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질 나쁜 범죄자 중 49%는 전과자
  • 노진섭·김경민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11.05 14:20
  • 호수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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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 10명 중 1명 소재 불분명 시민·법조계, 격리 원해

9월 이른바 트렁크 시신 사건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피의자 김일곤은 충남 아산의 한 대형마트에서 납치한 35세 여성을 살해한 후 시신을 차 트렁크에 싣고 삼척·양양·부산·울산·서울 등 무려 1200여㎞의 거리를 이동했다.

그는 20세 때부터 28년 동안 22번이나 수용된 전과자다. 2004년 21명을 연쇄 살인하고 검거된 유영철은 전과 14범으로 특수절도·성폭력 등으로 11년 동안 수감됐다. 2009년 부녀자 7명을 살해한 강호순은 전과 9범이고, 2010년 초등학생 납치 성폭행범 김수철은 전과 14범이었다. 2012년 주부 살인 사건을 저지른 서진환은 전과 11범이었으며, 올해 1월 의붓딸과 아내의 전남편을 살해한 안산 인질 살해범 김상훈은 전과 13범이다.

이렇게 전과자의 재범이 꾸준히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전과자의 범죄율은 떨어질 줄 모른다. 검찰청의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2011년 전체 범죄자 190만7641명 중 전과자가 82만8920명이다. 2범 이상 전과자만 따져도 전체 범죄자의 46%를 넘는다. 2012년과 2013년에도 41%대였다.

ⓒ 시사저널 정찬동

강력범죄의 경우 전과자 비율은 더 높다. 2011년부터 49.3%, 49.1%, 49.6%로 3년간 49%대를 유지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올해 4월 발간한 ‘2014 범죄백서’에서 “최근 검거된 범죄자 중 전과자 비율이 증가 추세를 보이므로 전과자의 재범 방지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법무부·경찰 공조 미흡, 우범자 활개

흉악범이 활개 치는 사회에서 국민은 불안하다. 2012년 형사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범죄자에게 형벌 이외에 다른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96.6%,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는 대답은 89.1%로 나타났다. 대다수 국민은 흉악범에 대한 격리를 원하는 것이다. 직장인 전화경씨(45)는 “사건이 터진 다음에 우왕좌왕하지 말고 그런 흉악범은 미리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트렁크 시신 사건의 현장검증이 실시된 9월23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 빌라 근처에서 피의자 김일곤이 범행 상황을 태연히 재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는 범행 우려가 있는 흉악범을 우범자(虞犯者)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우범자는 범죄 전력과 재범 위험성, 성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데, 김일곤과 같은 강도·절도범의 경우 3회 이상 금고형 이상의 실형을 받고 출소하면 대상자가 된다. 전과 22범인 김일곤은 우범자였음에도 교정 당국의 부주의로 2013년 교도소 출소 당시 우범자 명단에서 빠졌다.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에서 나온 김일곤은 여전히 사회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최근 검거 당시 그의 주머니에서 그가 살해하려던 28명의 이름이 적힌 쪽지가 발견됐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잔혹한 복수극을 계획할 때도, 시신을 차 트렁크에 싣고 전국을 활보하는 동안에도 법무부와 경찰의 사회안전망은 그를 놓치고 있었다.

우범자 관리 절차는 이렇다. 교정시설에서 출소자의 출소 사실을 출소자의 주소지나 거주 예정지의 관할 경찰서에 통보한다. 출소자의 관리 주체가 법무부에서 경찰로 넘어가는 것이다. 경찰이 교도소 측으로부터 전과자의 출소 통보를 받으면 경찰서 형사(수사)과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심사위원회를 열어 우범자로의 편입 여부와 등급을 결정한다. 우범자 관리 대상은 조직폭력 범죄와 살인·방화·강도·절도·강간·강제추행·마약 등 8개 죄종에 한하며 그 성향과 재범 위험성 등의 수위에 따라 단순 자료 수집 대상자, 첩보 수집 대상자, 중점 관리 대상자로 나뉜다.

