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 발전하려면 내각제·다당제밖에 없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6.01.19 09:15
  • 호수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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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를 ‘비정상’으로 진단한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
© 시사저널 박은숙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원로 경제학자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의 이력은 화려하다. 정·관·학계에서 굵직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1988년 경제부총리, 1992년 한국은행 총재 등을 거쳤다. 1995년엔 초대 민선 서울시장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이후 민주당·한나라당 등 여야 정당 총재만 세 번을 지냈다. 올해 한국 나이로 89세인데 지난 1월7일 서울 행운동 자택에서 기자와 만난 조 명예교수는 비교적 건강해보였다. 목소리엔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고, 트레이드 마크인 흰 눈썹도 여전히 강한 인상을 주었다. 조 명예교수는 요즘도 초청 강연 등에 나가 우리 정·재계를 향해 조언과 충고를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 강연에선 한국 경제의 현재 상황에 대해 “뉴 노멀(new normal, 새로운 정상)이 아니라 뉴 애브노멀(new abnormal, 새로운 비정상)”이라 진단하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중소기업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선 “대통령제는 정책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는 시스템”이라며 “개헌을 통해 내각제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큰 활동을 하진 않지만 책을 읽으면서 연구도 하고 가끔 강연도 나가고 있습니다.

무슨 연구를 하고 계십니까.

세계 정세가 참으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미·중 관계나 북한 문제, 유럽의 끊임없는 위기 등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세계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세계 경제가 위태롭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대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이 금리를 적기에 올렸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좀 더 진행돼봐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세계가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 증시가 폭락한 것은 정치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중국 경제에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중국의 펀더멘털(Fundamental, 성장률·물가상승률 등 주요 거시경제지표)에도 문제는 없습니다. 자꾸 어렵다고 (분석을) 하니까 그것이 투자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우리 정부의 노동 유연성이나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 등은 전부 과거에서 내려온 시책입니다. 지금과는 맞지 않습니다. 한국경제가 당면한 문제는 ‘뉴 노멀’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경제가 과거와 어떻게 다르게 전개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과거 방식대로 처방하면 시간만 흐르고 나빠질 뿐입니다. 제대로 인식해야 제대로 대비할 수 있습니다.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뉴 노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과거의 노멀이었던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 세계화)이 지금은 무너졌습니다. 1990년대 정책인 신자유주의가 붕괴된 것입니다. 지금은 저성장·저금리·저물가 등이 노멀이 됐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노멀이 나와야 합니다. 그게 뉴 노멀입니다. 이제, 전 세계는 똑같은 기준으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유럽에서 영국과 유로존이 따로 가는 것이 한 예입니다. 각국마다 각자의뉴 노멀을 찾아야 하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뉴 노멀’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재벌에 의해 리드된 경제였습니다. 재벌이 잘해줘야 하는데 리드를 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잘되는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론 너무 취약합니다. 중소기업 부분이 약하니까 창업이 안되고, 창업이 안되니까 고용이 안되고, 소득 분배가 시정이 안되고, 복지가 안됩니다. 중소기업이 안되고 있는 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재벌 개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재벌이 중소기업 영역을 자꾸 침범하면서 ‘갑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걸 정리해야 합니다. 재벌도 자체 개혁을 해야겠지만, 정부가 그런 방향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재벌보다는 중소기업이 기본입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요즘 야권의 영입 대상자로 오르내리십니다. 더불어민주당이나 안철수 신당 측에서 연락을 받은 적이 있으십니까.

연락받은 적 없습니다. 솔직히 연락이 와도 참여는 안 할 겁니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요즘 정치권을 어떻게 보십니까.

집권 여당이 친박(親박근혜)과 비박(非박근혜)으로 갈려 갈등을 빚고 있는데, 세상에 이런 정당은 없습니다. 특정인 누구를 중심으로 친박이니 비박이니 갈라진 것은 엉터리입니다. 패거리 계파 정치입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야권 분열은 야권 수뇌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당 당수라면 국민과 같이 호흡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가면서 자기 행동을 조절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분열이 됩니다. (야권이 분열된) 결과는 잘됐다고 봅니다. 이 나라는 그걸 필요로 합니다. 다당제가 필요합니다.

지금도 다당제인데요.

우리나라는 복잡합니다. 국민의 소망도 복잡합니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도 없습니다. 다 똑같습니다. 보스 중심으로 계파를 갈라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정당이 아닌 ‘생각을 가진 정당’이 나와야 합니다. 녹색당이라든지 그런 전문성을 가진 정당이 나와야 합니다. 뚜렷한 목적을 가진 정당이 몇개 있어야 합니다.

내각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신 적이 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정치가 이대로 가면 나라를 3류, 4류로 만듭니다. 대통령 책임제로는 안 됩니다. 개헌을 통해 내각제를 해야 합니다. 대통령제는 어딜 가든 성공하지 못합니다. 미국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대통령제는 정책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대통령 4년 중임제든, 5년 중임제든 문제가 있습니다. 이원집정부제는 말도 안 됩니다.

내각제를 하게 되면 국정이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모든 나라가 그걸 해야 합니다. 책임이 분명합니다. 내각 총리가 잘하면 10년 이상도 할 수 있지만, 못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대신 총리에겐 훨씬 권한이 많습니다. 좋은 사람을 (입각시켜) 데려갈 수도 있습니다.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발전하기위해선 내각제와 다당제밖에 없습니다. 일본보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모든 부분에서 엘리트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대통령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나,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국회에 불만있으면 국회의원들을 직접 불러서 설명하고 호소하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국민에게도 직접 나서서 호소해야 합니다. 간접적으로 국무회의 석상에서 불만을 얘기할 게 아닙니다. 미국도 대통령은 상하 양원 의원들을 불러 설득합니다. 그게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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