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걸로 장난치면 천벌 받는다
  • 최은순 | 참교육학부모회 회장 (.)
  • 승인 2015.10.14 16:49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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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교 ‘급식 비리’ 파문 확산…교감 막말 이어 횡령 의혹까지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속담이 있다.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는 욕하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또 ‘먹는 것 갖고 장난치면 천벌을 받는다’는 말도 있다. 먹을 것을 돈벌이로 보고 유해물질을 넣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속여 팔았다가는 삼대가 망하는 천벌을 받는다는 말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 먹을 때만큼은 아무런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오래된 통념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통념을 깬 일이 한꺼번에 벌어진 곳이 있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하고, 가장 신뢰받아야 할 곳인 학교에서다.

학생·학부모 ‘봉’으로 본 ‘묻지 마 급식’

지난 4월2일 서울시 은평구에 소재한 충암 고등학교에서 이 학교 교감선생님이 급식 지도라는 명목하에 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급식비 안 냈으니 밥 먹지 마라”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전체 애들이 피해를 본다” 등 교육자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이 기사를 접하고 항의 방문한 학부모·교육 단체들과 만난 교장선생님은 한 술 더 떴다. 교감을 두둔하면서 “급식비를 낼 여유가 있으면서도 내지 않는 도덕적 해이가 많아서 교육하는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교감의 이러한 행동이 여전히 비교육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월5일 서울 은평구 충암고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이 급식 비리를 다룬 기사를 배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이 학교가 5월부터 시작된 서울시교육청의 급식 관련 감사 결과, 학교 급식 운영 전반에 걸쳐 최소 4억1035만원을 횡령한 의혹이 드러났다. 구체적인 비리 의혹은 이렇다. 우선 조리실에서 교실로 급식을 배송하면서 용역업체에 위탁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실제로는 학교 소속 조리원에게 배송을 맡겨 배송료와 용역 직원 퇴직적립금 및 4대 보험료 등 최소 2억5668만원을 허위로 청구해 횡령했다. 또 식자재 납품업체 직원을 학교급식 직원으로 채용해 식자재 구매 관련 불법 입찰과 부당 수의계약을 체결하도록 배임했고, 배송업체와 소재지가 같은 3곳을 주요 식자재 납품업체로 지정한 사실이 드러나 유령업체를 설립·운영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다 납품받은 식재료를 빼돌려 횡령하고, 종이컵·수세미 등 소모품을 허위·과다 청구하고, 식용유를 반복 재사용하는 등의 편법으로 최소 1억5367만원에 이르는 식재료비와 식자재비를 횡령한 정황도 드러났다. 그 결과, 학교급식 식자재와 조리시간은 항상 부족했고, 새까맣게 변질된 식용유를 반복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온갖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이처럼 거액의 급식비를 빼돌렸으니 학교급식의 위생과 안전관리인들 제대로 되었을 턱이 없다. 이는 학생과 학부모를 ‘봉’으로 여기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한마디로 ‘묻지 마 급식’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뻔뻔하게 해당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에게 문자메시지와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식용유는 2번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여전히 진실을 은폐한 채 감사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면서 명예훼손을 거론하며 법적 고발을 하겠다고 한다.

학교급식을 돈벌이로 생각 말아야

이 학교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공연한 급식 비리를 저지르고도 오히려 아무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이면에는 사립학교법이 존재하고 있다. 또 사립학교에 온갖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현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아무리 사학 비리나 급식 비리를 적발해 징계를 요구하고 고발을 하더라도 사학재단에서 모른 척하면 그만이다. 실제 이 학교에서는 2011년에도 특별감사를 실시한 결과 공사비 횡령, 학교회계 부정 등 비리가 적발됐다. 이에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한편, 이사장 등 임원 승인을 취소하는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사립학교법을 개정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사학재단의 비리와 횡포에 대해 그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 사립학교법이 개정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비록 구조적인 한계가 있더라도 이 속에서 한 가닥 실마리라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결국 감사를 담당한 시교육청과 해당 학교의 교육 주체들이 나서야 한다.

이번 감사에서 이 학교의 재단은 정상적으로 학교를 운영할 의지도 능력도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학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전례 없는 특단의 조치가 불가피하다. 이미 드러난 비리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해 중징계를 요구하고, 비리를 지시하거나 방조한 재단의 책임자를 끝까지 조사해 학교 운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만들어야 한다. 학생의 학습권을 볼모로 잡고 비리를 일삼는 자격 미달 사학에는 더 이상 학생 교육을 맡겨서는 안 되기에 현 재단을 전원 퇴출시키고 관선이사를 파견해 학교를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제는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가 나서야 한다. 물론 사립학교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자문 역할이고, 원천적으로 교사나 학부모가 참여하는 것을 차단하기 때문에 조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초 교감의 막말 사건이 있은 후 이 학교의 운영위원회를 참관한 적이 있다. 그렇게 언론을 떠들썩하게 해놓았는데도, 당시 운영위원회에서는 그에 대한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참관한 교사가 발언 요청을 했는데도 그 의견을 묵살하고, 운영위원회 이후 그 교사에 대해 학교 명예훼손을 운운하며 징계를 논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부랴부랴 동창회를 중심으로 비대위를 구성했지만 사실상 비대위에서도 어떤 행동이나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비대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학부모들을 모으는 일이다. 몇몇이 밀실에서 속닥속닥 해결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당 학부모들이 모여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가 학교 다니던 시절 가장 즐거웠던 때는 바로 점심시간이다. 친구들과 앞뒤로 둘러앉아 함께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면 천하가 다 내 것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점심은 어떤 의미일까.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한 끼 식사 시간마저도 아까워하지는 않을까. 경쟁 교육 체제에서 교장을 비롯해 교사, 학부모까지 급식을 교육으로 보기보다는 공부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끼 때우는 밥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제는 급식을 돈벌이로 생각해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 판단으로 밥그릇 싸움도 하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부끄러운 어른들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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