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흔들리는 문학출판 권력
  • 김성곤│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15.10.07 18:07
  • 호수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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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 파문과 김영사 경영권 분쟁 그 이후

신경숙 작가의 표절 파문이 인 지 넉 달째에 접어들고 있으나 해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표면적으로는 분위기가 다소 잠잠해지면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모양새지만, 물밑에서는 백가쟁명의 논의가 한창이다. 특히 표절 파문 이후 자숙을 공언하며 칩거에 들어갔던 신경숙 작가가 최근 미국에서 공식 활동을 재개하면서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문학 출판계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독자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존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문학출판 권력의 위상에도 미묘한 균열 징후가 보이고 있다. 특히 새로운 문학출판의 지형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기존 문학출판 권력도 뿌리째 요동치고 있다.

6월2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 공동 주최 긴급 토론회가 ‘신경숙 작가 표절 사태와 한국 문화권력의 현재’를 주제로 열렸다. ⓒ 연합뉴스

‘창비’와 ‘문동’의 엇갈린 선택

신경숙 표절 파문으로 가장 크게 홍역을 치른 곳은 문학권력 논란의 정점이라고 비판받았던 창작과 비평(창비)과 문학동네(문동)였다. 창비는 표절 사태 초기 신 작가를 옹호해 ‘창작과 비평’이 아닌 ‘표절과 두둔’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문동 역시 표절 파문과 관련해 긴급좌담회 개최를 일방적으로 알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후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을 요청받았지만 거부했다. 이 때문에 자사 발행 계간지를 통해 어떤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창비와 문동의 선택은 엇갈렸다.

우선 창비는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를 통해 해명과 방어를 선택했다. 사태 초기 신 작가의 표절 파문을 사실상 옹호했던 입장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특히 창비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아온 백낙청 편집인의 “의도적인 베껴 쓰기, 곧 작가의 파렴치한 범죄 행위로 단정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는 발언은 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애초 백낙청 편집인의 입장 표명을 통해 상황이 정리되길 기대했던 여론은 싸늘하게 식었다. 김남일 실천문학 대표의 페이스북 글이 대표적이다. “창립 50주년의 창비는, 미안한 얘기지만, 백 선생의 창비는 아니다. 시작은 백 선생이 하셨지만, 오늘 우리 곁에 있는 49살의 창비는 그 세월을 함께 견뎌온 모든 이들의 보람이어야 한다.”

특히 네티즌들 사이에서 백낙청 편집인은 조롱과 비아냥거림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창비의 선택은 신경숙 작가에게 치명상을 입히면 한국 문학 전체에 더 큰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 결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신경숙의 ‘과’는 ‘공’보다 작다는 것이다. 출판 시장의 불황 속에서 수십만 부 판매가 보장되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던 셈이다.

반면 문동은 계간지 ‘문학동네’ 가을호를 통해 독자에게 사과했다. 아울러 강태형 대표와 1기 편집위원의 퇴진을 선택했다. 물론 세대교체는 주식 소유와 지분 문제로 쉽지 않고 1기 편집위원의 영향력이 여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표면적으로는 변화의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국내 주요 출판사의 한 고위 임원은 “일반 독자들이 창비와 문동에 기대하는 것은 좀 다르다. 40대 이상의 독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며 “문동은 문학 전문 출판사지만 창비는 단순한 문학 출판사가 아니다. ‘창작과 비평’이라는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잡지를 출판해왔기 때문에 기대감이 더 크다. 그런 점에서 창비가 대승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신경숙 표절 파문으로 촉발된 문학권력의 문제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다만 이대로 가면 공멸이라는 인식만은 분명하다. 변화의 바람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다시 말해 만성화된 출판 시장의 불황을 타개하고 독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행 문학출판 구조에서 주요 인사 몇몇이 물러나는 인적 쇄신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쇄신책은 아니라는 공감대 때문이다.

