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피디의 방송수첩] "왜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고 있나"
  • 박진석 | KBS PD (.)
  • 승인 2015.10.14 17:09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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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본 완성까지 PD와 작가 치열하게 머리 맞대

요즈음은 TV 단막극 <KBS 드라마스페셜>을 준비 중이다. 미니시리즈나 연속극 공동 연출을 제외하고 단독으로 연출하는 프로그램으로는 세 번째다. 올해는 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 매년 회사에서 주최하고 있는 단막극 공모전을 방송하는 ‘당선작 시리즈’에 연출할 자리가 하나 비었던 것이다. 인생은 타이밍이랄까. 단막극이 만들어지기까지, 작가가 대본을 쓸 동안 연출은 무엇을 할까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어찌 됐건 저번 글에서 ‘연출자는 이야기꾼’이라는 말을 했더랬다.

대본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천차만별

연출자가 이야기꾼이라고 선언했지만 확실하게 구분하자면 연출자는 대본을 쓰진 않는다. 드라마 제작진을 축구팀에 비유하자면 ‘스트라이커’는 역시 작가다. 손끝에서 인물과 대사와 사건이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당사자다. 그 과정에서 연출자가 ‘개입’한다. 대신 어떤 작가와 어떤 연출자가 만나 개입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대화의 과정에서 수많은 변수가 생긴다.

세 편의 단막극 중 첫 번째 연출작은 연출자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작가가 대본화한 사례였다. KBS의 경우, 드라마 데뷔는 통상 이런 방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연출자가 대본을 쓰는 사례도 있지만, 필력이 그 정도까진 아닐 경우 잘 구현해줄 것 같은 작가를 섭외해 작업을 시작한다. 첫 작품은 직접 겪은 주차 시비가 이야기의 단초였지만, 그런 사소한 시비가 눈덩이처럼 커져 파국으로 치달으며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하는 대본으로 완성되기까지 지난한 대화의 과정이 있었다.

두 번째 드라마는 작가의 원안(原案)을 재해석해 새로운 이야기로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원안은 원안대로 작가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와 나름의 재미가 있었지만, 연출자인 내가 ‘꽂힌’ 부분은 주인공의 독특한 캐릭터와 그런 캐릭터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간다는 요소였다. 오랜 수정 끝에 대본 초고의 고유한 느낌은 사라진 대신, 좀 더 대중적인 활극 시나리오로 바뀌었다.

세 번째인 이번 드라마는 보통의 시청자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표준적인 모양새에 가까울 것 같다. 작가가 초고에서 말하고 싶었던 핵심 스토리와 주제를 최대한 살려가되, 그런 작가의 의도가 어떻게 하면 좀 더 시청자에게 잘 전달될 것인지를 목표로 수정하고 있다.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은 공모 당선작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너무 내 마음대로 바꿔 초고가 본디 가지고 있던 고유의 느낌을 완전히 잃어버린다면, 당선작의 의미가 다소 퇴색될 테니까.

어떠한 모양새를 띠든 대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좌절을 느끼는 때는, 내가 이렇게 고리타분하고 재미없고 스토리텔링에 대해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었나 하는 자각이 올 때다. 작가가 베틀 돌리듯 얽혀 있는 플롯과 캐릭터를 씨줄과 날줄로 삼아 엮어가며 이야기를 만들어갈 때면 반드시 막히는 부분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작가님, 얽힌 부분은 이렇게 풀어가면 됩니다”라고 멋있게 해결책을 던지고 싶지만 현실은 비루하다. 그냥 같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끙끙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쯤 되면 머릿속에 항상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거친 바다를 일엽편주 낡은 나룻배로 건너고 있는 그림이다. 산산조각 나려고 하는 나룻배의 판자 조각들을 연출자와 작가가 억지로 끌어모아 배 모양으로 유지하려 애쓰고 있을 뿐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새어 들어오는 물도 퍼내면서 말이다.

연출자와 작가가 대본을 수정하는 과정은 일종의 대화다. 수정고(修正稿)를 읽고 직접 만나서, 혹은 긴 통화를 하면서 조율을 하는 경우도 있고, e-메일을 통해 주고받는 경우도 있다. 수정고에서는 모자란 부분, 앞으로 보충해야 할 부분, 구성상의 치명적인 결점, 살려야 할 뉘앙스에 대해 연출자가 지적하는 모양새가 많다. 연출자와 작가가 애초에 드라마를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동의한 방향성을 기반으로 해서 말이다(그 동의가 없다면 이러한 대화는 긴 싸움이 되기 십상이다).

조연출 시절에는 연출자가 요구하고 작가가 대본을 수정해 온 걸 보면서, ‘왜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고 있나’라는 느낌이 들어 답답했던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막상 내가 무언가를 가리켜야 할 시점이 오자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가리키고 싶어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더 많고, 안다 해도 표현력이 부족해 어영부영 가리키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확실하진 않지만, 대충 저 방향으로 노를 젓고 싶다는 그런 예감이 드는 것 같기도 한데요…”라고 말끝을 흐리면서 손가락을 대충 휘젓고 있는 격이다. 그런데도 곧잘 알아듣고 써오는 걸 보면 작가의 능력도 참 대단하다.

연출자의 e-메일 수신함도 엄연한 제작 현장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듣는 능력이다. 아니 때로는 그것이 더 중요하다. 연출자가 수정 방향을 제안하는 일이 많다 보니 으레 ‘알아듣는’ 능력은 작가에게 더 중요한 것 같지만, 원래 대화라는 것이 그렇게 일방적이겠는가. 연출자에게도 잘 ‘듣는’ 능력이 필수다. 애초 그 대본에서 작가가 진짜 말하고 싶은 고갱이가 무엇인지 알아들어야 하고, 수정고에서 어떤 식으로 주제를 실은 표현법(대사, 전개 방식, 극의 호흡 등등)을 미묘하게 바꾼 건지도 섬세하게 잘 알아들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실 이게 선행돼야 잘 ‘말할’ 수 있는 법이다.

인쇄소에 보내서 모든 배우와 제작진이 돌려 보게 될 ‘책’으로 나올 때까지 연출자와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때로는 ‘방송일’이라는 분명한 마감일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제작 일정을 감안하다 보면 아직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어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치열하다는 점에서, 비록 아직 어떤 스태프도 없고, 화려한 조명과 최신의 촬영기기도 없지만, 이곳은 숨 가쁜 현장이다. 시청자에게 다가가기엔 아직 건너야 할 거친 파도가 많지만 작가의 책상 위나 연출자의 e-메일 수신함도 엄연히 숨 가쁘게 돌아가는 제작 현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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