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으로 증거 지워진 후에야 현장 찾은 보건 당국
  • 노진섭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11.0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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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집단폐렴’원인결국미궁으로빠지나…초동대응늦고현장보존도실패
11월16일 현재 52명의 폐렴 환자가 발생한 건국대 동물생명과학관은 출입문에 공고문이 붙은 채 출입이 금지된 상태다. © 시사저널 임준선

‘건국대 집단 폐렴’ 사태의 원인을 두고 실험실 내부 환경오염으로 시선이 집중되자 해당 건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집단 폐렴 사태가 벌어지기 전, 동물생명과학관 건물에서 새로운 연구가 진행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험에 사용하기 위해 그 건물로 반입한 특정 물질에 연구원들이 노출된 후 집단 폐렴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건대, 새로운 연구 시작했을 가능성 커”

전 질병관리본부장인 전병율 차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예전부터 계속해오던 연구라면 이번과 같은 상태가 이미 발생했어야 한다”며 “가축 사료를 가지고 실험하는 연구원들이 사료 성분, 분패, 동물 분뇨 등과 관련된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면서 기존에 없던 특정 물질(병원체)이 실험실로 유입된 후 그 물질에 노출돼 감염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호흡기 이상 증상을 유발하는 물질이라면 마스크 착용 등과 같은 실험실 안전수칙을 따라야 했지만, 그 연구실에서 그런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건물 5층과 7층에 있는, 동물 사료와 관련된 실험이 이뤄진 곳들에서 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사료생물공학 실험실인 503호에서는 상시 근무자 13명 중 9명이, 동물영양생리 실험실인 504호에서는 12명 중 8명이 증상을 보였다. 또 외부 회사가 참여하는 동물자원연구센터로 쓰인 708호의 경우, 6명 중 4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건국대 측은 “새로운 실험을 한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건국대 대외협력처 관계자는 “그 건물에서는 소 태반을 이용한 면역 연구와 소 사료의 단백질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었을 뿐, 최근 시작한 실험은 없다. 늘 해오던 실험이므로 새로운 물질이 반입된 바도 없다”며 “그러나 소 사료는 매번 바뀌므로 새로운 사료가 반입됐을 수는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인한 첫 폐렴 환자 발생일은 10월 19일이다. 건국대병원은 환자의 폐렴 증상을 확인하고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원인이 불분명한 데다 유사 환자도 계속 이어졌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건국대병원은 10월 27일 오전, 광진구보건소에 “10월 19일 이후 산발적으로 원인불명의 폐렴 환자 3명이 발생했다”고 신고했다. 이 사실을 보건소로부터 전달받은 질병관리본부는 10월 28일 중앙역학조사반을 현장으로 투입했다.

전병율 교수에 따르면, 역학조사반은 현장에서 상황을 파악한 후 전화로 질병관리본부장에게 보고하게 되어 있다. 이후 유인물을 만들어 민간 전문가들에게 이메일로 배포하고 그들을 전화회의로 소집해 의견을 듣는다. 그 내용을 종합해 국민에게 발표한 후 정밀한 작업은 추가로 착수하는 게 순서다. 이 내용대로라면, 질병관리본부는 신고를 받은 당일인 10월 27일 현장을장악하고 조사 계획을 세운 후, 다음 날인 28일 국민에게 종합적인 내용을 발표했어야 한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반은 신고를 받은 27일 현장에 가지 않고 그 다음 날에야 움직였다. 또 사람 간에는 전파가 없다는 등의 사실을 알려 국민 불안을 가라앉혀야 하는데, 대국민 브리핑은 11월 2일에야 이뤄졌고 그사이에 국민 불안은 증폭됐다.

역학조사반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인 10월 28일 오전 5~8시 사이에 건국대는 전문소독업체를 불러 건물 전체를 소독했다. 그러나 원인이 채 밝혀지지 않은 데다,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가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 소독부터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죄나 화재 현장에서 증거가 인멸된 것처럼 병원체가 사라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범죄 현장도 보존해야 하듯이 원칙대로라면 감염 현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가검물(可檢物) 채취 등 기초적인 조사를 한 다음 소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 당국이 발병 원인을 특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을 훼손한 것은 과실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건국대 관계자는 “소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곳이어서 최초 브루셀라증(브루셀라균에 감염된 동물로부터 사람이 감염돼 발생하는 인수(人獸) 공통 감염증)을 의심했다”며 “이런 경우 동물 연구 관련 지침에 따라 자체 소독하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원인 미상으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

