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열전]③ 김범석 쿠팡 대표...이제 1회초 끝낸 유통업계 에이스
  • 이철현 편집국장 (lee@sisabiz.com)
  • 승인 2015.12.22 16:07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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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창업해 판매부터 배송까지 일관 유통 체제 구축

캐주얼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30대 중반 남성이 2013년 9~11월 서울 구로구 독산동 소재 쿠팡 콜센터에 수시로 드나들었다. 콜센터엔 전화상담원 200여명이 고객 불편사항을 접수하고 해결하느라 헤드셋과 씨름하고 있었다. 전화상담원 다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여성이다. 그 사이에 자리한 분홍색 셔츠에 아이보리 면바지 차림의 남성은 단연 눈에 띄었다. 

콜센터 직원 모두는 남성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김범석 쿠팡 창업자였다. 김범석 대표는 3개월 간 수시로 콜센터에 드나들며 같은 자리에 앉아 고객 전화를 받았다. 배송, 반품, 교환 과정에서 고객이 겪는 불편사항을 듣고 경영에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그중 30대 여성 고객이 동네 배달 서비스가 불편해 물건 주문하기 꺼려진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고객도 배달 과정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불편을 쏟아냈다. 김 대표는 이때 ‘로켓 배송’을 착안했다. 

김 대표는 상품 판매부터 배송까지 전자상거래 모든 단계를 한꺼번에 연결해 서비스하는 사업 모델을 구축하기로 마음 먹었다. 전자상거래업체가 판매부터 배송까지 책임지는 사업 모델을 실행하기는 세계 최초다. 당시 쿠팡은 설립 2년 만에 흑자전환해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쿠팡 관계자는 “창립 2년여만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한 터라 기존 사업 모델을 유지했다면 작은 규모나마 흑자 기조를 유지하며 알짜 업체로 안정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수익성 좋은 전자상거래 업체의 창업주로 안주하길 거부했다. 그는 지난해 3월 쿠팡맨을 채용해 자체 배송·물류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김범석 대표는 “서비스 개시 1년6개월 동안 배송인력 3500여명을 채용했다. 같은 기간 국내 30대 그룹 고용인원(8261명)의 40%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 2017년까지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전국 21개 물류센터 설립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2016년 완공 예정인 인천물류센터는 연면적 9만9173㎡ 규모로 전자상거래 업계 통틀어 최대 규모다. 김 대표는 "대규모 투자로 고객 경험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겠다"며 "고객 충성도를 높여 고객 수와 매출을 늘리고 다시 로켓배송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쿠팡은 배송인력, 물류센터, 고객서비스 인력 1만1000명을 채용하고 있다. 김 대표는 고용 인원을 2017년까지 4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쿠팡맨이라 일컫는 배송인력은 20~30대 청년이 다수다. 평균 연봉이 4000만~4500만원으로 대기업과 비교해도 적지 않다. 쿠팡 관계자는 “(자체 조사 결과) 택배 서비스의 만족도는 39%에 불과하나 로켓배송은 99% 만족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쿠팡은 주문부터 수령까지 24시간 안에 마치는 서비스를 넘어 2시간 배송을 실험하고 있다. 

김 대표는 최첨단 엔진을 탑재한 폭주기관차다. 학벌, 경력 등 스펙(Specification 약자·구직자가 입사시 요구되는 학벌·학점·토익 점수 등 평가요소) 면에서 화려하기 그지 없다. 금수저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수저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김 대표는 일곱살에 대기업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건너갔다. 하버드대 정치학부를 졸업하고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재학 중 시사잡지 커런트(Current)를 창간해 발행하다가 3년 만에 뉴스위크에 팔았다. 변호사가 되길 바라는 부모 뜻과 달리 김 대표는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미국 전략컨설팅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컨설턴트도 2년만에 정리하고 김 대표는 다시 잡지를 창간했다. 하버드대 등 미국 명문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시사, 교양 정보를 제공하는 빈티지미디어를 4년간 발행했다. 잇따라 창업에 성공하자 김 대표는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2010년 5월 한국에 들어와 쿠팡을 창업했다. 쿠팡은 인도네시아 티모르섬 팡만(灣)에 연한 항구다. 네덜란드가 1618년 향료 거래 기지로 건설한 도시로 목재·피해·해산물 거래가 성했다. 김 대표는 온갖 물자가 편하게 거래되는 온라인 항구를 꿈꾼 것이다. 

쿠팡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매출 3억원 거둘 때 전화상담원 100명을 추가 고용했다. 서비스 개시 22개월만에 월간 흑자를 달성했다. 3년 만에 연간 거래액 1조원 기록해 지난 2월 매출 1조원 클럽에 합류했다. 

미국 벤처캐피탈 세퀘이아캐피탈은 지난해 5월 1억달러, 글로벌 자산운영사 블랙록은 지난해 12월 3억달러를 쿠팡에 투자했다. 지난 6월엔 일본 정보기술(IT) 투자업체 소프트뱅크는 10억 달러(1조1000억원)를 집어 넣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김 대표는 "쿠팡은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의 도전은 아직 1회 초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쿠팡이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쿠팡은 지난해 당기순손실 1215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적자폭이 더 커진다. 아직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 걱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언제 흑자 전환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김 대표가 한국인 정서나 사업 관행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사업 추진 과정에서 여기저기 잡음이 일고 있다. 우선 국내 택배 업계와 갈등이 심각하다. 한국통합물류협회는 지난 10월13일 쿠팡 로켓배송이 화물운송 시장의 공정 경쟁을 저해한다고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3월 국토교통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하고 5월엔 21개 지방자치단체에 고발장을 접수하기도 했다. 

쿠팡 관계자는 “지방 검찰청 2곳 이상이 불기소 처분했고 국토부도 로켓배송를 위법으로 판단할 근거는 없다고 발표했다. 아직까지 쿠팡에게 불리판 판결이나 결과가 나온 적 없다”고 말했다. 

쿠팡은 지난 2월까지 고객에게 광고성 스팸메일을 보내 논란이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1월부터 발효된 개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광고’라고 적시하지 않고 광고 메일을 발송하는 것을 금지했다. 쿠팡은 계도기간(지난 2월까지)이 끝날 때까지 이를 지키지 않아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프로필
김범석 (영문명: Bom Kim)
1978년 서울 생
2000년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부 졸업
2009년 하버드대학교 비즈니스스쿨 입학
1998~2001년 대학 잡지 커런트(Current) 창간·운영
2002~2004년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컨설턴트 
2004~2008년 잡지사 빈티지 미디어 창간·운영
2010년5월 쿠팡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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