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을 뒤흔든 ‘큰손’들의 손익계산서
  • 배지헌 | 베이스볼랩 운영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2.08 18:10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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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와 롯데는 ‘기대’, 한화는 ‘글쎄’, 프로야구 FA 시장 최대 큰손으로 떠오른 세 구단의 영입 효과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증권가는 시장판도를 움직이는 ‘큰손’들이 좌우했다. ‘광화문 큰곰’ ‘백할머니’ ‘칼 밀러’ ‘헨리 정’ ‘라이터 박’등 추억의 개인 투자자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주식을 대규모로 싹쓸이해 시장을 움직였다. 이들이 한 번 큰손을 까닥하면 해당회사 주가가 폭등하고 관련 종목은 물론 주식시장 전체가 한꺼번에 들썩였다.

시장을 뒤흔드는 ‘큰손’은 추억의 주식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올해 KBO리그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도 선수 영입에 거액을 쏟아붓는 ‘큰손’ 구단들이 존재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꿈의 액수로 여겨졌던 60억원대는 이제 기본이다. 80억원대 계약을 뛰어넘어 이제는 100억원에 가까운 초고액 계약까지 나왔다.

2013년과 2014년 FA 계약에 300억원 가까운 물량공세를 퍼부은 ‘보문산 왕독수리’(한화)는 이번 스토브리그에서도 선수 4명 계약에 한 구단 1년 치 운영비와 맞먹는 돈을 투자하며 최고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과거 FA 시장의 큰손으로 군림했던 ‘해운대 거인’(롯데)과 ‘신천 쌍둥네’(LG)도 오랜만에 거액을 베팅하며 전력 보강에 나섰다. 여기에 지난 시즌까지 ‘쩐의 전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던 NC와 신생팀 KT까지 선수 영입에 뛰어들면서 12월3일 현재 FA 계약 총액은 719억원에 달해 종전최고 기록(2014년 720억원)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 12월4일 현재까지 계약이 끝나지 않은 김현수·오재원·고영민(이상 두산), 박재상(SK)의 계약 결과에 따라 사상 최초로 800억원을 뛰어넘을 가능성도 있다. 이제 FA 시장도 폐장을 앞두고 있다. 거액을 투자하며 ‘큰손’으로 활약한 NC와 한화, 롯데의 영입 성적표는 어땠을까.

최고의 야수를 영입한 NC 다이노스
박석민 4년 96억원

해외 진출을 선언한 김현수를 제외하면, 박석민은 이번 FA 시장에서 단연 최고의 가치를 지닌 선수다. 최근 몇 년간의 활약에서는 오히려 박석민 쪽이 김현수보다 더 뛰어나다. 최근 5시즌(2011~15) 동안 김현수가 기록한 대체선수 대비 기여 승수(WAR)는 15.8로 연평균 3.1승을 기록한 반면, 같은 기간 박석민은 WAR 27.5로 연평균 5.5승을 추가로 팀에 가져다줬다. 2015 시즌 손가락과 허벅지 부상을 달고 살면서 135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1, 26홈런, 116타점을 기록했고, WAR 6.1로 테임즈-박병호-강민호에 이어 리그 야수 중 네 번째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타격 정확성, 선구안, 장타력, 찬스에서의 집중력, 풍부한 경험, 감각적인 3루 수비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천재형’ 선수다.

최근 KBO에서는 슈퍼스타급 선수가 국내잔류보다 해외 진출을 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렇다 보니 박석민만큼 뛰어난 생산력을 가진 선수가 FA 시장에 나오는 건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기회다. FA 시장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제1 원칙은 “어중간한 선수가 아닌, 최고의 선수에게 투자하라”는 것이다. WAR 1~2짜리 애매한 선수는 팀의 전체 승수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하지만 연간 5~6승을 더해줄수 있는 선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위권 팀을 단번에 5강으로 올려놓을 수도 있고, 플레이오프 진출 팀을 한국시리즈로 직행시킬 수도 있다. 이전까지 FA 시장에서 비교적 ‘합리적인’수준의 계약만을 하던 NC가 최대 96억원이라는 파격적인 금액을 베팅한 이유다.

NC는 박석민을 영입하면서 팀의 고질적인 약점인 3루 수비와 우타 라인 공격력을 단숨에 리그 정상급으로 끌어올리게 됐다. 지난 3년간 모창민·지석훈 등이 맡은 NC 3루는 다른 상위권 팀에 비해 공격력이 떨어졌다. 박민우·김종호·나성범·테임즈 등 강한 좌타자에 비해 우타자 쪽에서는 위압감이 약했다. 하지만 박석민이 가세하면서 두 가지 고민이 한 번에 해결됐다. 지석훈·모창민이 백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두터운 선수층을 구축하게 된 것도 소득이다.

