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길주의 黙黙不答] 은행 셔터와 금융개혁
  • 윤길주 편집위원 (ykj77@sisabiz.com)
  • 승인 2015.10.20 15:52
  • 호수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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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오후 4시면 문을 닫는 금융회사가 (한국 말고) 어디에 있나.”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 10일(현지 시각) 페루 리마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뒤 한 말이다. 최 부총리는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한 축인 노조의 힘이 너무 강하다.” “입사 후 10여 년 뒤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일을 안 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우리 금융이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역시 정치인 장관이라 다르다. 그는 3선 의원(17~19대)으로 박근혜 정부 실세로 꼽히는 인물이다. 내공이 만만찮다. 어디를 건드리면 국민이 ‘욱’ 할지 꿰고 있다.

나 또한 은행이 4시에 문을 닫아 분통을 터뜨렸던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은행 점포까지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올 때도 있다. 어떨 때는 사정 해서 겨우 뒷문으로 들어가 일을 보기도 했다. 이런 씁쓸한 경험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셔터가 내려진 은행 점포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그러다 울화통이 치민 사람이 숱하게 많을 것이다.

4시에 문 닫는 이들이 입사 10년이면 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한다. 은행원들 월급 많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지만 경제팀 수장이 ‘10년, 억대 연봉’이라고 꼭 찍어서 말하니 확 와 닿는다. 더구나 서민에게 우리 은행들 문턱이 얼마나 높나. 은행을 아직도 고리대금업자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 게 다 이유가 있다.

실세 부총리의 ‘구두 경고’는 금세 약발이 먹히고 있다. 깜짝 놀란 은행장들이 셔터 내리는 시간을 늦추겠다며 알아서 기고 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다면 고객을 위해 진작 바꿀 일이지 이제와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은행원들은 셔터를 내리고도 밤 8~9시까지 마감 작업을 한다고 항변한다. 4시에 끝나는 게 아니라 밤 늦은 시간까지 일한다는 얘기다. 그들의 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고객 입장에서는 4시 이후는 의미가 없다. 식당에서 밤 9시에 문 닫은 후 설거지하고 다음날 음식 준비하는 것과 다를 게 뭐 있나. 4시 넘어서 은행 가면 헛걸음이고, 9시 넘어 식당 가면 밥 못 먹는 건 매 한 가지다.    

어쨌든 은행 영업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최 부총리는 국민 편의를 위해 ‘한건’ 했다. 그런데 이걸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갔다. 그는 우리 금융이 우간다보다 못한 책임을 노조 탓으로 돌렸다.

강성 노조가 문제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금융개혁이 안되고 있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 우리 금융의 가장 큰 문제는 관치와 정치권력의 개입이다. 낙하산이 국책은행은 물론, 심지어 민간 은행 고위직까지 점령하는 현실에서 금융개혁 운운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대우조선해양의 손실이 4조원을 넘어서는 동안 산업은행은 뭘 하고 있었나. 전문성 없는 낙하산들 들락거리기 바빴던 것 아닌가 말이다. 최 부총리가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금융 노조의 비대한 권력도 따지고 보면 무자격 낙하산이 키웠다. 낙하산이 내려오면 노조가 반발하고, 이를 다독이기 위해 적당히 야합했다. 그래서 노조 권력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대신 낙하산은 자리를 보장받았다. 노조와 낙하산이 공생한 것이다. 이것을 깨는 게 금융개혁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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