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그만 괴롭히라
  • 김재태 편집위원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5.10.29 14:43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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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우는 여러 교과목 가운데 대상에 대한 관점을 의미하는 ‘관(觀)’자를 붙일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 몇 개 중 하나가 역사 과목입니다. 역사관(歷史觀)이라는 명사가 따로 있을 정도로 관점이 중시되는 과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역사를 대하는 자세는 신중해야 합니다. 결코 경박한 마음가짐으로 마주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그런 역사가 요즘 큰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극과 극으로 갈린 두 진영의 이념 줄다리기에 치여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그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뜨거운 감자를 꺼내놓은 탓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입 경쟁을 부추기며 이른바 국·영·수 위주로 굴러가는 우리나라 교육 체제에서 역사 과목이 이처럼 각별한 조명을 받는 것 자체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양측 모두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광경을 지켜보며 우리가 역사라는 교과목에 대해 언제 이처럼 극진한 대우를 해준 적이 있었는지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지만, 결국은 국정화 문제가 잘 있던 국론을 긁어 부스럼으로 갈라놓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교과서 내용이 잘못되었다면 바로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꼭 국정화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적잖은 의문이 따릅니다. 그리고 이처럼 논란이 일 것이 빤한 사안을 군사작전을 하듯이 밀어붙이는 모양새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나 교과서 문제는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교육의 문제입니다. 공청회 같은 절차를 통해 여러 의견을 두루 들어보고 차근차근 진행해도 나쁠 게 전혀 없습니다. 이왕에 할 것이면 다시는 논란이 생기지 않게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앞뒤 안 가리고 밀어붙이니 그 의도를 두고 이런저런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벌어는 교과서 전쟁이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 못한 채 일종의 ‘네이밍(naming) 게임’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입니다. 새누리당이 현수막으로 내건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자극적인 주장이나 새정치연합의 ‘친일·독재 교과서’ 같은 주장 모두 과도합니다. 시사저널이 지난 호에 현행 한국사교과서 7종을 모두 분석해보았지만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해 설명해주는 대목은 있어도 ‘주체사상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대목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부 일제 식민 시대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곳은 일부 있어도 ‘친일·독재 미화’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치가 ‘생물(生物)’이란 말을 듣듯 학문도 어찌 보면 생물입니다. 시대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하며 살아 움직이는 것이 학문입니다. 그런 학문을 한 방향으로 잡아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교과서의 수요자인 학생들은 또 무슨 죄입니까. 또 어른들 싸움에 등 터지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그렇잖아도 치열한 경쟁 속에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을 제발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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