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폭발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지나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5.10.1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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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물을 일반 화물과 동일 취급…제2의 톈진항 사고 일어날 수도

인천국제공항(이하 인천공항) 위험물 터미널에 잡음이 일고 있다. 위험물 터미널 운영권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에 넘어간 직후 ‘갑질’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서다.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물류업체 서정인터내셔날(이하 서정)이다. 이 회사는 지난 4월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공항공사)가 발주한 위험물 터미널 운영사업자로 선정됐다. 위험물 터미널은 관련법에 따라 위험물로 분류된 화물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공항 내 북쪽 화물터미널 지역 D동에 마련된 곳이다.

항공사-중소기업, 위험물 터미널 운영 논란

위험물 터미널 사업은 지난 15년간 아시아나항공이 지분 100%를 보유한 아시아나에어포트가 맡아왔다. 이번 입찰 전엔 아시아나에어포트를 비롯해 대한항공 계열사인 한국공항과 동보항공그룹 산하의 동보공항서비스 등 지상조업사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동보공항서비스는 79억원을 입찰가로 써냈고, 아시아나에어포트와 한국공항은 61억원과 39억5000만원을 각각 제시했다. 결국 서정이 85억1000만원의 최고 입찰가를 써내 사업권을 거머쥐게 됐다. 중소 물류업체가 대기업을 제치고 사업권을 따낸 것이다.

인천광역시 중구 운서동에 위치한 인천국제공항공사. ⓒ 시사저널 최준필

이로써 서정은 지난 5월1일부터 5년 동안 위험물 터미널을 운영하게 됐다. 그러나 사업은 시작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항공사들이 위험물 터미널로 보내오는 화물량이 일제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서정에 따르면, 기존에 배정된 화물량은 매달 1000톤 규모였다. 서정이 입찰 전 수익성 검토 과정에서 손익분기점을 900톤으로 잡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영업 개시 첫 달인 지난 5월 터미널로 들어온 화물은 473톤에 불과했다. 예상했던 물량에서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이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6월 화물량은 545톤이 전부였고, 7월과 8월에도 각각 786톤과 671톤 수준에 머물렀다.

여기에 지난 6월 대한항공·한국공항과 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에어포트, 스위스포트 등 국내외 항공사와 지상조업사들이 항공기에서 내린 위험물을 D동까지 운송해준 비용을 청구했다. 이들 회사가 요구한 금액은 운송비와 터미널 사용료 명목의 THC(Terminal Handling Charge)를 합해 1㎏당 159원이었다. 매달 1000톤의 화물이 배정된다고 가정했을 때 사업 기간 동안 95억원이 넘는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셈이 된다. 위험물 터미널로 배정되는 화물량이 기존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데다 추가비용이 발생할 경우 사업 지속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운송비는 서정도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위험물 운송이 항공사의 의무라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정은 그 근거로 ‘보세화물 입출항 하선·하기 및 적재에 관한 고시’를 제시했다. 해당 고시에 따르면, 항공사는 위험물품의 하기(下機) 작업 계획을 수립해 항공기 입항 후 24시간 내에 지정된 하기 장소에 반입시켜야 한다. 이를 이유로 서정은 운송비 지급을 거절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운송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그래도 기존에 이뤄지던 관례에 맞춰 항공사 및 지상조업사들 등과 어떻게든 협상을 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결렬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항공사들과 지상조업사들은 운송을 책임질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D동은 터미널(하기 장소)이 아닌 단순 저장시설(창고)이기 때문에 관련 고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공항공사도 항공사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편의상 터미널로 명칭만 해왔을 뿐 실제론 저장시설이라는 입장이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업무협약서를 보면 D동은 위험물 저장시설이라고 명시돼 있다”며 “입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기본적인 부분도 검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만일 D동이 터미널이었다면 관련 규정에 따라 서정에는 입찰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정은 여전히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먼저 위험물 터미널 사업 입찰 안내서에는 사업명이 ‘인천국제공항 위험물 터미널 운영 사업’이라고 적시돼 있다. 뿐만 아니라 운영계약서상에는 사용료에 대해 창고료와 THC를 합한 금액이라고 명시돼 있다. THC는 터미널 사용에 따라 징수되는 비용이다. 또 인천세관이 부여하는 위험물 터미널의 통관처리부호도 터미널을 의미하는 ‘F’로 돼 있다. 따라서 D동을 터미널로 판단했다는 게 서정의 주장이다.

