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르트 신화’가 위태롭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9.16 19:51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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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쿠르트, 매출 역신장에 신제품 안전성 논란까지 겹쳐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은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대부(代父)’로 통한다. 1969년 자본금 5000만원과 47명의 야쿠르트 아줌마로 시작해 계열사만 10여 개에 달하는 지금의 한국야쿠르트그룹을 일궈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야쿠르트는 1조2348억원의 매출(연결 기준)과 80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야쿠르트 아줌마 숫자는 44년 만에 1만3000여 명으로 300배 가까이 늘어났다.

윤 회장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한 전통적인 판매 방식이 최근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야쿠르트의 매출은 9925억원(본사 기준)으로, 전년에 비해 2.5% 감소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이 역신장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3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11년 929억원에서 지난해 844억원으로 영업이익이 9%나 하락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야쿠르트의 ‘키성장솔루션 업’이 안전성 논란에 휩싸였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윤덕병 회장. ⓒ 시사저널 포토

한국야쿠르트 매출 16년 만에 역신장

매출 정체를 타개하기 위해 ‘세븐’이나 ‘브이푸드’ 등 신제품을 잇달아 내놓았지만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지난해 설과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한 제품 밀어내기 의혹이 일부 언론을 통해 제기됐다. 한국야쿠르트는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한동안 계속됐다. 2008년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했던 ‘야쿠르트 신화’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야쿠르트는 올해 4월 어린이 키 성장 건강기능식품인 ‘키성장솔루션 업’을 출시했다. 제품의 주원료인 ‘황기 추출물 등 복합물’(HT042)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어린이 키 성장에 도움을 주는 신물질로 인증을 받았다. 한국야쿠르트 측은 “3개월간 신장 하위 25% 미만인 10~15세 아이 100명을 대상으로 인체 적용 실험을 한 결과, 신물질을 매일 섭취한 그룹이 비섭취군에 비해 17%(3.3㎜)나 더 성장했다”며 “키성장솔루션 업을 꾸준하게 3개월 이상 마시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비자 반응도 좋았다. 개당 5000원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출시 3일 만에 2만명 이상이 이 제품을 신청했다. 하루 평균 매출이 1억원 이상 되는 경우도 있었다. 매출 정체로 고민하던 윤 회장에게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았다.

하지만 식약처 인증 과정이 석연치 않다. 식약처가 키 성장 신물질의 인증을 위해 검토한 것은 임상시험 논문 한 편이 고작이었다. 실험을 주도한 곳도 한국야쿠르트와 산학 협력을 맺고 있는 K대 한의대 연구팀이 작성한 것이어서 ‘부실 인증’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구 두 달째에는 신물질을 먹지 않은 쪽이 더 컸다”며 “넉 달째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논문 한 편으로 제품의 효과를 인증한 것은 무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한의사협회는 키 성장과 무관한 성분이 제품에 사용된 점을 지적했다. HT042의 주원료는 황기와 한속단, 가시오가피 등이다. ‘속단’은 뼈를 단단하게 해주는 한약재로 알려졌다. 통상적으로 중국 쓰촨 지방을 원산지로 하는 천속단이 키 크는 용도로 사용된다. 한국야쿠르트 제품에 사용되는 한속단은 천속단과 달리 해열이나 염증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의 식품 원재료 데이터베이스에도 한속단은 독성이 있기 때문에 복용량을 준수하고, 임신부는 복용을 금한다고 기록돼 있다. 이 원료가 아이들의 키 크는 제품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안전성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식약처는 건강기능식품 재인증 제도를 도입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제품의 인증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야쿠르트 측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절차에 따라 처리했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논문 한 편 이상이면 건강기능식품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현행법에 규정돼 있다”며 “오랜 연구를 통해 개발한 신물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매출 하락 역시 유가공업계 전반의 추세일 뿐 오너의 리더십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야쿠르트를 둘러싼 악재는 또 있다. 윤 회장은 2012년 계열사인 삼영시스템과 팔도를 합병시켰다. 삼영시스템은 윤 회장의 장남인 윤호중 전무가 100% 지분을 가진 개인 회사였다. 매출 대부분도 한국야쿠르트와 비락 등 특수관계회사에 의존하고 있었다. 내부 거래 비중이 한때 97%에 육박할 정도여서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팔도는 한국야쿠르트에서 라면과 음료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였다. ‘왕뚜껑’과 ‘도시락’ ‘비락식혜’ 같은 제품이 유명하다. 윤 회장은 2012년 팔도를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킨 후 삼영시스템과 합병했다. ‘하얀 국물 라면’인 꼬꼬면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였다.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서는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팔도는 잇달아 생산 라인 증설을 단행했다. 재계에서는 삼영시스템과 팔도의 합병을 외아들인 윤 전무와 연결해 바라보고 있다. 잘되는 회사를 오너 2세에게 넘겨 경영권 승계의 밑그림을 그리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외아들 윤호중 전무 최대주주 팔도 3년째 적자

실제로 한국야쿠르트의 최대주주는 2011년 말까지 일본의 야쿠르트혼샤(38.3%)였다. 하지만 삼영시스템과 팔도의 합병 이후 한국야쿠르트의 최대주주는 팔도(40.83%)로 바뀌었다. 윤 전무가 팔도의 최대주주인 만큼 팔도를 통해 한국야쿠르트를 지배하는 구조다. 여기에 삼영시스템은 지속적으로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이면서 사정 당국의 주목을 받았다.

불똥은 경영진뿐 아니라 윤 회장에게도 튀었다. 결과적으로 윤 회장의 ‘합병 카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합병법인 팔도는 최근 3년간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하얀 국물’ 라면 열풍이 급격히 사라지면서 팔도는 합병 첫해인 2012년에만 25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듬해에는 189억원의 영업손실과 36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윤 회장의 리더십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팔도 측은 최근의 영업손실이 일시적이라고 강조한다. 팔도 관계자는 “올해 영업손실 규모가 28억원으로 감소했고,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야쿠르트 측도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경기 방어주인 내수 산업까지 타격을 받고 있다”며 “야쿠르트의 경우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는 만큼 매출 하락 책임을 (윤덕병 회장에게) 떠넘기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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