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安, 연애하자면서도 딴말만 한다”
  • 이승욱·김지영·유지만 기자 (gun@sisapress.c)
  • 승인 2015.12.08 17:11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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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동상이몽’으로 파국 치닫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암울한 미래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이종현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화법(話法)부터 완전히 다르다. 마치 개와 고양이가 마주 보면서 꼬리를 바짝 치켜세운 모습과 같다. 개가 꼬리를 바짝 세우면 반갑거나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반면 고양이가 꼬리를 세우면 상대를 경계하거나 화가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반대의 감정에서 나온 화법이다. 두 사람도 그렇다. 서로 꼬리를 세우고 얘기하고 있으면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내 헤어지고 난 다음 서로가 자신과 상반된 얘기를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난 12월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와 만난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의사소통 문제를 개와 고양이의 꼬리에 비유해 설명했다. 마치 개와 고양이가 다른 방식으로 교감하려고 하듯,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자신의 방식대로 하는 식이라는 의미다.

벼랑 끝으로 치닫는 불통

불통(不通)의 힘겨루기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의 활로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접점 없는 핑퐁 게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안 의원이 문 대표가 제안한 이른바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공동지도부 구성’ 제안을 거절하고 ‘혁신 전당대회’를 역(逆)제안한 지 나흘 만에 문 대표가 이를 거부하면서 당의 운명이 한 치 앞을 내다 보기 힘든 형국이 돼버렸다.

문 대표는 12월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내 제안(문-안-박 연대)은 협력하자는 것인데, 전대는 대결하자는 것”이라며 “총선을 코앞에 두고 당권 경쟁으로 날을 새울 수는 없다”고 안 의원의 제안을 정면으로 일축했다. 문 대표의 이날 발언은 어느 때보다 날이 서 있었다. 그는 “지긋지긋한 이 상황을 끝내야 한다”며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총선을 준비해나겠다”면서 사실상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문 대표가 안 의원의 혁신 전대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상황이 파국으로 가는 최악의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문 대표가 혁신 전대 제안 거부 의사뿐만 아니라, ‘당을 흔드는 세력’에 대한 경고까지 하자 안 의원과 교감하고 있는 비주류 측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주승용 최고의원)는 말로 허탈감을 드러냈다. 안 의원도 문 대표의 기자회견 이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문 대표 주위에서 대표의 눈과 귀를 막고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혁신의 대상들이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문 대표 측을 정면 비판했다.

문 대표가 긴급 기자회견 다음 날인 12월4일 안 의원의 ‘10대 혁신안’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면서 양측이 다시 접점 찾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안 의원의 공식 입장도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문 대표가 마이웨이를 선언한 상황에서 양측이 갈등을 봉합하고 같은 걸음을 걸을 것이라는 데는 회의적인 시각이 더 많다. 안 의원이 ‘탈당’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지는 않더라도 문 대표와 안 의원으로 대표되는 당내 주류와 비주류가 결국 제각각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창선 정치 평론가는 “안 의원의 리더십에도 문제가 있지만 문 대표도 흔들리지 않고 당을 추스르겠다는 정도의 발언을 넘어 ‘나 혼자 가겠다’고 덧붙이는 것은 현명한 답이 아니었다”면서 “문 대표와 안 의원이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며 달려드는 것은 도대체 뭘 위한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공멸의 길로 접어든 형국”이라고 말했다.

“文-安 도무지 맞는 구석이 없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의 지루한 싸움이 계속 될수록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인 두 정치인의 리더십에 생채기가 날 수밖에 없다. 두 사람 모두 이를 잘 알고 있을 게 분명한데도 왜 이런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두 사람이 걸어온궤적과 정치 행보에 주목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근본적으로 다른 두 사람의 상황 인식과 입장의 차이가 갈등과 대립을 반복하며 접점을 찾지 못하는 소통의 엇박자로 귀결된다는 주장이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을 장기간 지켜본 한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두 사람이 도무지 맞는 구석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새정치연합에 몸담아온 이 당직자는 “문 대표와 안 의원이 화합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두 사람의 행보를 이성교제에 비유하면서 “남녀가 사귈 때에도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가며 ‘썸’(서로 호감을 갖고있지만 정식 교제를 하지 않는 남녀 간의 상태)을 타야 점점 가까워지는데, 둘은 차이점만 보일 뿐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은 정치 스타일만큼이나 걸어온 길도 다르다. 문 대표는 인권변호사부터 시작한 ‘민주화운동 인사’였던 반면, 안 의원은 성공한 최고경영자(CEO)이자 의사로서 ‘전문가’의 길을 걸어왔다. 초선 의원임에도 정당을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는 점만 같을 뿐, 과거는 전혀 다르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문 대표는 야생화로, 안 의원은 온실 화초로 살아왔다. 성장 과정이 다르다 보니 현실 정치에 대한 감각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노계의 좌장인 문재인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다 정계에 입문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민주화운동과 사법시험 공부를 함께해 제22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으며, 시위 전력 때문에 사법연수원 졸업 후 판사에 임용되지 못하자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 인권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노 전 대통령을 만난 이후 사실상 ‘정치적 동반자’로 지내왔다. 이후 노무현 정권에서는 청와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정무특보,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이 물러난 후에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지내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성했다.