우범자 명단에 오른 전과자에 대한 실질적 동태 파악 등 관리는 해당 지역의 관할 지구대에서 담당한다. 지구대 경찰이 담당 지역에 사는 우범자를 임의로 배분해 필요한 수준에서 관리하며 관련 보고를 정기적으로 관할 경찰서로 올린다.

제도상으로는 우범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교정 전문가와 형법 전문가들은 실제 운영 과정은 다르다고 지적한다. 법무부 산하 교정기관과 경찰의 공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전직 교도관은 “국가교도소 직원들은 이른바 ‘공무원 마인드’로 일한다”며 “출소자 정보가 누락된 것을 교도소 측에서 모르고 있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력 부족도 관리 소홀의 원인으로 꼽힌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법무부 소속 보호관찰관은 1인당 수백 명의 우범자를 관리한다”며 “법무부는 경찰에 우범자 명단을 넘겨주는 정도이고, 경찰도 인력 등의 문제로 형식적인 점검에 그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우범자 관리할 법적 근거도 없어

출소한 우범자 관리 주체인 경찰이 적극적으로 우범자 관리를 할 법적 근거가 없다. 관할 경찰서로부터 담당 구역 내 우범자 명단을 통보받은 지구대 경찰은 소속 경찰 수에 따라 관리 대상자를 나누거나 관리 대상자의 수가 적은 경우 한 명의 경찰이 맡는다. 문제는 우범자 첩보 수집에 관한 규정인 ‘우범자 첩보 수집 등에 관한 규칙’이 경찰 내부 훈령에 불과해 첩보 수집 활동에 강제력을 동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범자를 담당하는 지구대 경찰은 주로 ‘간접 관찰’ 방식으로 우범자 동향을 파악한다. 직접 대면한다 하더라도 우범자의 활동에 직접적인 개입은 할 수 없다.

우범자 명단에 오른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면 그를 관리하던 관할 지구대에서 이전 지역 관할서로 정보를 보낸다. 해당 경찰서는 전송된 우범자 정보를 전과자의 새로운 거주 지역 관할 지구대로 보내줘야 한다. 그러나 우범자가 거주지 이전신고를 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경찰은 우범자의 소재를 놓칠 수밖에 없다. 우범자의 소재 파악 과정에서 ‘소재 불명’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청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조원진 의원실(새누리당)에 제출한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우범자 4만670명 중 10.75%에 해당하는 4374명에 대한 소재 파악이 이뤄지지 않았다. 2012년과 2013년에도 우범자 가운데 소재 불명 비율이 각각 16%, 10.2%로 파악됐다. 지난 3년간 우범자 10명 중 1명은 경찰 당국의 관리를 벗어나 있던 셈이다.

체계적 관리가 요구되는 성폭력 우범자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2년 성범죄 우범자 2만371명 중 2772명(13.6%), 2013년 1만9203명 중 1648명(8.6%), 2014년 1만8514명 중 1616명(8.7%)의 소재가 불분명했다. 이 비율은 올 상반기에도 8.8%대다.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는 “현재 우범자 관리 체계는 실효성 측면에서 무의미하다”며 “범죄라는 게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지 모르는데 경찰이 한 번씩 찾아가 점검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겠느냐”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과가 많을수록 재복역하는 경우도 많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재복역률이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교정시설에 수용된 자가 형기 종료, 가석방, 사면, 가출소, 감호 기간 종료 등으로 출소한 후 범죄행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3년 이내에 다시 교정시설에 수용되는 비율을 말한다. 법무부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년 전체 2만5725명의 출소자 가운데 5699명(22.2%)이 재복역자였다. 이 중 초범을 제외한 2범 이상의 사람은 4525명(80%)에 달했다.

