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버지를 놓아드렸으면 한다
  • 김태일 |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5.11.11 17:02
  • 호수 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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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원칙적으로는 자유발행제가 바람직하다’고 하던 황우여 교육부장관을 다잡은 것도, 어영부영하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것도 박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의 추진력은 놀랍다. 청와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운을 떼고, 교육부의 작업팀을 움직이고, 국사편찬위원회의 배후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박 대통령이 저토록 강력하고 간절한 목소리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부르짖는 까닭이 뭐냐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아버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 대통령이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에는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생각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일방주의적 강행을 하겠느냐는 분석이다. 역사교과서를 잘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저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일정이 박 대통령 임기 안에 책을 손에 쥐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도 그런 해설을 뒷받침한다.

사실, 박 대통령에게 아버지 문제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큰 걱정거리였다. 5·16 군사쿠데타, 유신 체제, 인혁당 사건, 정수장학회 등 때문에 박 대통령은 마음이 괴로웠을 것이다. 처음에 박 대통령은 아버지에 대한 역사적 비난을 거부했다. 그래서 논쟁이 뜨거웠다.

그러나 선거운동에 불이 붙으면서 박 대통령은 유권자들 앞에 결국 머리를 숙였다. 2012년 10월26일, 당시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시대에 이룩한 성취는 국민께 돌려드리고 그때의 아픔과 상처는 제가 안고 가겠다.” “이제 아버지를 놓아드렸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라고도 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당시 박 후보의 태도는 그것이 선거운동의 주도권을 잡아가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짠하게 했다.

그런데 지금 박 대통령은 그 짠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걱정케 하고 있다.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이른바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하면서, ‘5·16은 목적이 좋았고, 유신 체제는 불가피했으며, 인혁당 사건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가 있고, 정수장학회에 대한 비난은 부당하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는 역사 해석의 독점권을 국가가 가지고 정치권력의 입맛대로 역사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집필자 구성에서부터 청와대가 개입하고 있다는 소식은 그런 걱정이 기우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거둘 수는 없을까? 지난 대선 때 말했던 “이제는 아버지를 놓아드렸으면 한다”는 그 마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역사를 오랜 시간의 비바람에 맡겨둘 수는 없는 것인가. 그것이 정녕 아버지를 편하게 하는 길일 텐데….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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