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나 혼자 죽는 건 너무 억울해”
  • 배상훈 |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 (프로파일러) (.)
  • 승인 2015.10.07 18:18
  • 호수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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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늘어나는 ‘묻지 마 살인’…불특정 대중 상대로 범행 수법도 잔혹

2014년 7월26일 23세의 청년 J는 울산에 있는 주점 등에서 어머니와 별거 중인 아버지와 술을 마셨다. 아버지로부터 ‘돈도 못 벌어온다’는 심한 질책을 받고 화가 난 그는 집 주방에서 칼을 가지고 나와 울산의 여러 곳을 배회했다. 다음 날 오전 6시쯤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J는 울산시 남구 삼산동의 한 대형 쇼핑몰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18세의 여대생을 칼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했다. 범행 직후 J는 자해를 시도했으나 이후 도주하다가 시민들에게 붙잡혔다.

사건 당시 J는 무직이었고 별거 중인 부모로 인해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태에서 아버지의 심한 질책이 계기가 돼 ‘묻지 마 살인’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범행을 저지른 후 J가 “대한민국이 싫다. 나 혼자 죽기는 그렇고 누구 하나 같이 죽어야 된다”라고 말한 점과 범행 수법, 범행 이후 태도 등은 ‘묻지 마 살인’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일러스트 오상민

지난 9월24일 오전 5시30분쯤 휴가를 나온 군인(상병) J는 노원구 공릉동 다가구주택에 침입해 자고 있던 33세 여성 P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했다. 이후 J도 P씨의 예비신랑 Y씨와 격투 끝에 자신이 가지고 온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그런데 J는 Y씨의 집에 침입하기 전에도 인근 주택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대문이 열린 집에 들어갔다 나오는 등 최소한 세 곳 이상을 돌아다닌 것으로 인근 CCTV 분석 결과 밝혀졌다.

강원도 고성 지역의 한 육군 부대 소속인 J는 9월22일 상병 정기 휴가를 나왔고 10월1일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9월23일 오후 8시쯤 친구와 함께 서울시 노원구의 한 대학 축제에 놀러갔다가 범행 당일인 24일 오전 4시50분까지 인근에서 술을 마셔 만취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사건의 경우 초기에는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의 집에 침입했을 개연성이 낮다고 보고 범인이 특정한 목표를 찾아다닌 것이 아닐까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숨진 P씨와 J의 1년 치 통신 기록을 조회해 상호 교차 분석한 결과와 CCTV상의 행동 분석 등을 살펴본 결과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건 역시 ‘묻지 마 살인’일 가능성이 큰 셈이다.

원인 제공자 아닌 불특정 대중에게 분노 표출

두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아무런 원한이 없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특별한 관계를 찾아볼 수 없는 ‘묻지 마 범죄’였다는 점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이런 종류의 ‘묻지 마 범죄’는 근래 들어 매년 50건 넘게 일어나는데, 올해의 경우 벌써 30여 건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묻지 마 범죄’의 발생 유형 중 70%가 살인과 상해 등 강력범죄였다는 점에서 ‘묻지 마 범죄’는 그 자체로 높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묻지 마 범죄’의 범인들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에게 왜 이토록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까.

정신과 의사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현실에 대한 불만’이 ‘사회에 대한 불만’ 나아가 ‘사회에 대한 복수심’으로 연결된다고 지적한다.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표출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범인들이 느끼는 인간관계에서의 소외감이 촉발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러한 설명은 통계적으로 ‘묻지 마 범죄자’의 80% 정도가 무직이거나 일일노동에 가까운 비정규직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전문가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자신의 절망적인 현실 상황에 대한 원인을 추상적인 사회 전체에 지우면서 그 분노를 사회의 일부인 대중에게 무차별적으로 표출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설명은 결과론적인 설명으로 여겨진다. 왜 자신의 처지를 사회와 연결시키는지에 대한 보편적인 설명이나 왜 이토록 잔혹한 범행 방식을 선택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족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울산 여대생 살인범 J의 경우를 보면 ‘돈도 못 벌고 일도 안 한다’는 아버지의 심한 질책을 듣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그 대상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일면식도 없는 여대생이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자신을 질책했던 아버지가 재산이 많아 자신에게 많은 유산을 물려줬다거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좋았다면 사건 당시보다는 자신의 현실이 나쁘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자신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실업자 신세가 된 책임의 많은 부분이 아버지에게 있다고 여겼다면, 여대생이 아니라 아버지를 범행의 대상으로 삼았어야 했다. 그런데 J는 아버지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 분풀이를 생면부지의 여대생에게 했다. 그것도 흉기로 수십 차례나 찌르면서 참혹하게 살해했다.

