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아닌 ‘더티’, 디젤 수명 단축하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10.14 16:57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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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디젤 엔진 종말론’…게임체인저로 등장한 친환경차

디젤 엔진을 개발한 루돌프 디젤이 만든 3m 높이의 육중한 기계는 세상을 천변만화(千變萬化)하게 했다. 1894년 그가 레버를 당기자 엄청난 굉음을 내며 움직인 디젤 엔진은 증기기관을 대체하며 수많은 산업의 동력원이 됐고, 그렇게 루돌프 디젤은 엔지니어들의 시조로 받들어졌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수없이 개량되고 진화했다는 지금의 디젤 엔진은 이제 ‘나쁜 기계’가 됐다. 친환경과 연비를 모두 해결했다며 내놓은 결과물 ‘클린 디젤’은 ‘더티플레이’로 조작된 거짓이었다. 거리에서 매일 보는 디젤 자동차는 오염물질을 뿜어대는 산업화 시대의 굴뚝처럼 이제는 그 존재의 이유조차 의심받고 있다.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디젤 승용차 1100만대를 판매한 ‘디젤게이트(Dieselgate)’를 두고 “디젤 엔진은 이대로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시장조사 기관 번스타인리서치의 맥스 워버튼 자동차산업 애널리스트는 ‘디젤차의 종말을 의미하느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디젤 엔진, 그리고 그것을 싣고 달리는 디젤차의 종말은 이르다고 말하는 쪽도 적지 않다. 왜냐면 디젤은 시장에서의 가치를 따졌을 때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상품이기 때문이다.

독일 잘츠기터에 위치한 폭스바겐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디젤 엔진을 조립하고 있다. ⓒ EPA연합

클린 장치 신뢰 잃자 제기되는 ‘디젤 종말론’

디젤은 왜 매력적일까. 우리가 잘 아는 독일 차의 자존심 ‘벤츠’는 가솔린 엔진을 만든 카를 벤츠의 이름에서 따왔다. 벤츠의 가솔린 엔진이 주류였던 시절, 루돌프 디젤은 이것에 반기를 들고 디젤 엔진을 만들었다. 효율이 떨어지는 벤츠의 엔진보다 출력이 우수한 엔진. 당시로는 획기적일 수 있는 이 엔진이 현실화된 것은 일종의 혁명이었고 그런 점에서 루돌프 디젤은 혁명가였다.

경유는 낮은 온도에서 발화할 수 없다. 그래서 디젤 엔진에는 고온·고압이라는 환경이 필요하다. 압축의 원리인데, 공기를 고압으로 압축시킨 후 고온 환경을 만들고 발화시키는 게 디젤 엔진의 원리다. 그래서 가솔린 엔진보다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게 된 이 엔진은 상용차나 대형차에 주로 사용됐다.

하지만 큰 차들이 펑펑 뿜어대는 검은 매연은 디젤차에 대한 불쾌감을 불러왔다. 탄소 원자가 10개 이상 결합해 있는 디젤은 탄소 원자가 8개 정도에 불과한 가솔린과 비교할 때 완전 연소가 어렵다. 그렇다보니 힘을 얻은 대신 ‘유해물질’이라는 골칫거리를 만들어냈다. 디젤 엔진이 좀 더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폭발적인 힘과 바꾼 반환경적 연료라는 오명을 떼어내는 게 급선무였다. 가솔린이 내뿜는 일산화탄소(CO), 탄화수소(HC), 질소산화물(NOx)에 더해 디젤은 미세먼지(PM)까지 토해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경유차에서 많이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은 대기 중 암모니아와 반응해 2차 PM을 생성하고, 각종 호흡기 질환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폭스바겐이 전 세계적 속임수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결국 이 지점 때문이다. 연비와 힘을 생각할 때 매력적인 디젤차지만,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유해물질을 지워야 했다. ‘클린 디젤’은 그렇게 탄생했다. 디젤 엔진 배출가스 중 문제가 되는 것은 NOx와 PM이다. 보통 PM은 배기가스 저감장치로 감소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디젤 분진 필터인 DPF(Diesel Particulate Filter)는 배기가스에 포함된 오염물질을 필터를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로 바꿔 분진을 줄인다. 배기가스 재순환 장치인 EGR(Exhaust Gas Recirculation)은 배기가스를 일부 재순환시킴으로써 연소실의 온도를 낮춰 질소산화물을 줄인다. 북미 지역에서 많이 사용하는 이게 이번 폭스바겐 사태에서 문제가 된 장치다. 배기가스에 암모니아를 탄 요소수를 뿌리는 ‘선택적 촉매 환원(SCR)’ 장치도 질소산화물을 감소시킨다. 이렇게 뭔가 거추장스러운 디젤의 ‘클린’ 장치들이 신뢰를 잃자 남은 건 ‘반(反)환경 연료’라는 낙인밖에 없었다. 디젤 엔진의 종말론이 나온 배경이다.