백낙청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인 ⓒ 뉴시스

“이대로 가면 공멸” 변화의 방향 어디로

문학평론가 정문순씨는 “시대와 독자를 견인하지 못하고 폐쇄성과 상업주의, 비평정신의 실종에 의존해온 한국 문학은 판을 갈아엎을 정도의 일대 쇄신이 없으면 희망을 갖기 힘들다”며 “수도권에 거주하는 서울대 출신 남성이 장악하고 있는 기성 문단의 권력 구조나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비평가와 작가들이 활약하기 위해 사회적 연대망의 구축이 절실하다. 아무리 뜻이 높아도 혼자 감당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고봉준 경희대 교수는 “대형 출판사들이 교과서나 참고서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물론 아동문학에 투자하고 심지어 특정 출판사처럼 빵집·카페·식당 등을 사들여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는 문학출판 시장이 일정 정도는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 나온 사업의 다각화 전략”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상징적인 힘은 문학을 통해 만들어내지만 실제 영업이익은 다른 분야에서 만들어내는 방식의 전략을 쓰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며 “출판사들이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은 결국 좋은 작품을 출간하는 정직성 이외에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창은 중앙대 교수는 “출판이나 문학 분야에서 새로운 세대나 감각의 출현이 중요하다”며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더불어 가기 위해 기존 시스템과는 다른 시도들을 바깥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젊은 작가나 출판인들에게는 오히려 지금 상황은 틈이 벌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기존 질서와는 다른 방식에 눈을 돌리고 이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게 생산적 가능성의 탐색”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신경숙 파문을 뛰어넘기 위해 신진 작가 발굴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인터넷서점 예스24의 조선영 도서팀장은 “도서정가제 실시 이후 출판계가 위축된 상황에서 신경숙·김영사 파문으로 문학출판계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문학출판계가 기존 작가의 명성에 기대기보다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최근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를 살펴보면 해외 작가의 선전(善戰)이 도드라져 보일 뿐 국내 작가는 흔적을 찾기조차 힘들 정도다.

이 때문에 한국문학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조선영 팀장은 “새로운 작가들의 책은 상당히 많이 쏟아지고 있지만 일반 독자들도 알 만큼의 명성을 얻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면서 “이미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사실을 기반으로 한 짜임새 있는 서사 등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묘사나 비유, 아름다운 문체 등을 중시하는 작품들 위주로 등단하고 수상하는 등의 풍경은 왠지 ‘그들만의 리그’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기존 문학출판계도 장르문학, 로맨스, 웹 소설 등 이미 다양해지고 있는 서사 유형들도 너그럽게 포용하고 이에 대한 비평이나 리뷰도 좀 더 활발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새로운 문학 지형은 표절 논란과 무관하게 만들어지겠지만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 가속화될 수 있다. 자정 능력과 생산 능력이 없는 앞 세대가 못하면 뒤 세대가 그것을 감당할 것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신경숙 표절 파문과 김영사 경영권 분쟁으로 대표되는 문학출판계의 악재와 관련해 “오로지 돈의 권력에 짓눌린 한국 출판의 구시대적 자화상을 보여줄 뿐”이라고 말했다.

 

신경숙 표절 파문과 김영사의 경영권 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대다수는 모르고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봉인됐던 문제들이 가스 폭발처럼 뒤늦게 터져 나왔다. 국내 작가와 출판사를 대표했던 독자들의 우상이었기에 폭발력은 강했다. 문학 행위나 출판 활동이 단순한 영리 추구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자장력(磁場力)을 갖는다는 사실을 새삼 보여준 사건이다.”

문제가 잠잠해진 듯하지만 논란은 여전한데.

“작가와 책의 힘이 여전히 얼마나 지대한지, 역설적으로 그 역기능을 통해 경종을 울렸다. 그러나 신경숙 작가가 표절을 명쾌하게 인정하지 않은 채 창비가 이를 감싸고 김영사 파문이 소송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전개되는 진흙탕 싸움은 오로지 돈의 권력에 짓눌린 한국 출판의 구시대적 자화상을 보여줄 뿐이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과 관련해 창비와 문학동네의 대응이 상반됐다는 평가가 나왔는데.

“문학동네 계간지의 세대교체는 그나마 전향적이다. 여론에 밀린 뒤늦은 조치로 보이지만 박수 받을 만하다. 그러나 백낙청 선생과 그 주변의 버티기 전략은 표절 여부를 얼버무리는 작가의 인식 이상으로 문제적이다. 백낙청 선생이 기존 입장으로 버티는 시간만큼 창비는 독자들, 특히 창비를 출판사 이상의 출판사로 여기던 독자들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기존 문학출판 권력이 몰락할 위기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화무십일홍이라 했다. 새로운 문학 지형은 표절 논란과 무관하게 만들어지겠지만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 가속화될 수 있다. 문학 출판의 본능적 생존 욕구에 따라 좀 더 독자 지향적인 방향으로 문학 출판 지형은 바뀔 것이다. 자정 능력과 생산 능력이 없는 앞 세대가 못 하면 뒤 세대가 그것을 감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출판 권력의 올바른 변화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나?

“문학권력의 실체가 나약한 출판사(출판자본)에 있다는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학권력의 폐해를 굳이 강조할 경우 출판자본은 그 권력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할 뿐이다. 권력의 실체는 힘센 작가와 그가 속한 작가 집단, 힘센 평론가와 그가 속한 평론가 집단에 있을 것이다. 문단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문학권력의 실체가 마치 한 줌의 출판사인 것처럼 오도하는 것이야말로 문학계의 무능을 보여준다.”  

잃어버린 독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조치는.

“문학단체들이 약속했던 신뢰할 만한 표절 방지 방안들을 하루빨리 확정해 발표해야 한다. 그리고 독자들의 상처를 보듬으며 ‘스마트폰보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좋은 작품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려는 각고의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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