10월 28일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방역상의 문제로 건국대 동물생명과학관에서 건물을 11시부터 폐쇄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교수와 학생들이 짐을 챙겨 건물을 빠져나오는 시간이 지체되어 실제론 12시쯤 건물이 폐쇄됐다. 사실 건물 폐쇄결정은 27일 이뤄졌다. 건국대 생물안전위원회의 긴급회의가 소집돼 오후 6시쯤 건물을 폐쇄하기로 의결했다. 생물안전위는최종 결정권이 없는 자문 기구이므로 학교총장의 재가를 받기 위해 실제 폐쇄 조치가 하루 지연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해 건국대 관계자는 “폐쇄를 10월 27일 의결하고, 28일 학교긴급회의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구두로 총장에게 보고함으로써 폐쇄가 시행됐다”며 “총장의 서면 결재 때문에 폐쇄가 늦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초동 대응이 늦어진 데다 현장 보존에 실패한 이유 등으로 이번 사태의 원인은 미궁에 빠졌다. 게다가 전형적인 폐렴은 X선 사진상에서 폐의 한 부분에서만 나타나는데, 이번 폐렴은 여러 군데에 다발적으로 나타나 원인 규명을 더욱 어렵게 한다. 또 기침은 폐렴의 대표적인 증상 가운데 하나인데, 이번 폐렴 환자의 호흡기 증상은 가벼운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폐렴이 집단적으로 한순간에 나타난 점에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원인일 것으로 본다. 그러나 여러 가지 검사로도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확인되지 않아 곰팡이나 화학물질이 원인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심지어 의문과 의혹이 꼬리를 무는 이번 사태는 원인 미상으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원인을 밝히더라도 결과가 2~4주 후에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과 같은 첨단 검사법을 동원했다면 며칠 만에 원인이 밝혀지거나 최소한 병원체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았을 것”이라며 “검사비가 100만원 이상으로 비싸서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정부는 첨단 기기에서 나온 결과를 분석하는 전문가조차 육성하지 않아 감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원인 파악이 늦어진다”고 비판했다.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이 11월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건국대 집단 폐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감염병 예방은 자동차보험과 같다”

이번 건국대 집단 폐렴 사태 대응에 대해 전문가들은 올 초에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 사태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비판한다. 학습 효과 덕분에 환자발생 시 환자 격리 조치는 신속히 진행됐지만, 최초 진단과 검사에 대한 기본적인 대안은 미흡하다는 것이다. 김우주 고려대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번 메르스 때처럼 이번에도 질병관리본부 등 보건 당국은 민간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정부가 핵심 역할을 하고 민간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는 게 옳지만, 우리 보건당국은 처음부터 민간 전문가의 의견을 좇기에 바쁜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메르스 사태 후 정부는 격리 병상 수를 늘리는 등의 대안을 세웠다. 그러나 환자를 접하는 일선 병원에서는 감염병이 의심되는 환자라도 섣불리 감염병 검사를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검사비를 건강보험으로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고열 환자가 병원에 가면 의사는 감기 증세 정도로 진단하고 항생제를 처방하는 데 그친다”며 “며칠 후 그 환자가 감염병에 걸린 것이 확인되면 그제야 우왕좌왕한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돈 문제 때문에 자동차보험을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보험료보다 사고 후에 들어가는 돈이 더 많기 때문이다. 감염병 예방에도 마찬가지 논리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평상시 고열로 병원을 찾는 모든 환자를 대상으로 감염병 검사를 하면 불편하고 국가적 부담금도 늘어난다”며 “그래도 선진국이 10명의 고열 환자 가운데 1~2명의 감염병 환자를 골라내기 위해 모든 고열 환자를 대상으로 감염병 검사를 하는 이유는 감염병 확산 방지가 돈 문제로 접근할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질병관리본부는 11월 2일 대국민 브리핑을 통해 건국대 폐렴 사태의 원인을 특정하지 못했다. 세균 7종, 바이러스 9종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으나, 특이 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사람 간 전염성은 거의 없다고 발표했다. 11월 6일 현재 환자는 52명이고 대부분 호전되는 추세다. 질병관리본부는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이 학교 학생과 교직원 등 1600여 명을 관찰 대상으로 관리하고 있다.

중단됐던 건국대 동물생명과학대학의 학부 수업은 다른 단과대학 건물에서 11월 5일부터 재개됐다. 대학 관계자는 “추가 발병 환자가 없고, 사람 간 전파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보건 당국과 협의해 강의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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