국회 안정행정위원회 박남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묻지 마 범죄자’ 48명 가운데 75%가 전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전과 수는 6건이고 최대 전과 수는 27건이다. 폭력이 92%인 묻지 마 범죄자의 재범 비율이 높다는 의미다. 김지선 한국형사정책연구소 범죄동향·통계연구센터장은 “전과자 범죄  비율이 높다는 것은 결국 교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진단했다.

법무부, 보호수용제 도입 움직임

우범자 관리 외에도 각종 특례법 등으로 중범죄자의 특정 시간 외출 제한, 특정 장소 접근 금지 등의 조치가 가능하다. 전자발찌나 신상공개 등으로 성범죄가 줄어들었다는 통계도 있다. 고영상 변호사는 “그럼에도 전과자의 재범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흉악범의 형기를 외국처럼 10~20년까지 늘려야 한다는 의견 등 다양한 대안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사회보호법에 따라 2년형을 선고받으면 보호감호 2년을 더해 사실상 4년 동안 복역하는 보호감호제가 있었다. 이 제도는 재범 우려가 큰 범죄자를 형 집행 후에도 일정 기간 격리 수용해 사회 적응을 돕는다는 취지로 1980년 도입했으나 이중 처벌과 인권 침해 논란으로 2005년 폐지됐다.

과거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넘어오면서 범죄자 인권이 강화됐다. 그러나 범죄 재발 방지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법조계와 학계 등에서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법무부는 최근 보호감호제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할 움직임을 보인다. 재범 우려가 있는 사람을 시설에 수용해 사회와 격리하고 사회 복귀에 필요한 교화 교육을 실시하는 제도다. 외국은 보호수용제를 운용하고 있다. 독일·스위스 등 유럽 국가에는 생명·신체 상해와 관련된 범죄는 수용 기한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강력 범죄자를 수용하되 단기 외출, 면회 등은 자유롭다.

보호수용법 제정안은 올해 3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제정안에 따르면, 법원은 해당 피고인에게 징역 3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하는 때에 한해 1~7년까지 보호수용을 함께 선고할 수 있다. 흉악범죄의 뿌리를 뽑겠다는 의지다. 이를 두고 보호감호제의 부활이라는 논란이 있다. 법무부는 “보호수용제 대상자는 살인·성폭력·강도 등 흉악범으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김현웅 법무부장관은 7월 범죄 예방 대책 간담회에서 “흉악범에 대해서는 최대 7년 보호수용제를 도입하고 전자팔찌나 성 충동 억제 약물 치료 등을 통해 출소자를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법무부 소속 연방 보안관(마샬) 조직을 두고 탈주자나 지명수배자 등을 추적한다. 법무부 소속이지만 수사·체포 등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우리 정부도 별도의 우범자 관리 기구 설립을 고민하고 있다. 배상훈 교수는 “법무부와 경찰이 공조가 잘 안 되는 가운데 우범자 관리에 사각지대가 생긴다”며 “미국처럼 별도의 기구를 두고 우범자에게 생활지도를 하면서 범행 재발이 우려될 때 즉각 개입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다기관공공보호체계(MAPPA)를 2003년 도입했다. 경찰·법무부·보건복지부·교육부 등 관련 기관 모두가 우범자 관리에 참여한다. 도입 5년 만에 재범률이 높은 강력범죄자의 수가 절반으로 감소했다. 이백철 교수는 “한국식 MAPPA를 도입하면 우범자 동태 파악이 쉬울 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우범자들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편입시켜 우범자의 재범 비율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또 경찰에 강제집행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우범자 첩보 관리 규칙을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반영하고 우범자의 강제 수용 조항을 담은 개정안이 2012년 8월 국회에 제출됐으나 3년째 계류 중이다. 이찬열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대표 발의한 이 개정안은 ‘우범자는 경찰의 주거 방문·질문 등 정보 수집 활동에 성실히 협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우범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대우하면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김지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범죄자를 감시하는 것보다 교정시설에서 교화시키고 출소 후 사회에 자연스럽게 편입될 수 있도록 연계시켜주는 게 궁극적인 범죄 예방에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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