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여러분을 감시합니다”
  • 이은선┃<매거진 M>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1.18 10:54
  • 호수 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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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든의 폭로 전체 과정을 밀착해 담은 다큐 영화 <시티즌포>가 던지는 질문

미국 청년 에드워드 스노든은 29세의 나이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내부고발자를 자처했다. 2013년 6월의 일이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컴퓨터 기술자로 일했던 그가 폭로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NSA가 자국민뿐 아니라 다른 국가를 상대로 무작위 통신 감찰을 해왔다는 것이다.

세계를 들끓게 만든 이 내부고발은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시티즌포>는 그 폭로 과정을 밀착 취재해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스노든이 몇몇 사람을 자신의 폭로 준비과정에 초대했기 때문이다. 2013년 5월, 다큐멘터리 감독 로라 포이트라스는 익명의 제보자 ‘시티즌포(Citizenfour)’로부터 암호화된 메일을 받는다. 메일을 보낸 이는 스노든이었다. 신변 안전을 위해 홍콩의 한 호텔에 머무르고 있던 스노든을 찾아간 이는 포이트라스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프리랜서 기자 글렌 그린월드도 홍콩으로 날아갔다. 고발자와 그의 폭로 내용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 임무를 띤 저널리스트들이 모인 방.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이 흐르는 가운데, 날카로운 질문과 답이 오가기 시작한다.

“정부와 시민, 지배자와 피지배의 관계 돼”

<시티즌포>는 기록할 만한 과거 사건의 재구성과 증언으로 이뤄지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 영화 안의 시간은 재구성된 것이 아닌 긴박하게 돌아가는 ‘실시간’이다.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폭로하려는 내용이 무엇인지 담담하게 밝히는 스노든의 목소리와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담겼다. 감독과 기자가 스노든을 처음 만난 날부터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 내용을 밝힐 것인지, 언론에는 언제 스노든의 신변을 노출할 것인지, 미국 정부의 압박이 시작되면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펼쳐간다. 그리고 포이트라스의 카메라는 이 용기 있는 폭로가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키는 과정과 스노든이 망명길에 오르는순간까지의 과정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폭로의 앞면과 뒷면. 그 어떤 픽션보다 흥미진진하고 긴박감 넘치는 순간들이 전부 펼쳐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다큐를 연출한 포이트라스 감독 역시 미국 정부의 ‘눈엣가시’였다는 점이다. 그는 2006년 이라크 전쟁을 조명한 <마이 컨트리, 마이 컨트리>를 만든 후 정부의 감시 리스트에 올라 구금과 취조를 받았다. 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관타나모 수용소의 실태를 다룬 <서약>(2010년)을 만들며 활동을 이어갔다. <시티즌포>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감독의 3부작 중 마지막 다큐멘터리다. 그는 이 다큐로 올해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받았다.

프라이버시가 없다면 각자의 사상을 존중받을 수 있는 자유 역시 사라진다.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할 정부와 시민의 관계가 지배자와 피지배의 관계가 되고 있다.” 다큐에는 스노든이 말하는 대로의 감시사회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속속들이 담겨 있다. 인터넷과 이메일, 신용카드와 스마트폰 등 일상적으로 누린 편리의 이면에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이처럼 <시티즌포>는 스노든 그리고 다큐자체가 던진 질문을 좇으며 적절한 답을 제시한다. 일단, 우리는 왜 감시당하는가. 9·11 이후 미국 정부는 테러를 방지하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명분을 갖고 있었다. ‘애국법(Patriot Act)’에 따라서다. 그러나 감시는 테러 가능성이 있는 몇몇 인물과 집단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감시의 대부분은 국가나 기업 간에 경쟁을 벌이는 사안이나 금융·경제 문제와 관련이 더 깊다. 미국의 외교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전 세계가 감시당했던 것이다.

스노든을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도 제작

스노든과 저널리스트 그리고 추후 이 일에 가담한 변호인들까지 ‘어떤 정보를 어떻게 얼마나 알릴 것인지’를 두고 장시간 회의하는 모습은 첩보전을 방불케 한다. 이는 주관적 편견을 배제한 채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고 “공개할 문서에 연루된 무고한 이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스노든이 앞으로 남은 모든 생의 자유가 억압당할지 모르는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신변을 만천하에 공개하려 한 이유가 드러난다.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들이 항상 어둠 속에서 신분을 감추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런 틀을 깨고 싶다. 만약 내가 억압당하고 사라진다면 더 많은 ‘시티즌’들이 일어설 거다.”

지난 10월29일 국내 기자들과 <시티즌포>시사회 후 화상 인터뷰를 가진 에드워드 스노든은 “(이 다큐를 통해) 국민 모두 선택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있고, 모든 사람에게는 위험한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다큐뿐 아니라 극영화에서도 스노든의 폭로는 뜨거운 감자다. <JFK>(1991년), <닉슨>(1995년) 등 선 굵은 정치 드라마에 잔뼈가 굵은 올리버 스톤 감독이 연출한 <스노든(Snowden)>이 내년 5월 미국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조셉 고든 레빗이 에드워드 스노든 역을 맡았다. 또한 재커리 퀸토가 글렌 그린월드 프리랜서 기자를, 멜리사 레오가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을 연기한다. <시티즌포>를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영화로 담길 것이라는 얘기다. 소니픽처스는 이보다 한 발짝 앞서 글렌 그린월드가 쓴 리포트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No Place to Hide)>의 판권을 구입했지만, 2014년 이메일 해킹 사태 이후 영화 제작은 답보 상태다.

한편 지난 6월 미국 의회는 법원의 허가 없는 통신기록 사찰 및 수집을 금지하는 ‘미국자유법(USA Freedom Act)’을 통과시켰다. 누군가의 용기 있는 목소리는 이처럼 사회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걸 믿고 기꺼이 행할 때, 우리는 감시사회 안에서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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