불펜에 ‘올인’한 한화 이글스

정우람 4년 84억, 심수창 4년 13억

최근 2년간 FA 시장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온 한화는 이번 스토브리그에서도 지갑을 활짝 열었다. 팀 내 간판타자 김태균을 4년 84억원에, 노장 포수 조인성을 2년 10억원에 붙잡은 데 이어, 투수 최대어인 정우람까지 4년 84억원에 계약하며 유니폼을 입히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4년 13억원에 영입한 심수창까지 합치면 선수 4명을 잡는 데 200억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했다. 200억원은 넥센 히어로즈의 1년 운영비와 맞먹는다.

정우람은 리그 최고의 불펜투수가 맞다. 다만 선발투수가 아닌 불펜투수 영입은 생각해 볼 대목이다. 외부 영입은 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게 목적이다. 2015 시즌 한화의 문제는 불펜이 아닌 선발투수진에 있었다. 2015년 한화는 선발진이 붕괴하면서 불펜투수들이 던지는 이닝이 크게 늘어났고 시즌 후반부에는 주축 불펜진의 줄부상과 부진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잘 던지는 선발투수도 조금만 흔들리면 일찌감치 마운드에서 내리는 김성근 감독의 ‘퀵 후크’, 즉 여유있는 점수차에서도 필승조를 투입하는 야구 스타일도 한화 불펜의 과부하를 키운 요인이다. 선발진에는 로저스 재계약 외에는 이렇다 할 보강이 없다.

불펜투수는 선발투수에 비해 팀 승리에 기여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투수의 가장 큰 임무는 가능한 한 많은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것이고, 한 시즌 150~200이닝을 소화하는 선발투수의 가치는 60~70이닝을 던지는 불펜투수보다 높이 평가받는다. 에이스급 선발투수가 한 시즌 WAR 3~6 정도를 올리는 데 비해 불펜투수는 WAR 2~3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오버페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내년에 35세가 되는 심수창을 4년 13억원에 영입한 건 나쁜 계약일 수도 있다. 심수창은 프로 16년 차 베테랑 투수지만 경력 내내 단 한번도 리그 평균 이상의 좋은 투수였던 적이 없다. 심수창의 통산 WAR은 0.0으로, 7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강길용(-0.5)에 이어 두번째로 나쁜 기록이다. 2015년에도 시즌 초반에는 좋은 투구를 보였지만 후반기에 평균자책 9.86으로 무너졌다. 심수창의 FA 영입으로 롯데에 내주는 20인 외 보상선수가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한화는 이번 FA 영입으로 올해도 2명의 보상선수를 다른 팀에 내줘야 한다. 3년 연속 외부 영입을 하면서 유망주 유출은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주력선수단 연령은 31세를 돌파해 10개 구단 중 최고령이다.

‘양떼 불펜’ 시즌2를 기대하는 롯데 자이언츠
손승락 4년 60억, 윤길현 4년 38억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적극적인 투자’ 선언때문일까. 롯데는 이번 스토브리그를 앞두고 가장 크게 주목을 받은 팀 중 하나다. 그룹 경영권 분쟁과 구단의 CCTV 사건, 최근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팀 성적을 감안하면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라도 FA 시장에서 전력 보강에 공세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실제로 롯데는 내부 FA 송승준을 4년 40억원에 붙잡았다. 마무리투수 손승락과 셋업맨 윤길현을 영입하면서 총 138억원을 FA 계약에 투자했다. 당초 기대했던 특A급 선수 영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게 중론이지만, 팀의 최대 약점인 불펜진을 어느 정도 강화하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 정대현-이성민-강영식-홍성민의 승리조보다 8회 윤길현, 9회 손승락이 추가된 불펜진은 2015 시즌에 비해 확실히 낫다. 투수 자원만 놓고 보면 ‘양떼 불펜’이란 별칭으로 불리던 2012년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다만 이런 투수 자원을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관건이다. 감독 경험이 전혀 없는 조원우 신임 감독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지가 물음표다. 현대 야구에서 불펜 운용은 감독의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다. 대다수 초보 감독이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조 감독은 야수 출신의 초보 감독이다. 베테랑 감독처럼 투수 운용을 능숙하게 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다. 2015 시즌 우승을 차지한 두산의 한용덕 코치처럼 투수 운용을 조언할 유능한 투수 코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두 시즌 동안 피(被)홈런이 급증하면서 부진했던 손승락이다. 올해는 51경기에 출장해 61.1이닝을 던지며 4승 6패 23세이브, 평균자책점 3.82란 성적을 거뒀다. 다만 크기가 작은 목동구장의 중압감을 벗어나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윤길현은 올해 17홀드와 13세이브,  평균자책점 3.16을 기록했는데 올해 롯데 불펜 중 이만한 수치를 기록한 선수는 없었다. 손승락이 ‘탈(脫)목동 효과’를 누릴 수 있을지, 윤길현이 사직야구장의 엄청난 중압감 속에서도 대담한 투구를 할 수 있을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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