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미짱 스고이~!” 열도 매료시킨 ‘까만 콩’
  • 안성찬 | 골프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11.26 21:29
  • 호수 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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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LPGA 상금 2억 엔 돌파하며 일본 골프 역사 새로 쓴 이보미

일본은 골프 강국이다. 비록 지금 한국 여자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일본의 골프산업 규모를 보면 놀랄 수밖에 없다. 골프장이 2600개에 이르고, 골프 인구만 1000만명을 웃돈다. 이런 골프 대국 일본에서 지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프로골퍼가 있다. ‘그린의 신데렐라’ 이보미(27·코카콜라)가 주인공이다. 최근 들어 일본 골프 전문지들은 이보미를 표지로 도배하고 있다. 우리와 달리 남자 골프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기현상인 셈이다.

“이보미는 여자 프로골프 투어의 융성 상징”

그런데 이보미의 기록을 보면, 반드시 기현상으로만 치부할 일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보미는 11월15일 일본 지바(千葉)현 그레이트 아일랜드클럽에서 열린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이토엔 레이디스 마스터스(총상금 1억 엔)에서 우승해, 올 시즌 총상금 2억781만7057엔(약 19억8960만원)으로 상금 부문 1위를 확정했다. 특히 2억 엔 돌파는 일본 여자 프로골프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직 2개의 대회를 남겨놓고 있어 이자와 도시미쓰(47·伊澤利光)가 2001년에 세운 남자 최고 기록인 2억1793만4583엔 돌파도 눈앞에 두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골프 관계자 및 언론들은 앞 다투어 이보미를 극찬 중이다. 고바야시 히로미(小林浩美) JLPGA 회장은 “기술·체력·정신 면에서 모두 높은 수준에 있다”면서 “그것을 보여줘야 할 때 적절히 발휘해 좋은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일본의 유력 일간지 아사히(朝日)신문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결과를 낸 이보미는 여자 프로골프 투어의 융성을 상징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신문은 JLPGA 투어에 도전한 지 5년 만에 상금왕 자리에 오른 이보미가 지금도 이동 중에 일본어 교재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사히신문에서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인물’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서도 이보미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올봄 한 골프 전문지가 기획한 팬 투표에서는 일본 프로들을 제치고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했으며, 방송사에서도 가장 시청률이 잘 나오는 선수로 이보미를 꼽는다. 연예인도 아닌 이보미를 보려고 10월 말에는 일본 팬 110명이 ‘이보미 초청 골프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왔을 정도다. 이날은 한국관광공사가 평창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해 초청한 것이었는데, 이보미는 출전해야 할 대회도 포기하고 한국에 왔다. 관광공사는 이보미에게 ‘K스마일 퀸’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줬다.

이보미의 인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이보미는 2010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3승을 거두며 상금왕에 오른 후 2011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첫해는 무관(無冠)이었지만, 이듬해인 2012년 3승을 올렸고, 2013년 2승, 2014년 3승을 올리며 조금씩 ‘이보미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돌풍은 올 시즌에 불었다. 우승 6회, 준우승 7회를 했고, 톱10에 무려 21번이나 들었다. ‘올해의 선수’ 포인트는 686.5점으로 2위와 큰 격차를 벌려놓고 있다. 상금에서도 2위와 무려 6000만 엔 이상 차이가 난다. 평균 타수는 70.1969타로 2위를 기록 중이다.

일본인들이 그를 따라다니며 환호하는 데는 친절하고 겸손한 성격도 한몫한다. 경기가 잘 안 풀려도 늘 웃는 ‘보미짱 미소’가 일본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별명도 그래서 ‘스마일 캔디’다. 원래 이보미는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귀여워 별명이 ‘까만 콩’이었다. 그는 일본 골프의 전설 후도 유리(不動裕理, 50승)와 움직이는 광고판이었던 요코미네 사쿠라(?峯さくら)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올해의 성적은 CF·방송·패션쇼 등 ‘살인적인’ 스케줄을 모두 소화해내면서 이룬 성과여서 더욱 빛난다.

내년부터 반드시 2~3개 국내 대회 출전 계획

흥미로운 점은 ‘박세리 키즈’처럼 지금 ‘이보미 키즈’가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향이 강원도인 이보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주니어 대회를 개최한다. ‘이보미프로배 학생골프대회’인데, 우승한 선수들과 ‘깜짝 데이트’를 한 자리에서 학생들이 자신들을 ‘이보미 키즈’라고 소개했다.

그런 이보미는 사실 ‘박세리 키즈’였다. 이보미는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지와 1998년 TV를 보다가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극적으로 우승하는 장면을 보고 골프에 ‘올인’했다. 강원도 인제가 고향이라 인근에 연습장이 없어서 시골길을 걸어 2시간이나 떨어진 곳까지 다녀야 했다. 가정 형편도 그리 넉넉지 않아 대회 참가비 내기도 빠듯한 살림살이였다.

골프를 하는 데 가장 힘겨웠던 부분은 돈이었다. 이보미가 스스로 밝혔듯이 주니어 시절 라운드를 한 번 나갈 때면 수십만 원씩 들었다. 딸이 넷이나 되는 집에서 자신이 ‘큰돈’을 써야 하니 미안한 마음이 짓눌렀다고 한다. 그 때문에 더욱 이를 악물었는지도 모르겠다. 고교 시절에는 앞뒤를 보지 않고 오직 골프공만 쳤다. 매일 일상이 반복돼 지칠 수도 있지만, 학교에 가는 대신 오전과 오후에 연습장으로 가 손에 불이 날 때까지 공을 때렸다. 저녁에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가장 돈을 적게 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이 달리기였는데, 30분 이상 달리면 지구력도 생기고 몸도 상쾌해졌다고 했다.

2011년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에 이보미는 반드시 일본에서 상금왕에 오르겠다고 아버지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5년 만에 소원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일본 투어에 늘 어머니가 함께하고 있다. 과거 네 자매가 강원도와 수원에 따로 떨어져 산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모여 함께 살고 이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긴다. 골프로 이룬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감사하는 이유다.

이보미는 내년부터 반드시 2~3개 정도의 국내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자신이 한국에서 경기를 할 때마다 보내준 국내 팬들의 따뜻한 응원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 팬들도 고맙지만 마음이 담긴 한국 팬들이 더 그립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이보미가 내년에는 어떤 기량을 국내에서 선보일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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