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배기 시리아 아이 ‘IS 격퇴’ 이끈다
  • 하선영│중앙일보 국제부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09.15 08:55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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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 사태의 근원” IS 향한 서방 국가들의 총공세 임박

터키 해변 모래에 얼굴을 묻고 숨진 채 9월2일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가 세상을 바꿨다. 차가운 새벽 바다에서 숨을 거둔 어린 남자아이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그동안 시리아 문제에 거리를 두고 있던 나라들까지 움직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시리아 난민 문제는 순식간에 전 세계의 이슈이자 과제가 됐다. 

올 들어 유럽으로 건너온 난민 35만명 중 대다수는 시리아 출신이다. 2011년 3월 내전을 시작으로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세력을 넓히며 시리아 내 혼란이 장기화됐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2300만명)의 절반을 넘는 1160만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아일란의 가족처럼 좀 더 나은 삶을 찾아 국경을 넘은 시리아 난민이 현재까지 4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9월2일 (현지 시각) 아침 터키 남서부 물라 주 해안에서 현지 경찰이 시리아 난민 아기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을 발견해 수습하고 있다. © AP 연합

서방과 관계 개선 꾀하는 러시아도 동참

그러나 터키를 포함해 시리아 주변 국가들이 점차 국경 경비를 강화하자 시리아 난민들은 갈 곳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유럽으로 향하게 된다. 난민들은 국경을 넘어 그리스·헝가리로 이어지는 ‘발칸 루트’를 통해 독일·프랑스·영국·스웨덴에까지 몰려들고 있다. 유럽연합(EU) 내에서는 솅겐 조약에 따라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롭다. 한나라에 들어온 난민들은 이리저리 이동할 수 있는데, 이것이 결국 EU 회원국들 간의 갈등 요인이 돼버렸다.

그리스 위기로 한 차례 분열 위기를 넘긴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위기로 인해 또다시 갈라질 위기에 놓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난민 수용을 둘러싸고 각국의 입장 차이가 계속 커지면서 동유럽과 서유럽 간의 갈등이 이라크 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시리아 난민들이 서유럽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인 동유럽 국가들은 난민 문제에서만큼은 극히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난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데 서방 국가들의 뜻이 합쳐지고 있다. 난민 사태를 악화시킨 주범이 IS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 않기 때문이다. 수년간 지속돼온 내전의 혼란을 틈타 세력을 키운 IS는 시리아 동부와 북부를 장악하고 있다. 현재 시리아에 남아 있는 1700만명의 국민 가운데 대다수는 정부 장악 지역에 살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 국민들은 IS가 세력을 넓히면 넓힐수록 대량 학살 및 성폭행과 같은 그들의 잔혹함에 노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만 명의 난민이 목숨을 걸고 시리아를 탈출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9월7일 “IS가 점령하고 있는 시리아 북부 지역에 대한 정찰 비행을 시작할 것이며, 곧 이 지역에 대한 공습을 개시할 것”이라고 기자 회견을 통해 밝혔다. 프랑스는 지난 1년간 IS가 장악한 이라크 북부 지역을 겨냥해 217차례나 공습을 단행했지만, 영국과 마찬가지로 시리아에 대한 공습은 거부해왔다. 공습이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지위만 강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올랑드 대통령은 “현재 유럽이 겪고 있는 난민 위기로 인해 IS에 대한 공습이 필요해졌다고 판단했다”며 전향적인 입장을 취했다. 프랑스가 태도를 바꾸게 된 데는 시리아 내전에 러시아의 개입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가 경계하는 러시아의 셈법은 조금 더 복잡하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의 제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 및 EU와의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는 러시아는 IS 공습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IS와의 싸움에 뛰어들면서 시리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도 강화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월4일 “러시아군이 IS와의 전투에 참여할 계획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공습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9월 말 참석하는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군의 시리아 배치를 공식 발표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등 지상군 투입 임박한 분위기

미국 역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NYT)’는 9월8일자 신문에서 “미국 정부가 시리아에서 IS를 격퇴하기 위한 군사 전략의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리아 현지인을 군인으로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조치는 결국 지상군 투입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바마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일은 시리아를 떠난 대규모 난민 무리에 IS 조직원들이 섞여서 전 세계에 퍼지는 것이다. 

이라크 내 IS 격퇴 작전에만 동참 중인 호주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토니 애벗 호주 총리는 9월9일 “중동 지역에서의 인도주의의 위기를 끝낼 수 있을 뿐 아니라 호주와 전 세계에 대한 위협을 종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며 “죽음의 광신적 종교(IS)를 반드시 파괴하자”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9월7일 의회 연설에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 영국 국적의 IS 조직원 2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야당인 노동당이 “전쟁 중도 아닌데 자국민을 공격했다”고 비난했지만, 캐머런 총리는 난민 유입 문제 등을 이유로 들며 “IS를 공격하는 것은 곧 국내 정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영국은 이미 시리아 일대에 IS 수뇌부를 암살하기 위한 육군 SAS와 해병대 SBS 등을 투입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IS도 계속 세력을 키우면서 난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IS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와 북서부 알레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인 M5 인근 35㎞ 지점까지 진격했다”고 9월5일 보도했다. M5 도로는 아사드 정부군 장악 지역과 시리아 북서부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여서 아사드 정부의 척추에 해당한다.

사실상 시리아 난민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IS를 격퇴하는 것이며, IS를 분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가 지적한다. 그동안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은 무책임하고도 비현실적”이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서방 국가들의 입장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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