그러면 이대로 디젤의 종말은 현실이 될까.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디젤 엔진이 가진 장점이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대응과 소비자의 대응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데 결국 소비자가 디젤 엔진을 그래도 선호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이번 사태를 겪는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디젤차를 연비가 가장 좋은 차라고 생각한다. 폭스바겐의 디젤차 대신 다른 디젤차를 찾는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처 입은 디젤차의 대체재가 마땅하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친환경차로 우르르 옮겨갈 것인가를 고민해보면 ‘그렇지 않다’에 도달하게 된다. 전기차의 대표 격인 테슬라의 경우 충전소 등 빈약한 지원은 둘째 치더라도 가장 싼 차종인 모델 S의 기본 사양 가격이 7만5000달러(약 8700만원)에 달한다.

루돌프 디젤이 개발한 디젤 엔진. ⓒ DPA연합

“디젤, 종말은 섣부르지만 수명은 단축됐다”

하지만 사라질 시기가 과거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디젤차의 장점에 높은 연비와 고출력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적은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은 디젤의 존재감을 높여줬다. 1997년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각국의 CO₂ 배출량 목표가 처음으로 제시된 후 만들어진 이산화탄소 배출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은 EU(유럽연합), 특히 독일이었다. EU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세를 탄소 배출량에 따라 과세했다. ‘탄소 배출 감소’라는 사회적 환경은 디젤차를 지구온난화의 대항마로 만들며 키워줬다.

디젤 엔진에 아직 미지의 영역이 남았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전문가들은 “엔진의 완전한 개발을 100이라고 봤을 때 현재 가솔린 엔진은 95, 디젤 엔진은 80쯤 도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회적 환경이 유리해야 개발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는 법이다. 폭스바겐 사태 이후 이런 디젤만의 매력은 사라졌다. 디젤 진영은 불리해졌고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도 디젤 엔진의 기술 개발 속도는 사회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했다. EU는 원래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당 95g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내놓았다. 그런데 지난해 유럽의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시장성과 기술력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하다며 연장을 요구했고, 결국 2021년부터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최근 EU의 산하 기구인 ‘TE (Transport & Environment)’가 하나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2021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당 95g 이하로 감축할 수 있는 곳은 볼보·닛산·푸조·도요타·다임러·르노 등 단 6개사뿐이다”라는 게 TE의 전망이었다. BMW나 폭스바겐 등 유명 메이커들의 이름은 없었다.

디젤 엔진 하나만 가지고도 환경 규제를 극복하기에 빠듯한데 이제는 친환경 자동차 개발도 함께 해야 한다. 김필수 교수의 진단대로 시장이 변할 가능성이 커져서다. “분명히 친환경차의 대중화 시기는 단축될 것이다. 친환경차의 필요성이 폭스바겐 사태로 부각되면서 내연기관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는 대신 친환경차에 대한 제도적 기반이 확충될 것이다.” 지금의 유럽 디젤 진영은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에서 일본에 비하면 수년 늦은 상태다. 상황이 이런데 질소산화물·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맞추며 디젤 엔진을 개량하고 동시에 친환경차 개발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중국 톈진(天津)의 전기차 충전소 직원이 테슬라 차량을 충전해주고 있다. ⓒ Imaginechina연합

조만간 내연기관과 친환경차 뒤섞일 듯

전기차의 개발 속도가 의외로 빠르게 진행되는 것도 디젤 엔진의 소멸을 재촉하고 있다. 사실 소비자들은 가격만큼이나 전기차의 성능을 믿지 못했다. 달리는 재미가 없을 것 같고, 충전을 너무 자주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선입견 말이다. 그런데 지난 9월29일 공개된 테슬라의 ‘모델 X’의 성능을 한번 보자. 제로백(0㎞→100㎞) 3.8초, 최고 속도 250㎞/h, 1회 충전 시 400㎞ 주행. 모델 X는 세단이 아닌 7인승 SUV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기존 차들에 비해 전혀 뒤질 게 없는 퍼포먼스를 보였고 물음표는 이제 느낌표로 바뀌었다.

물론 여전히 높은 가격이 문제인 전기차다. 가격을 낮추는 게 관건이다. 데이비드 베일리 영국 애스턴 대학 교수는 “테슬라가 기가팩토리(대형 배터리 공장) 건설을 완료하면 핵심 부품인 배터리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대중화의 시기는 언제일까. 김필수 교수는 “2017년에 전기차 빅뱅이 일어날 것이다”고 예측했다. 테슬라가 이제 곧 3만5000달러 수준의 보급형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고, 내후년쯤이면 효율이 뛰어난 전기차 배터리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그 이유다.

어찌 됐든 장기적으로 내다보면 친환경 엔진을 실은 차가 거리를 질주할 때가 올 것이다. 디젤과 같은 내연기관을 실은 차와 친환경차가 뒤섞여 경쟁하는 시기는 더 빨리 다가온다. 다만 언제쯤 이뤄질지, 그 속도가 문제다. 디젤의 종말은 여전히 섣부른 이야기지만, 디젤의 수명은 단축됐다. 한참 뒤에나 등장했을지도 모를 친환경차가 좀 더 빨리 ‘게임체인저’로 등극할 여건을 폭스바겐이, 그리고 ‘더티한’ 디젤 엔진이 마련해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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