휴가 나온 군인이 벌인 살인 사건에서도 정확한 내막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일부 언론에서 언급하듯 군 생활에서의 괴롭힘이나 갑자기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가 원인이라면, 휴가에서 복귀해 자신을 괴롭힌 상관에게 범행을 하거나 자신을 버린 여자친구를 찾아가 범행을 저지르는 게 상식적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별다른 항의도 못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참혹하게 살해했다면 범행의 인과관계가 잘 성립되지 않는다. 이러한 ‘묻지 마 범죄’의 특징 중 하나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데  원인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자신과 무관한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범행을 저지른다는 점이다.

길거리나 공원, 지하철역이나 다세대주택 등 불특정한 장소에서 이러한 ‘묻지 마 범죄’가 발생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가해자들 대다수가 ‘분노 조절 장애’ 또는 ‘충동 조절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진단 역시 왜 분노 조절 장애자의 분노가 그것을 야기한 원인 제공자가 아니라 무차별한 대중에게로 향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또 이러한 설명은 ‘묻지 마 범죄’를 일부 알코올중독자나 정신질환자에 의해 벌어지는 범죄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참혹한 범행 방식을 선택하는 데 대한 설명도 충분치 않다.

그래서 필자는 ‘묻지 마 범죄’에서 발생하는 분노를 ‘광장형 분노’라고 주장한다. 대구 여대생 묻지 마 살인 사건에서 J의 행동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J는 자신도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면서 자식을 심하게 질책하는 아버지에게 극심한 분노가 생겼고 또 상당한 자존감 상실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심리적인 상하 관계는 아버지를 감히 공격하지 못하는 기제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신 이러한 상하 관계는 그가 가진 분노를 동일한 방식으로 표출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즉 자신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난해 7월27일 울산시 삼산동에서 발생한 묻지 마 살인 사건의 CCTV화면. ⓒ MBC 화면 캡처

자신의 존재 모르는 ‘광장’으로 나가 범행

문제는 평소 인간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던 그의 주변에는 자신보다 낮다고 판단되는 존재가 없었다는 점이다. 남은 방법은 자신의 존재적 위상을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찾아 광장으로 나가 분노를 표출할 범행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다. 외형적으로 보기에 약하다고 여겨지는 여성이나 노인, 그리고 아이들이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분노를 표출하는 범행 방식은 자신의 약점을 알아채지 못하게끔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묻지 마 범죄’에서 다른 범죄와 달리 과도한 폭력성이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묻지 마 범죄자’는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자신에게 굴복하는, 피가 낭자한 피해자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보상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군인 J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평소 상하 관계로 인해 자신의 선임이나 여자친구를 직접 공격하지 못했던 범인은 이들 대신 광장으로 나가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대상을 찾아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여기서 광장은 불특정 다수가 거주하는 다세대주택이었던 셈이다.

최근 들어 ‘묻지 마 범죄’에 대한 처벌이 이전에 비해 강력해지는 추세다. 하지만 강력한 처벌만으로는 ‘묻지 마 범죄’를 억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강력한 처벌이 범죄 억지에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범죄가 바로 ‘묻지 마 범죄’다. 피해자와 피해 가족에게는 일정 정도 의미가 있겠지만, 실제 중요한 예방과 사전 관리에서는 근본적 대책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묻지 마 범죄’ 가해자의 79%가 경미한 폭행 사건과 같은 전조 증상을 보인다는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재범을 사전에 방지하고 생활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물론 제대로 된 재범 방지 프로그램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 다만 재정이 많이 소요된다는 측면에서 당장 시행하기 힘들다면 생활 속에서 스트레스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정신보건센터와 같은 곳을 잘 활용하면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분노가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미리 탐지해 낮춘다면, 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시스템화한다면 ‘묻지 마 범죄’를 충분히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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