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날·유두·중구를 아시나요?
  • 장장식 |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
  • 승인 2015.09.22 10:17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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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과 추석 2대 명절로 평준화 산업사회 거치며 잊혀진 명절들

세월이 가면 인정(人情)도 변하고, 인정이 변하면 삶의 모습도 바뀐다. 삶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중 하나가 명절이다. ‘명절’은 ‘이름 있는 마디’라는 뜻으로 설날·한가위 같은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하늘은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는다고 했듯이, 명절 또한 이름 없는 명절이 있을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설·한식·단오·한가위 등 네 명절을 들어 4대 명절이라 했다. 고려시대에는 이보다 많은 9대 명절이 소임을 다했다. 이른바 조선시대의 4대 명절에 삼짇날, 팔관회, 중구, 동지를 더해 풍성한 명절을 맞이했다. 명절이 많으니 그만큼 즐기는 판과 축제가 많았다는 것인데, 아쉽게도 조선시대의 유학적 논리에 의해 네 개의 명절로 축소되고, 산업사회의 압축 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설과 한가위 2대 명절로 평준화돼버렸다.

ⓒ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지금처럼 설과 한가위의 2대 명절로 굳어진 데는 무엇보다도 역법(曆法)의 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라는 정책이 절대적인 영향을 줬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설과 추석 2대 명절을 넉넉하게 즐기는 대신 크고 작은 명절들을 잃어버렸고, 이제는 기억 속에 남은 날들을 추억으로 되새김질할 수밖에 없다.

영등날, 음력 2월 초하루 풍년과 풍어 기원

명절은 해마다 일정하게 지켜 즐기거나 기념하는 때다. 농업을 중시하는 삶의 방식에 따라 농작물의 성장 주기와 관련된 여러 명절이 있었고, 생업 환경에 따라 지역마다 다른 명절이 있었다. 그러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라는 법적인 체계에 따라 설과 한가위만이 명절로 자리 잡고,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놀라운 역사가 1년에 두 번씩 반복되고 있다. 가정이지만 만약 단오와 중구 또한 국가공휴일로 지정했다면 어떠했을까. 단언컨대 설·한가위처럼 큰 명절로 지속됐고 온 국민의 축제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지금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통사회에는 여러 명절이 있었다는 점이다. 대보름을 비롯해 2월 초하루 영등날, 5월 초닷새 단오, 6월 보름인 유두(流頭), 7월 칠석, 9월9일인 중구(重九)와 같은 이름들이 있었다. 이들 명절은 중앙집권적인 문화 풍토에서 비표준으로 소외됐고, 일반인의 관심과 인식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엄연하게도 전통사회에서는 제 역할을 다했으며, 오늘날에도 전통사회의 기억을 안은 채 희미한 생존력을 보이고 있다.

영등날은 음력 2월 초하룻날을 가리킨다. 영등은 바람과 비를 몰고 다닌다는 농경신 또는 어업신을 가리키는데, 2월 초하루에 내려와 보름 무렵에 올라간다. 이들에 대한 극진한 예우를 통해 한 해 농사의 풍년과 어업의 풍어를 염원하고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날이 바로 영등날이다. 개별적인 농어촌 사례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영등날은 울진·영덕과 같은 어촌 일부에서 실천적인 민속으로 남아 있다.

5월 초닷새인 단오는 강릉 단오제나 법성포 단오제와 같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지역사회의 축제로 소임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본디는 밭농사 문화권을 중심으로 한 보편적인 명절이었고, 논농사 중심의 추석 문화권과 대비되는 큰 명절이었다. 차츰 잊혀간 명절이었으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들 단오제가 워낙 널리 알려져 있어 명절 단오의 위상을 그나마 지켜주고 있다는 점이다.

칠석은 음력 7월7일을 가리키는 명절이다. 흔히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경북 안동 지역에서는 까마귀밥을 차려놓고 자손의 명과 복을 빌었고, 전북 고창에서는 조상 제사를 지낼 만큼 중요한 날이었다. 현재 충청도 청양 지역에서는 여전히 칠석날 마을 제사를 지내고 출향 인사들이 모여서 즐기는 명절로 남아 있다. 청양 지역을 들어 칠석 문화권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명절로서 기능하고 있는 점은 지역 문화로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음력 9월9일 중구는 어떨까. 양의 숫자 9가 거듭된다 하여 ‘중양절(重陽節)’이라 불리는 날이다. 보통 한가위를 조상에게 첫 수확을 바치는 감사의례의 날로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중구도 이런 뜻을 담고 있기에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 큰 공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제사)’와 같은 의례를 하고, 집집마다 중구차례라는 햇곡식 천신(薦新)을 했다. 물론 지역의 자연환경에 따라 다른 명절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중구가 추석보다 중요한 명절로 대접받는 곳의 이야기다. 경북의 북부 지역, 특히 산촌과 산간 농촌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지역은 이때가 돼야만 햇곡식이 나기 때문에 추석 때 햇곡식을 바치지 못하고 중구가 돼야 가능하다.

명절 추석에는 고향을 찾은 자손과 함께 추석 차례를 지내고, 중구에 다시 차례를 지내는 이른바 이중 과세가 아닌 이중 추석을 지낸다. 물론 이때는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출타한 자손들은 자유롭게 참석하지 못하지만 연로한 분들만이라도 반드시 지낸다. 이렇게 본다면 이들 지역민의 본디 마음에는 중구야말로 진짜 명절이다. 그러므로 중구 문화권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지역의 작은 명절로 특화하는 방안 검토해야

어디 이뿐이랴. 강남 갔던 제비가 온다는 삼월 초사흘 삼짇날도 있고, 참외와 수박 같은 밭작물의 첫 수확을 천신하는 유월 보름날인 유두도 있었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말에서 비롯된 유두는 신라 때부터 전해온 명절인데, 지금은 이름 정도만 남았다. 보름 명절의 하나인 칠월 백중은 불가(佛家)의 백중불공으로 전하고 있으나, 본디는 써레시침을 하고 호미씻이를 하던 농경의례의 하나였다. 전라도에서는 호미씻이를 하고 경상도에서는 풋구·꼼비기를 하던 날이다. 김매기를 마치고 호미나 써레를 씻어 걸어두면서 한바탕 신명 나는 놀이판을 펼치는 그런 명절이다. 밀양과 같은 지역에서는 백중장을 열어 일꾼들이 신명 나는 난장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명절은 사라지고 말았다. 2차적인 이유겠지만 농법이 바뀌고 작법 체계가 변한 탓이다.

기억에 남은 명절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 중요한 것은 이들 명절이 지역 문화를 반영한 제철 명절이었다는 점이다. 지역 문화는 생업 환경이 다르고 문화적 정체성이 제각각인데,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반영하는 철 따라 사는 삶이 반영된 날들이었다.

그러나 평준화된 명절 관념에서 이들은 도태되고 일부 지역민에 의해서만 잔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자치제 실시가 중앙집권적 형태에서 정치·경제적 분권을 의미한다면 이들 명절을 살리는 것은 문화적 분권화를 뜻한다. 따라서 지방자치의 진정한 구현을 위해 지역의 작은 명절들을 특화시키고 지역 명절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는 지역민의 자존감과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고, 지역 문화 활성화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는 일일 성싶다. 지역 문화 창달은 이럴 때 가능한 일이고, 문화 융성의 실천적인 길도 여기에 있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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