낭비와 비리 소지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고, 대형 국책사업을 비롯해 정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나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일주일 후인 1월12일 황교안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정부의 새로운 부패 척결 방식으로 ‘부패 방지 4대 백신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16개 분야에서 240조원을 운용하는 공공 시스템에 부패 방지를 위한 예방책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그리고 다음 날인 1월13일 김기동 전 대전고검 차장을 단장으로 한 특수단이 공식 출범했다. 부패 척결 작업을 위한 사전 준비가 속전속결로 진행된 것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국책사업을 중심으로 사정 정국이 조성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황 총리는 이번 프로젝트가 기존의 사후 적발과 처벌보다는 예방을 위한 조치라고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법조계에서는 정부가 강도 높은 사정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견해가 여전히 우세한 상황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에 앞서 “국무조정실이 가용 조직과 인력을 총동원해 1조원 이상 대규모 국책사업 47개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환부가 드러날 경우 그곳에 메스를 가져다 대는 건 특수단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향후 특수단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사업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검찰 내부에서는 ‘부패 방지 4대 프로젝트’에 주요 감시 대상에 오른 사업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특수단은 최근 해당 프로젝트의 세부 내용을 집중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포함된 국책사업은 △재난안전통신망 사업(사업비 1조7000억원) △평창동계올림픽 준비(5조1000억원) △과학벨트 조성(5조7000억원) △삼성-동탄 광역급행철도 사업(1조6000억원) △대전도시철도 2호선(1조4000억원) △별내선(암사-별내) 복선전철 사업(1조2000억원) △평창동계올림픽 접근 도로망(8조4000억원) 등이다.

국무조정실은 이미 ‘전과’가 있거나 ‘비리’가 벌어질 가능성이 큰 사업들을 감시 대상으로 분류했다. 먼저 재난기관 전용 무선통신망을 구축하는 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의 경우 독과점 구조인 통신 시장의 특성상 모든 단계에서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입찰 단계에서 통신사들이 사업 지역과 가격을 담합하거나, 사업자 컨소시엄을 구성할 때 리베이트 수수와 입찰 심사위원 로비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또 납품업체 선정 대가 리베이트 수수와 정·관계 및 지방자치단체 인사들의 개입 등 비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평창동계올림픽 사업도 검증대에 올랐다. 과거 월드컵 휘장 사업 비리나 인천아시안게임 주경기장 납품 비리처럼 국제 대회 준비 과정에서 비리가 벌어진 사례가 있어서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사업의 경우 이미 각종 비리가 적발된 바 있다. 2014년 일부 교수들이 국가 예산으로 지원한 연구비를 횡령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고, 2015년에는 부패척결추진단이 62개 기관의 50억원 상당 연구비 편취 의혹에 대해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그 밖에 삼성-동탄 광역급행철도(GTX) 사업, 대전도시철도 2호선, 별내선(암사-별내) 복선전철 사업, 평창동계올림픽 접근 도로망 등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들도 감시 대상에 포함됐다. SOC 사업은 과거부터 입찰 담합이나 수주 로비, 설계 변경 형식에 의한 공사비 부당 증액, 부실 시공 등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았던 영역이다. 국무조정실 산하 국책사업관리팀은 이들 사업에 대한 상시 감시 시스템을 작동시킬 방침이다.

감시 대상 리스트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 사업(18조4000억원)도 수사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해당 사업은 미국산 F-35A 전투기 40대를 구매하면서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이전받기로 한 게 핵심 조건이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거부로 계획이 틀어졌음에도 국방부는 계약을 강행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지난해 말 직접 조사에 나선 바 있다. 또 부산항 신항 항만 배후단지 개발 사업(16조7000억원)과 동북아오일허브 사업(1조9377억원)도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부산항 신항 항만 배후단지 개발 사업의 경우 뇌물 비리로 경찰 수사가 진행됐지만 결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동북아오일허브 사업의 경우 국회 예산정책처로부터 사업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중수부의 부활’이라는 시선을 받고 있는 부패범죄특별수사단(특수단)이 향후 1조원 이상의 국비가 투입된 국책사업에 대한 사정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특수단이 설치된 서울고등검찰청사. ⓒ 시사저널 고성준

특수단이 향후 수사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지난해 3월 박 대통령과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강도 높은 부정부패 근절을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전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낙마하면서 작업에 사실상 제동이 걸렸고 정부는 속도 조절을 해왔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집권 후반기를 맞은 박근혜 정부가 공직사회 기강을 잡고 본격적인 개혁을 추진할 시기가 됐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기존에 계획했던 ‘부정부패와의 전쟁’이 성완종 사태로 오랜 기간 미뤄진 만큼 상당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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