안 의원은 문재인 대표와 전혀 다른 과거를 가졌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 프로그램인 ‘V3’를 개발한 개발자이자 의사, 교육인 등 이른바 ‘엄친아’의 길을 걸어왔다. 1990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 학과장에 최연소로 임명됐으며, 1995년 ‘안철수연구소(안랩)’를 설립해 본격적인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해외 유명 백신 업체가 “1000만 달러에 안랩을 팔라”고 제안했을 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지내다 201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후보 자리를 내놓았으며, 이듬해인 2013년 4·24 서울 노원 병 보궐 선거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처럼 살아온 과정이 다른 만큼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도 전혀 다르게 내놓고 있다. 우선 안 의원은 기존의 친노·486 운동권 인사 중심인 새정치연합의 인적 구조를 전문가 그룹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위주의적 시대에는 운동권 인사들의 ‘선명성’이 통했지만, 현 상황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문 대표가 11월14일 열린 ‘1차 민중총궐기’집회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만을 문제 삼은 반면, 안 의원은 공권력 과잉과 폭력 시위 모두를 지적했다. 이외에도 당내 부정부패 문제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서도 문 대표를 비롯한 친노계와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두 사람의 상이한 과거가 이처럼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한 야당 관계자는 “사안을 대하는 태도나 시각 자체가 완전히 다를뿐더러, 서로의 태도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많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文은 소통보다 수용, 安은 자기중심 판단”

서로 다른 배경과 정치 행보는 정치적 결단의 순간마다 서로 엇갈린 방향의 해답을 제시하는 상황을 반복한다는 분석도 있다. 문 대표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 행보를 함께해왔지만 노 전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에 머물러 있었다. 지난 대선 이후 그는 ‘친노’ 계파의 좌장에서 ‘친문(親文)’이라는 새로운 계파를 형성하고, 제 1야당을 이끄는 중책을 맡아야 했다. 정치적 동지의 그늘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우직하게 친구를 도와주는 것을 기본적인 원칙으로 여기는 그의 정치적 가치관은 여전히 의견 대립이 있을 때 소통보다는 수용을 택하는 측면에 가깝다. 그가 안의원의 혁신 전대 제안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하는 것도 이러한 인식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안 의원은 2012년 대선을 통해 대선 후보의 반열에 오른 채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민주통합당이 위기를 맞는 순간 권력 중심부에 섰다. 정치 신인 때부터 정치권을 뒤흔드는 위상을 갖고 출발한 그는 자기중심적인 인식에서 정치적 결단을 내린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그만큼 협상의 상대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안을 던지는 것이 안 의원의 정치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문 대표가 문-안-박 연대 제안을 한 것은 본인의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고, 노 전 대통령과 돕고 돕는 정치적 관계를 유지해온 그로서는 당연한 제안이었다”며 “반면 안 의원은 정치적 공감과 공유의 인식이 부족한 측면이 있어 소통보다는 자기중심적 판단이 우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4년 안철수 당시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와 문재인 선대위원장이 회의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대립과 갈등의 역사는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대선 주자 단일화를 위한 협상에서 현격한 시각 차이를 나타내며 좀처럼 의견을 합치지 못했다. 결국 안 후보가 우여곡절 끝에 사퇴하기로 결정하며 단일화를 이뤘지만, 문 후보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일찌감치 파국을 예고했다.

당시 안 의원은 문 대표에 대한 지지 입장은 밝혔지만, 문 대표 캠프 내부에서는 “단일화 효과가 전혀 없다”는 불만이 많았다. 안 의원 측이 지원유세에 대해 생각보다 소극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안 의원이 자신의 주 지지 기반인 중도층을 흡수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캠프에서 중책을 맡았던 한 야당 인사는 “단일화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고, 단일화 이후에도 탄력을 받지 못했다. 안 의원이 지지층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안 의원 측도 불만이 많았다. 올해 초 안 의원의 측근들이 발간한 책 <안철수는 왜?>에서 저자들은 문 대표와 측근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저자들은 “문재인 후보 측은 안철수 사퇴 후 처음에는 ‘이번 대선은 자기들에게 맡겨놔라’ 식이었다가 일주일 정도 지나서 지지율이 많이 밀리기 시작하니까 안철수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한 번도 안철수가 주장한 새 정치의 가치나 명분은 들을 생각을 안 하고 그냥 문재인 선거운동 일정에 맞춰 손잡고 다니며 얼굴마담 해달라는 식이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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