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피디의 방송수첩] 단막극 편성 여부 여전히 ‘논의 중’
  • 박진석 | KBS PD (.)
  • 승인 2015.11.11 16:57
  • 호수 136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년 ‘존폐 위기’ 되풀이되는 단막극이 필요한 이유

매주 토요일 밤 11시50분 KBS 2TV에서는 ‘KBS 드라마스페셜 시즌3’를 방영하고 있다. 이름이 좀 길긴 한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단막극이다. ‘아직 하고 있었나’라는 생각을 하는 이도 꽤 많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방영 편수도 대폭 줄어들고, 방영 시간도 이리저리 널을 뛰고 있다. 올해는 봄에 4편, 여름에 5편, 그리고 10월 하순부터 6편, 그렇게 총 15편을 방영한다. 방영 시간도 봄에는 금요일 밤 9시30분, 여름에는 금요일 밤 10시50분, 이번에는 토요일 밤 11시50분으로 들쭉날쭉하다. 좀 길다 싶은, 위에 적어둔 공식 명칭에서도 보이듯 이른바 ‘시즌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년에 비해 10편 이상 줄어들었다. 게다가 정규 편성도 하지 않았으면서 간판만 ‘시즌제’라고 붙인 것으로 보인다. 회사에서 어떤 프로그램에 우선순위를 부여할 것이냐를 따지는 문제에서 밀려난 결과라는 얘기다.

드라마스페셜에서 선보였던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KBS

‘시청률 우선 시대’ 단막극이 가지는 경쟁력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경쟁력이 없다’는 논리다. 사실 방송사 입장에서 말하는 이 경쟁력이라는 것은 시청률, 더 나아가서는 광고 판매율일 터다.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얼마나 되었는가라는 측면도 조금쯤은 생각할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로 정리하면 ‘돈이 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지난해, 그러니까 ‘2014 드라마스페셜’에 KBS가 쓴 제작비는 대략 20억원 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투자 대비 회수한 돈은 18억원 정도다. 이 정도면 확실히 ‘대박’과는 거리가 먼 결과다. 드라마와 예능은 무조건 돈을 벌어와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화가 치밀 성적이다. 자료를 찾아보면서 스스로도 ‘역시 적자네. 그렇지만 생각보단 적자폭이 적네’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그 ‘경쟁력’이라는 것이 과연 어디서 기인하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든다. “연출자들은 잘해왔는데 주변 환경들이 문제야”라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킬러 콘텐츠가 반드시 확실한 경쟁력을 보여주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 아닐까. 상품의 품질이 가장 먼저 충족돼야 할 필요조건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제대로 된 판매 전략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방송에서는 그 전략이라는 것이 ‘편성’이다. 적절한 시간대에, 안정적인 정규 편성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느 수준 이상의 시청률을 기대하려면 최소한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습관이 형성되어야 한다. 프라임 뉴스는? 9시. 미니시리즈는? 10시. 주말극은? 8시. 이런 습관이다.

사실 안정적으로 정규 편성이 된다고 하더라도 단막극이라는 장르의 성격 자체가 고정 시청층을 형성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안정적인 편성에 더해 한 프로그램 안에서 시청자가 기대하는 맥락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미니시리즈든 일일극이든, 첫 회가 방영되고 나면 시청자는 그 세계 속에 빠져들어 즐기게 된다. 예컨대 요즘 잘나가는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다음 주 방송에서 갑자기 의문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단막극은 그런 게 일어난다. 대본과 연출에 따라 어떤 주에는 정통 멜로, 그다음 주에는 코믹 활극이 벌어진다.

그렇다고 ‘경쟁력이 없으니 단막극은 없애야 한다’는 말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논리이며 어폐가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왜 단막극은 계속 있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단막극의 존재 이유’는 ‘신인의 등용문’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좀 비뚤하게 들으면, 시청자가 훗날의 인기 작가나 우수한 연출자를 기다리기 위해 신인의 습작을 참아내야 한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너무 제작자 중심의 논리인 셈이다. 물론 고기도 많이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아는 것처럼 단막극을 많이 연출해본 연출자가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고 굳게 믿지만 말이다.

더 중요한 지점은 ‘다양성’이다. 대중들을 상대로 더 많은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대중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이냐면, KBS가 공영방송사라고 해서 대중들을 ‘계몽’하고 ‘올바르게’ 이끌 수 있다, 혹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뻔뻔한 오만이고 착각이라는 것이다. 다만 방송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발제’할 뿐이다. 다양한 이슈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식의 주의 환기다.

다양한 단막극이 주는 다양성의 권리

드라마라는 분야만 한정해서 보자면,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제공하는 것이 만드는 사람에게도 보는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이런 화법으로 만드는, 또는 이런 세계관을 가진 드라마도 있다고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이 시기 한국의 트렌드에 가장 맞는 필승의 상업적 전개를 가진 장르만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이라는 가치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드라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장르적인 다양성으로만 따지자면 올해 방영한 단막극에는 심령 멜로,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사극, 휴먼 코미디, 심지어는 좀비물도 있었다. 이번 시즌3에서는 매년 KBS에서 진행하고 있는 극본 공모 당선작 3편과 더불어 각기 다른 장르의 단막극을 선보이고 있다.

한 명의 시청자로서 바라는 점은 늘 단막극이 KBS의 주간 편성표 한쪽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연출자로서도 종종 필자가 연출한 단막극이 시청자와 만나는 것을 바라지만, 매년 단막극의 존폐가 되풀이되며 거론되는 터라 이번에 연출하는 단막극이 필자의 경력에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특히 다양성이라는 말이 점점 무색해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더욱 그런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내년의 단막극 편성 여부 역시 아직은 ‘논의 중’이라고 알고 있다. 내년에도 공영방송 KBS가 단막극을 통해 작지만 울림 있는 위로를 던질 수 있는 방송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