서정 관계자는 공항공사 측에 “만일 공항공사가 D동을 터미널로 인정하지 않고 창고라고 주장할 경우 낙찰자에게 D동을 터미널로 인지하게 해 운영에 혼란을 일으킨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항공사 관계자는 “아시아나에어포트가 위험물 터미널을 운영할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서정이 기존에 운영되던 방식을 바꾸려고 하니 문제가 커지게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중소기업이 운영권 따내자 위험물량 ‘반 토막’

이처럼 양측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항공사들은 위험물 운송을 중단했다. 이 때문에 6월 중순까지 위험물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자 세관 당국은 서정 측에 운반을 책임져달라고 부탁했다. 공항 내 ‘물류 파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정은 향후 해결 방안을 찾아달라는 조건을 내걸고 한시적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사에서 보유하던 위험물을 운반 차량을 동원해 운송했다.

그러나 항공기 계류장 내 ‘에어 사이드(Air Side)’를 통해 직선거리로 위험물을 운송할 수는 없었다. 허가받은 조업사만 계류장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공항 내로 위험물을 넘겨받은 뒤 계류장을 둘러싼 ‘랜드 사이드(Land Side)’를 통해 운송을 해야 했다. 이렇게 되면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한다. 이처럼 운송비를 책임지면서 서정의 적자는 점점 쌓여갔다. 공항공사와 세관 등에 현 사태를 시정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서정은 지난 9월15일 운행 서비스를 종료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공항공사와 항공사 등에 발송했다.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시기 항공사들과 공항공사 등은 대책회의를 열어 향후 방침을 결정하고 화주들과 물류업체들에 공문을 보냈다. 위험물 터미널로 화물을 운송하는 책임이 화주에게 있으니 12시간 내에 처리하라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정해진 시간 내에 화물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김포공항 내에 위치한 위험물 창고로 임의 배정하겠다고도 했다. 서정은 항공사들이 운송의 의무를 화주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런 조치가 자사에 대한 압박 차원의 성격이 짙다고도 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사옥, 대한항공 사옥 ⓒ 시사저널 박은숙

위험물 터미널은 사실상 개점휴업

일련의 사태로 서정의 위험물 터미널은 현재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하루에 들어오는 화물은 2톤 안팎이 전부다. 지난 8월 하루 화물량이던 23톤의 10% 안쪽으로 물량이 대폭 줄어든 셈이다. 이렇다 보니 사업비 거의 대부분을 빚으로 떠안아야 할 판이다. 서정은 10월에 예상되는 적자 규모만 1억7000만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땅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지켜보거나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양측은 현재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따라서 향방을 가늠하기도 어렵다. 서정은 현재 법적 대응까지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법정 싸움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들 사이의 공방은 단순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이권다툼으로만 보기 어렵다. 서정은 갈등의 핵심인 ‘D동이 터미널인지 창고인지 여부’는 국민 안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는 모든 위험물은 일반 터미널에서 일반 화물과 구분 없이 취급되고 있다. 위험물 터미널이 ‘터미널이 아니어서’다. 해외 공항과 항공기에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항공법이나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기준에 따라 위험물로 관리되던 화물이 인천공항에 들어오면 일반 화물로 분류되는 셈이다. 일반 터미널에는 위험물을 처리하기 위한 어떤 시설도 마련돼 있지 않다.

또 위험물 터미널이 창고여서 상당수 위험물이 일반 화물로 일반 터미널에 보관되거나 공항 내로 반입된다. 터미널은 항공법·IATA·보세화물관리에 관한 고시를 적용할 수 있지만, 창고의 경우 위험물안전관리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항공법 등 국제법은 위험물을 클래스1부터 클래스9까지로 분류하고 있다. 반면 위험물안전관리법은 위험물을 1류에서 6류까지로 나눈다. 위험물안전관리법을 적용하게 되면 고압가스, 독성 물질, 부식성 물질, 방사성 물질 등은 일반 화물로 빠지게 된다. 이 때문에 지난 9월15일부터 20일간 아시아나항공 물류창고에선 방사성 물질 포함 제품 650㎏, 고압가스류 250㎏, 화기성 물질 712㎏, 산화촉매제 138㎏ 등이, 대한항공 물류창고에서도 부식성 물질 14㎏,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제품 90㎏, 유기 과산화물질 502㎏ 등이 일반 화물과 함께 보관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2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중국 톈진(天津)항 폭발 사고의 원인 물질인 사이안화나트륨은 위험물관리법을 적용하면 일반 화물처럼 취급된다. 일각에서 톈진 항 폭발 같은 대형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전조(前兆)도 있었다. 지난 9월6일 아시아나항공 보세창고에서 리튬배터리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리튬배터리 역시 위험물안전관리법 적용에 따라 일반 화물과 같이 취급되고 있다. 서정 관계자는 “공항공사가 위험물 터미널을 창고로 취급하면서 국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고 있다”며 “사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문제에 대해선 반드시 짚고 넘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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