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험 못한 초대형 증권사 탄생”
  • 송종호│서울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5.12.31 18:14
  • 호수 136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또 하나의 ‘박현주 신화’일까…대우증권 품은 미래에셋의 위기와 기회

크리스마스이브인 2015년 12월24일, 산업은행이 KDB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미래에셋 컨소시엄(미래에셋증권·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선정하자 자본 시장 관계자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내놓았다. 자본 시장 개설 60년 만에 ‘한국도 메가급 증권사’를 보유하게 됐다는 기대감과, 자본 시장 개편의 서막이 열린 만큼 다수 증권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것이다.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최종적으로 인수·합병하게 되면, 자기자본만 8조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증권사가 탄생하게 된다. 초메가급 증권사의 출현으로 인해 기존 대형사로 분류됐던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증권사들은 하루아침에 중대형사로 전락하게 됐고, 중소형사들은 존폐 위기에 빠지게 됐다. 이런 위기는 수년간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위주의 비슷한 사업 구조를 유지해온 증권사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한국형 IB(투자은행)를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대형 증권사들마저 국내 대형 딜에서 번번이 외국계에 밀리곤 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2014년 3월4일 미국 시장 최초로 코스피200을 추종하는 ETF인 ‘HKOR’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가운데, 박현주 회장이 상장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 AP 연합

몸집 키운 미래에셋…글로벌 IB와 ‘맞짱’

그동안 국내 증권사들은 대형사·중소형사 가릴 것 없이 주식 브로커리지에 의존한 거의 동일한 영업 구조를 갖고, 증시가 좋으면 모두 같이 잘됐다가 반대로 시장이 안 좋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손해를 보는 천수답(天水畓)식 경영을 해왔다. 지난 2011년 정부가 글로벌 투자은행을 육성하겠다며 대형화를 시도했지만, 자기자본만 늘렸을 뿐 해외 진출에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다. 투자은행을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해외 글로벌 IB들과 겨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기자본과 실력 탓에 명함도 내밀지 못한 게 현실이었다. 단적으로 아시아 최대 금융투자사로 꼽히는 일본의 노무라금융투자는 자기자본이 27조원 규모다. 국내에서는 자기자본 4조4495억원의 NH투자증권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 경쟁이 안 되는 상황이다. 이런 형편에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의 결합은 자본 시장의 메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국계 IB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글로벌 IB들이 바다를 만들어갔다면 한국형 IB는 안일한 대어(大魚) 몇 마리를 만들려고만 했다”며 “이제야 자본 시장의 판을 바꿀 만한 메기가 출현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IB업계 관계자는 “그간 대형사로 불리던 증권사들의 자기자본 3조원은 해외에서 딜을 수주하기에도 턱없이 미약한 규모”라며 “막강한 글로벌 IB들과 겨루기 위해 국내 최대·최고 규모의 금융투자회사가 일찌감치 나왔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해외 사업 부문에 집중해온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통합될 경우 해외 IB들과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게 된다는 기대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우증권을 품게 되는 미래에셋증권은 신(新)경영 전략에서 주요 해외 M&A(인수·합병) 주관, 투자자에게 균형 있는 포트폴리오 제시 및 자기자본 투자 확대 등을 세부 과제로 정했다. 우선 투자은행으로서 해외대체투자(AI)·자기자본투자(PI)의 확대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미래에셋그룹이 보유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 우량 대체 자산을 적극 발굴해 자기자본 투자도 확대할 계획이다.

아울러 미래에셋증권이 해외 진출 의지가 강하고, 대우증권은 단일 증권사로서는 최대 인원인 400명 이상을 해외에 파견하는 등 두 회사가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1, 2위를 다툰다는 점에서 통합 증권사는 해외 시장 개척에서 좀 더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도 “글로벌 IB들처럼 자기자본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 해외 M&A 딜에 직접 지분을 인수하겠다”며 해외 진출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2015년 인수ㆍ합병(M&A) 시장에서 가장 큰 매물인 KDB대우증권(왼쪽)에 대해 12월24일 미래에셋증권(오른쪽)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 연합뉴스·시사저널 포토

문제는 ‘승자의 저주’다.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최종적으로 인수·합병하면 부채비율이 1030%를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증권은 2조4000억원이 넘는 인수대금을 상당 부분 차입에 의존할 것으로 알려져, 합병 이후 재무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이익잉여금이 1조3500억원에 달하고, 현금성 자산이 5000억원 이상이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지난 2015년 3분기 말 기준 부채 총계가 24조5362억원에 달해 이익잉여금과 현금성 자산은 정상적인 영업활동과 고객들의 요구불 인출을 위해 상시 준비해야 하는 계정으로 분류된다. 다시 말해 이 돈을 대우증권 인수 자금에 온전히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다.

부채비율도 문제다. 미래에셋증권의 2015년 3분기 말 부채비율은 988%로, 600~800%대인 다른 대형 증권사들에 비해 이미 높은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유상증자로 인해 2015년 말 기준으로 740%까지 낮아지게 되지만, 대우증권 인수 후 부채비율은 다시 1030%까지 치솟는다. 금융 당국이 주의 개선 권고를 내리는 1100% 수준에 거의 근접하는 것이다.

대우증권 노동조합의 반발도 변수다. 대우증권 노동조합은 2015년 12월22일 낸 성명서에서 “미래에셋증권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 본실사를 하지 못하도록 봉쇄하고 노조와의 임금협상이 결렬될 경우 총파업 등 쟁의행위를 이어나갈 것”이라며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산업은행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취소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대우증권 노조가 협상에 미온적이거나 쟁의행위를 이어나갈 경우, 실사 지연으로 인해 빠른 매각이 어려워진다. 대우증권 노조의 저항이 심할 경우, 극단적으로 우선협상대상자가 인수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대주주 적격성 문제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최고가로 응찰한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 인수자로 선정될 경우, 대주주인 미래에셋캐피탈이 자기자본 7조8000억원 규모의 증권사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이 경우 미래에셋캐피탈이 지주사 전환 요건에 해당되면서 200%대의 높은 이중레버리지 비율과 여신전문금융회사의 자회사 출자 제한 등 지배구조로 인한 규제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며 “인수 자금 마련 방법이나 지배구조 문제로 인해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전망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