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남포동은 공존 양립의 공간”
  • 황의완 | 부산영화협동조합 이사장 (.)
  • 승인 2015.10.14 17:03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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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성년 부산국제영화제가 놓친 남포동의 매력

2015년 9월30일 저녁 6시. 부산 남포동 BIFF광장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가 열렸다. 가림막을 벗기자 올해 새로 추가된 동판 3개가 조명을 반사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BIFF거리에는 과거 배우와 감독들이 영화제에 참가할 때마다 받은 핸드프린팅이 설치돼 있다. 19년간 부산국제영화제 핸드프린팅 동판의 수는 61개가 됐다. 1996년 첫해를 시작으로 매해 찍은 핸드프린팅은 이듬해 전야제 때 설치한다. 새로 만들어진 동판들의 황금빛은 사람들의 발자국과 세월의 흐름 탓에 점점 거무스름하게 변한다. 그 동판들 위를 걷다 보면 20년 세월의 흐름을 색의 변화로 느끼게 된다.

매해 영화제 개막 하루 전 남포동에서는 전야제가 열린다. 부산국제영화제가 탄생한 곳이고, 그 기록이 차곡차곡 쌓이는 곳이 이 BIFF거리다. 변한 게 있다면 BIFF거리는 이제 더 이상 부산국제영화제의 주 무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제 개막 하루 전인 9월30일 남포동 BIFF광장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 이곳이 영화제를 탄생시킨 장소다. ⓒ BIFF 제공

영화제의 주 무대가 해운대로 옮겨가면서 남포동에서의 영화제 초청작 상영 기간은 3일로 줄어들었다. 영화제 출범의 요람임을 강조하는 부산 중구의 입장에서는 서운하지만, BIFF의 입장에서는 남포동에서 치르는 3일간 행사도 현재로서는 부담스럽다. 올해 남포동에서 상영이 진행된 상영관 4개의 객석 수는 평균 150석인데, 3일간 모두 매진돼도 입장료 수입이 대관료에 미치지 못한다.

남포동에서 치르는 3일 동안의 상영도 부담

부산의 구도심이자 부산의 중심인 중구는 영화제의 요람을 지키고 키워가고 싶은 포부가 여전하다. 때문에 전야제와 BIFF거리 운영에 각별히 힘을 쏟고 있다. 영화제 개막 하루 전 남포동에서는 전야제가 열리고, 이날부터 영화제 기간 10일 동안 BIFF거리의 노점상들은 모두 영업을 중단하고 BIFF거리를 비운다. 평소 영화제 기간이 아닐 때도 BIFF거리의 노점상들은 모두 BIFF 휘장이 새겨진 파라솔을 사용한다. 그만큼 중구민들 모두 BIFF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영화제 기간 동안 BIFF거리 노점상들이 자리를 비우는 건 영화제가 남긴 전통이다. 상인들은 기꺼이 영업을 멈추고 거리를 관객들에게 양보하지만, 영화제의 주 무대가 남포동이던 시절의 활기찬 모습은 쉽사리 재현되지 않는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면서 상인들의 불만이 불거지고, 텅 빈 BIFF거리를 중구청이 직접 문화 콘텐츠로 채우는 것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

그 빈 공간에 올해는 컨테이너 파빌리언 23개가 설치됐다. 파빌리언에는 국내 중소 규모 영화제들의 홍보 부스가 들어섰다. 남포동을 직접 챙길 수 없었던 BIFF 측은 부산영화협동조합에 그 일의 일부를 위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가장 큰 규모의 영화제이긴 하지만, 영화제가 타 영화제에 홍보 공간을 내어주기란 쉽지 않다. 그 머쓱한 장면을 영화조합이 대신한 것이다. 즉, BIFF가 부산영화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해 조합에 힘을 실어주고, 대신 타 영화제들과 손을 잡은 셈이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퀴어영화제, 포항맑은영화제, 상록수다문화국제단편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올레스마트폰국제단편영화제 등이 2015년 홍보 부스에 입주해 활기를 띠었다. 2016년엔 100여 개의 영화제를 초청해 영화제들의 축제를 열 계획이다.

