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향한 김정은의 질주 체제 안정 분수령 될 듯
  • 이영종│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
  • 승인 2016.01.20 21:29
  • 호수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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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7차 대회 때 김정은식 통치 청사진 공개 가능성

요즘 평양은 온통 5월 노동당 7차 대회 이야기로 가득하다. 새해 신년사가 나온 이후엔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인 2·16 준비로 부산하던 예년과 달라졌다. 로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 등 관영 선전 매체들은 “승리자의 대축전장을 만들자”는 식의 구호나 선동 글을 연일 대대적으로 내보내며 공장·기업소에는 생산 목표 조기 완수를 독려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대회는 5년마다 열리게 규정돼 있다. 하지만 1980년 10월 6차 당 대회 이후 36년 동안 열리지 못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추대된 2010년 9월에도 당 대회를 열지 못하고 약식 규모인 당 대표자회로 대신했다.

당 대회 파행으로 이런저런 뒷말이 나오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수령님(김일성을 지칭)께서는 경제 문제만 풀리면 언제든 당 대회를 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며 당 간부들을 다독였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 초 구소련과 동구권 붕괴로 북한 경제는 더욱 어려움을 겪었고,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더욱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었다. 김정일 집권 이후에도 경제는 그다지 호전되지 못했고, 2011년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숙제는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넘겨졌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새해를 맞아 신년사를 발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월1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북한이 왜 이 시점에 노동당 대회를 열겠다고 밝힌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전 언급을 토대로 따져보면 ‘북한이 경제난에서 상당 부분 벗어났다’는 추론도 할 수 있다. 집권 5년 차에 접어든 김정은 체제가 어느 정도 자신감을 바탕으로 새 경제계획 청사진도 제시하고 민생 향상의 비전도 밝히려는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한국은행이 추계한 북한 경제성장률은 2011년 0.8%로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선 후 2012년 1.3%, 2013년 1.1%, 지난해 1.0%에 불과하다. 겨우 마이너스 성장을 면할 정도란 얘기다. 중·장기 경제계획이나 비전을 제시하기에도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초 터진 북한의 4차 핵실험 감행은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수소폭탄’을 주장하며 미국 등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도발적 행동을 보임으로써 외교적 고립은 물론 경제 문제가 최악의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중국과 러시아가 추가적인 대북 제재에 미온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북한 김정은 체제를 감싸고 돌 수 없는 정세가 조성된 것은 분명하다.

당장 김정은의 핵심 정책 노선인 경제·핵 병진 노선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집권 이듬해인 2013년 3월 제시된 경제·핵 병진 노선은 핵 보유로 재래식 무기에 투입될 군사비를 덜 수 있게 됐으니 이를 민생경제에 돌리겠다는 논리다. 하지만 북한 스스로 최고인민회의 예산결산에서 국방비 비중이 2013년 16.0%(실제는 은닉 예산 포함 30% 수준)에서 2014년에는 15.9%로 겨우 0.1%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의 공식 자료를 봐도 그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김일성이 1962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국방 병진 노선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칫 주민들의 불만이 팽배해지고 정권 안정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노동당 7차 대회는 김정은의 승부수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파행적으로 운영됐던 노동당 조직을 정상화하고 체제 안정을 다지는 계기로 삼겠다는 뜻일 수 있다. 집권 이후 숙청과 해임·강등 방식으로 이뤄졌던 인사를 체계화하는 시점이 될 수도 있다. 당 조직 개편과 대대적인 세대교체로 명실상부한 김정은 정권을 꾸릴 것이란 의미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수소폭탄 실험’ 관여자들이 5박 6일간의 평양 체류를 마치고 1월13일 평양을 떠난 사실을 전하면서 “수십 리 연도에서 10여 만의 수도 시민들이 자랑스러운 영웅들을 향해 꽃다발을 흔들며 열렬한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최룡해 복권도 ‘청년 사업’ 위한 불가피한 선택

특히 김정은이 강조하고 있는 청년 사업에 무게가 실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 조직을 청년 세대가 장악하고 주도하도록 함으로써 생동감을 불어넣고, 생산 현장에는 청년돌격대 투입과 같은 방식으로 변화를 주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11월 활동이 중단돼 숙청설이 나돈 최룡해 노동당 비서를 두 달 만에 조기 복귀시킨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다. 오랜 기간 청년동맹 책임자로 일한 최룡해의 복권 무대를 지난 1월14일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 행사장으로 삼은 것도 상징적이다.

국가정보원은 최룡해가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부실 공사 책임을 지고 지방 협동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 정권 수립의 핵심 세력인 빨치산 출신 최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인 최룡해까지 공포 정치의 희생양으로 삼기에는 부담이 따랐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한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노동당 7차 대회 개최 계획을 밝혔을 때 우리 정부 당국이나 언론은 별달리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해 벽두 북한의 4차 핵실험 감행 등의 행보가 오는 5월 당 대회를 염두에 둔 치밀하고 전략적인 행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집권 5년 차를 맞은 김정은 제1위원장으로서는 권력 안정으로 접어드느냐 아니면 파국으로 가느냐를 판가름할 중요한 무대다. 당 대회를 통해 새로운 통치 체제를 선보일 수 있다. 또 경제 청사진이나 대남 정책과 관련한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핵 도발 등으로 안팎으로 꼬인 상황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다. 5월 노동당 대회를 계기로 선보일 김정은의 승부수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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