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의 미래 미국에 빼앗길 수 없다”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5.12.17 18:18
  • 호수 136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글 자율주행 차량 소식에 비상 걸린 ‘자동차 왕국’ 독일의 위기의식

2015년 한 해 독일 자동차업계는 두 차례 중대한 고비를 맞았다.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된 것은 지난 9월 불거진 폭스바겐 사태다. 미국의 환경보호청(EPA)이 폭스바겐사(社)를 상대로 “대기오염 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차량에 설치되는 소프트웨어를 조작했다”며 디젤 차량 50만대의 리콜을 요구한 것이다. EPA의 발표 이후 불과 나흘 만에 폭스바겐사의 시가총액 중 280억 유로(약 36조3000억원)가 증발했다.

독일 자동차업계가 맞닥뜨린 또 다른 고비는 구글의 자율주행 차량 소식이다. 올해 초 구글은 150대의 자율주행 차량을 캘리포니아 도로 곳곳으로 내보내 시험운행을 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구글카의 외관이 장난감 자동차처럼 동그랗고 깜찍해서인지 이 소식은 자동차업계 바깥에서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구글카의 시내 시험주행 계획이 발표된 직후 독일 자동차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자동차산업의 미래가 걸려 있는 자율주행 차량 개발 싸움에서 미국에 선두를 빼앗겼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2015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에 전시된 메르세데스 벤츠사의 자율주행 콘셉트카. ⓒ REUTERS

구글의 선제공격에 독일 자동차업계 ‘충격’

독일 연방교통부(BMVI)는 차량 주행의 자동화 과정을 크게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첫 단계는 운전자가 운전을 주도하며 부분적으로 도움을 받는 운전 지원 시스템이다. 최근 생산되는 승용차에 설치된 안전거리 유지 장치나 주차보조 장치가 그 예다. 두 번째 단계인 부분 자동화 시스템은 고속도로 등 특정 상황과 장소에서 주행을 차량 스스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늘 운전자가 자동운행 상황을 감시해야 하며 언제든지 다시 직접 차를 몰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 단계인 고도 자동화 시스템이 실현되면 고속도로 위에서 운전자의 감시와 개입이 불필요해진다. 네 번째 단계인 완전 자동화 시스템의 목표는 사전에 정의된 특정 상황에서 인간의 개입 없이 차량을 움직이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인 자동운행 시스템에 이르면 운전석과 운전면허 자체가 불필요해진다. 출발지에서부터 목적지의 주차장까지 자동차가 모든 교통상황을 직접 판단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벤츠와 BMW, 폭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 제조사는 현재 두 번째 단계인 부분 자동화 시스템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아우디사의 운전 자동화 프로젝트 담당자인 토마스 뮐러는 “완전 자동운행까지는 15~2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구글은 향후 5년 내에 자율운행 차량을 상용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해 12월 구글이 공개한 차량에는 핸들과 브레이크가 빠져 있었다.

구글의 선제공격에 충격을 받은 독일 자동차업계는 올해 초부터 강력하게 정부의 행동을 요구하고 나섰다. 올해 초 디터 제체 벤츠 회장은 정치권의 결단을 촉구했다. 연말까지 무인자동차 시험운행을 위한 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챈 것이다. 그는 정치권이 움직이지 않으면 독일 자동차산업 전체가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황의 시급함을 뒷받침하듯 자동차 제조사와 관련 연구 분야에서는 자율주행 차량의 시장성에 대한 예측이 쏟아져 나왔다. 독일 뒤스부르크-에센 대학의 센터 오토모티브 리서치(CAR)의 페르디난드 두덴회퍼 소장은 “향후 15년간 자동운행은 자동차업계의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틴 빈터코른 전(前) 폭스바겐 회장은 “향후 5년간 유럽에서만 9000만대의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가 팔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콘티넨탈사의 엘마 데겐하르트 회장은 ‘벨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동운행에 필요한 센서 시장 규모는 2020년까지 100억 유로로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독일 정부도 운전 자동화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미 지난 2013년 11월 연방교통부 주도로 자동차 제조사와 보험업계, 연구기관이 참가하는 협의체가 구성되어 운전 자동화 실현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이 협의체는 올해 9월 디지털 시범구간 도로(Digitales Testfeld Autobahn) 프로젝트가 발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뮌헨과 뉘른베르크, 바이로이트를 잇는 A9 아우토반을 자동운행이 가능한 도로로 만들고 독일 국내외 자동차 제조사와 연구기관이 시험운행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자율주행 차량, 정체 해소와 사고 감소 효과

이처럼 독일 정부가 운전 자동화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단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독일 연방 통계청의 연구에 따르면, 2030년까지 승용차 교통량은 13%, 화물차 교통량은 38%나 증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도로를 새로 건설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독일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대안은 바로 운전 자동화를 통해 기존 고속도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차량뿐 아니라 차가 달리는 도로 또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에서 독일 연방교통부가 내놓은 아이디어가 ‘완전히 망으로 연결된 도로’다. 도로와 차량, 차량과 차량이 실시간 통신을 통해 도로 상황 정보를 공유하고, 상황에 맞춰 차량이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거나 경로를 변경함으로써 도로 교통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원활해지게 하는 모델이다.

독일 연방교통부는 자동운행 차량이 정체를 해소할 뿐 아니라 사고 위험과 유해물질 배출, 운전자 부담도 줄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독일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독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중 90%는 사람에 의해 일어났다. 과속·음주운전·졸음운전·역주행 등 운전자의 비합리적 운전 행태와 판단 착오가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반면 기계적 결함에 의한 사고는 1%도 되지 않았다. 즉, 자동운행 차량은 도로 교통에서 가장 큰 위험 요인인 사람을 제외시켜 사고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자율주행 차량의 상용화가 이뤄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특히 자율주행 차량 사고 발생 시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법률가들 역시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행법은 운전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아예 운전자가 없는 상황에 대한 법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6월부터 캘리포니아의 일반도로를 달리기 시작한 구글카에도 탈부착이 가능한 핸들과 브레이크, 가스 페달이 달려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법이 시험운행 중 벌어지는 돌발 상황에 사람이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차량 프로젝트에는 엔지니어만큼이나 많은 법률가가 참여하고 있다”는 토마스 뮐러 아우디 개발자의 말도 과장이 아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0월 스웨덴의 자동차회사인 볼보는 자사의 자동운행 차량이 사고를 낼 경우 제조사가 전부 책임을 지겠다고 발표했다. 볼보식 해법으로 운전자가 과연 걱정 없이 운전대에서 손을 뗄 수 있게 될지, 다른 제조사들도 그 뒤를 따를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