이미 40여 개의 영화제가 2016년 영화제 박람회 참석을 예약해놓고 있다. 한국에만 70여 개의 영화제가 있고, 아시아에는 500여 개, 전 세계로 따지면 약 1500여 개의 영화제가 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축제를 벌이는 행사는 아직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들 영화제 관계자 대다수는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다. 이왕에 방문하는 그들에게 홍보 공간을 내어주고, 영화제들 간 소통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면 이른바 ‘영화제 축제’가 탄생한다.

영화제를 잉태한 부산 남포동의 영화 관련 역사는 의외로 깊다. 한국 최초의 영화사인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활동했던 곳이 남포동이다. 영화 <아리랑>의 춘사 나운규가 이 조선키네마에서 영화 인생을 시작했다. 지금의 남포동 거리는 춘사 나운규가 거닐던 바로 그 거리다. 부산 최초의 극장 ‘행좌(幸座)’가 있던 곳도 남포동이다. 그 남포동 거리에 밀집해 있던 영화관들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했다.

남포동 거리는 도시계획 개념이 없던 시절 형성돼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많은 사람이 운집할 광장이 없다. 협소한 탓에 적은 인원이 모여도 공간이 왁자지껄해지는 그런 특징이 있다. 영화제가 해운대로 옮겨가면서 축제에 참가하는 인원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사람들이 운집해 만들어내는 열기는 오히려 과거 남포동이 더 뜨거웠던 이유다.

해운대 센텀시티 일대 건물은 최첨단이지만 다른 건물로 이동할라치면 건물 사이 이동 거리가 만만치 않다. ‘영화의전당’을 찾기 위해 도시철도를 이용할 경우에는 백화점을 경유해야 한다. 백화점을 찾는 쇼핑객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객이 되는, 어색한 상황을 자주 맞이하기도 한다. 해운대에 세련미가 있지만 대신 사람 냄새가 적은 이유다.

해운대는 특급호텔과 휴양지와 컨벤션을 끼고 있지만, 남포동은 자갈치와 국제시장 그리고 긴 역사와 수많은 사연들을 끼고 있다. 따라서 해운대와 남포동은 어디가 좋고 나쁘고를 따질 게 아니라, 다름의 차이가 있는 공존 양립의 공간이다. 해운대에서 치러지는 영화제와 남포동에서 남아 치러지는 영화제는 그래서 각각의 맛을 갖고 있다.

올해 스무 살 성년을 맞이하면서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시 남포동의 행사를 늘렸다. 남포동을 포기하느냐 유지하느냐의 고민은 실제로 존재했는데, 그 속에서 이제는 해운대와 남포동을 함께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중구청도 지난해에 비해 올해 예산을 증액해 지원했고, 내년 예산은 더 늘릴 예정이다. 부산시도 올해 2015 남포동 영화제 박람회에 파빌리언을 지원한 데 이어, 내년에는 정규 예산 편성을 검토하고 있다.

남포동의 영화관 수가 다시 증가할 조짐을 보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1930년대부터 영업을 해오고 있는 부산극장은 현재 개축 중이다. 객석 수가 큰 상영관을 배치해 2016년 6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착공한 영화체험박물관에도 상영관이 들어서는데, 2017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남포동에 4개의 스크린이 설치되는 독립영화전용관 건립도 추가 검토 중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성년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드러난 남포동 BIFF광장의 한계는 상영 공간의 절대 부족이다. 그런 단점이 보완돼 내년에는 영화제 초청작이 영화제 전 기간 동안 남포동 상영관에 걸리길 희망한다. 또 영화제가 부산 시민들이 단순히 영화만 보고 즐기는 차원을 넘어, 퍼레이드나 거리 축제 같은 행사로 이어지는 등 영화제를 응원하고 참여하는 행사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런 행사들을 영화제가 직접 다 할 수 없다면 관련 단체들이 연관 프로그램으로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영화제 폐막을 하루 앞둔 10월9일 남포동에는 1000여 명의 사람이 “부산국제영화제 파이팅!”을 외치기 위해 모였다. 지난해 영화제에서 호평 받았던 BIFF 폐막 전야 플래시몹이다. BIFF거리 인근 학교인 부경고·남성여고·동주여고 학생들이 주도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응원 거리 춤판이다. 1000여 명의 청춘들이 모여 부산국제영화제 파이팅을 외치는 남포동 BIFF거리에 영화제 상영 작품이 없는 아쉬운 장면. 내년에는 재현되지 않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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