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갈 테면 나가! 우린 새 인물로 채운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6.01.05 16:12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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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야권, 저마다 유력 외부 인사 영입에 주력

2015년 12월26일 오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약칭 더민주·옛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경남 양산 자택을 나섰다. 수행 기사도 없이 승용차는 자신이 직접 몰았다. 문 대표는 이날 양산 자택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울주군 상북면으로 향했다. 정찬모 전 울산시의회 교육위원의 자택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정 전 위원은 오는 4월13일 치러지는 20대 총선에서 울주군 지역구 출마가 점쳐지는 인물이다. 문 대표는 정 전 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국회에도 교육 전문가가 들어와야 한다”면서 입당 요청을 했고 정 전 위원은 입당 요청을 수락했다.

정 전 위원을 만나기 하루 전날인 12월25일, 문 대표는 경남 양산 자택으로 내려갔다. 문 대표의 양산행(行)은 안철수 의원의 탈당 이후 분당 위기에 몰린 당을 추스르는 방안을 숙고하는 시간을 갖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문 대표가 양산에 간 지 하루 만에 정 전 위원을 만난 것을 두고, 분당 사태의 위기 국면을 인재 영입 전략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풀이하는 이가 많다. 친노(親노무현) 성향의 더민주 원외 인사는 “선거를 앞두고 진행되는 인재 영입은 종국적으로는 기존 당내 세력의 물갈이와 궤를 같이한다”면서 “기존 세력이 나가도 새로운 인물들로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겠다는 행보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표가 인재 영입을 통해 새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주력하는 것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인적 쇄신을 단행하고 정치 혁신의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프로세스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더민주 선대위원장 박승·이강국 등 물망

분열하고 있는 야권이 제각각 치열한 인재영입 경쟁을 벌이고 있다. 탈당과 신당 창당이라는 합종연횡 과정에서 기존 지지 기반의 이탈을 방지하는 한편, 세를 규합하기 위해 외부 인사의 수혈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현실정치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정치·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정치 신인을 발굴해 ‘새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정치 혁신을 앞장서 보여주겠다는 전략이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과 비주류 의원들의 연쇄 탈당, 호남 지지층의 이탈로 위기에 처한 더민주에서는 문재인 대표가 직접 나서 인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더민주는4·13 총선을 대비해 조기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리기로 하고 공동 선대위원장 모시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선대위원장에는 요동치는 호남 민심을 끌어안기 위해 호남 출신이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더민주 내부에서는 참여정부 시절 대법원장을 지낸 이용훈 전 대법원장(전남 보성출신)이 1순위로 꼽혔지만, 이 전 대법원장의 고사로 무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전북 임실)과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전북 김제) 등이 유력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더민주 핵심 관계자는 “애초 이 전 대법원장이 가장 적절한 후보 1순위로 꼽혔고 동의를 얻었지만본인이 다시 고사한 것으로 안다”면서 “2순위에 있던 박 전 총재와 이 전 소장 등이 유력 후보로 다시 거론되고 있다. 박 전 총재도 언론을 통해 고사 의사를 밝혔지만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새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선대위 체제를 꾸리는 것과 동시에, 총선에 직접 나설 정치 신인 발굴에도 적극적이다. 김한길·박지원 등 당내 비주류 유력 정치인들의 연쇄 탈당이 예상되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인물 발굴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점 때문이다. 18대 대선 직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촉구하다 경찰대 교수직을 그만둔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의 더민주 입당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정치 평론가로서 종편TV에 출연해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기를 모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의 영입도 점쳐지고 있다. 이 소장은 당내 비주류의 반발을 사고 있는 ‘최재성 총선기획단장카드’의 대안으로 거론된다.

안철수 vs 천정배, 호남 민심 두고 영입 경쟁

더민주가 야권에서 외부 인재 영입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가운데, 독자 신당창당을 서두르고 있는 안철수 의원 측(안철수 신당)은 천정배 의원(국민회의) 등과 인재 영입을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더민주가 안철수 의원의 멘토인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를 영입하려 한다고 회자되면서 문·안 양측의 마찰도 엿보인다. 안철수 의원 측은 더민주의 장 교수 영입설에 대해 “정치 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면서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더민주의 인재 영입 공세에 안철수 의원 측은 실물 경제 전문가의 영입과 함께 3040세대 등 상대적으로 정치권 진입의 문턱이 높았던 정치 신인의 수혈에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안철수 신당 측은 최근 북한 전문가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를 영입하는 등 인재영입 경쟁에 가세했다.

한때 ‘비노’(非노무현)와 ‘반문’(反문재인)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던 안철수 진영과 천정배 진영 간의 치열한 공방도 예상된다. 천 의원 측은 독자 신당 후발 주자인 안 의원 측이 호남권에서 우위를 점하는 형세를 보이자, 협력보다는 경쟁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천 의원 측은 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던 호남향우회 현직 임원들이 더민주를 탈당한 후 합류해 호남 정치권에서 세 불리기에 일정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야권이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면서 선보일 인재 영입의 범위가 어디까지에 이를지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박근혜 정부 등 여권과 교감했던 중도 성향의 원로급 인사들이 야권에 합류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경제 전문가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의 밑그림을 짠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영입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나아가 중량감 있는 대권 후보급 인사들의 영입 가능성도 거론된다. 문재인 대표와 더민주는 그동안 “깜짝 놀랄 만한 인물을 영입할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실제 더민주 쪽에서 정 전 총리 쪽에 러브콜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문재인 대표는 또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장과도 영입 작업의 교감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월31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가 지난해 9월께 김 전 소장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다시 열어보는 과정에서 언론에 노출됐다. 김 전 소장은 당시 문자메시지에서 “저는 앞으로도 문 대표와 정치노선을 같이할 생각”이라면서 “그것은 문 대표와 직접 만나 상의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 전 소장은 부친의 서거 후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있다. 하지만 문 대표와 직접적으로 정치적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입당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인재 영입이 자칫 당의 선명성을 해치고 지지층의 이탈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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