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發 정계 개편 시작됐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9.09 15:39
  • 호수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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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입법 로비’에서 ‘금호 비자금’ 수사까지…야당 “흠집 내기 수사” 반발

“부패와 부조리의 악순환을 차단하지 않고서는 경제 재도약과 지속 가능한 성장은 요원하다.” 9월1일 김현웅 신임 법무부장관은 “구조적 부정부패의 고질적 적폐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검찰에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줄 것을 촉구했다. 검찰은 이에 발맞춰 같은 날 서울중앙지검의 특수부 전력을 대대적으로 보강했다. 부산·대구·광주 지검 등 전국 각 지검에서 내로라하는 특수통 검사들이 대거 중앙으로 집결했다. 특수1부와 2부에는 부부장급 검사를 추가 배치해 팀제 운영이 가능하도록 했다. 수사 중인 사건 외에도 ‘추가’로 수사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것이다.

특수부 인력을 충원하면서까지 검찰이 시급히 처리해야 할 사건은 무엇일까. 김 장관은 공직 비리, 중소기업인·상공인을 괴롭히는 범죄, 국가 재정 건전성 저해 비리, 전문 분야의 구조적 비리 등을 언급했다. 대검 관계자는 “검찰 수사의 초점이 상반기에는 기업 비리에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공직자 비리에 좀 더 주력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의원총회 모습 ⓒ 시사저널 이종현

그러나 이런 검찰의 행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쪽은 관가가 아니라 오히려 여의도 정가(政街)다. 특히 야당 측에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한 야당 의원은 “곧 국정감사가 시작되고 올해 말에는 검찰총장 후임 인사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 어수선한 시기에 대규모 사정을 예고한 것 자체가 의미심장한 일”이라면서 “야당 길들이기의 일환이 아니겠는가. 더 나아가서 내년 4월에 치러질 20대 총선을 앞두고 불필요한 사정 정국을 조성하려고 하고 있다. 서초동발(發) 정계 개편이 시작됐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야당 중진 A 의원 입법 로비 혐의로 수사 중

추석이 지나고 국감이 마무리되면 사실상 본격적인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런 민감한 시점에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국회의원에겐 치명상이 될 수 있다. 한 야당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는 한마디로 ‘흠집 내기’로 보면 된다. 이런저런 혐의로 수사 내지는 내사에 착수했다고 언론에 흘리고, 여차하면 기소까지 해버린다. 검찰에 의해 비리 사범으로 낙인찍혀버리는 꼴”이라면서 “설령 나중에 무죄가 입증되더라도 선거에는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야당에서는 최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 야당 중진 의원 연루 입법 로비 건을 대표적인 흠집 내기 수사로 지목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 배종혁)는 새정치민주연합의 A 의원이 현행 도로교통법을 이익단체에 유리하도록 개정해주는 대가로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진급인 A 의원이 당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검찰은 A 의원 외에 다른 야당 의원들에게도 금품이 전해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해당 법안이 발의된 직후부터 관련 업계에서 수십억 원의 돈이 여의도로 흘러들어갔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관련자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현웅 법무부장관이 8월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야당에서는 검찰의 입법 로비 수사가 “지난해의 데자뷰”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검찰의 입법 로비 수사가 전 방위적으로 진행됐다. 실제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전 서울종합예술직업학교) 명칭 개정 입법 로비 사건으로 새정치연합의 신계륜·김재윤·신학용 의원이 기소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외의 입법 로비 수사는 대부분 용두사미에 그쳤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치과협회가 네트워크 치과를 견제하기 위한 법안을 입법하는 과정에서 양승조 의원 등 야당 의원 13명에게 불법 후원금을 건넸다는 한 보수단체의 고발 건에 대해 수사를 벌였다. 또 특수4부에서는 대한물리치료사협회의 입법 로비 수사를 진행했다. 의료기사가 의사의 지시나 감독 없이도 활동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대가로 협회 측에서 야당 의원들에게 후원을 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입법 로비 수사선상에 올랐던 인물은 대개 야당 의원이었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당시 입법 로비 대상으로 지목된 법안에는 여당 의원들도 참여했지만, 검찰은 야당 의원들만을 (수사) 대상으로 했다”면서 “지금 검찰이 들여다보고 있는 (도로교통법 관련) 입법 로비 건도 마찬가지다. 34명의 의원이 공동 발의했는데, 검찰은 야당 의원들만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더구나 이 법안은 2013년 발의된 것이다. 총선을 7개월여 앞둔 민감한 시점에 이 사건을 수사하는 목적이 의심된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야당 측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또 다른 검찰 수사도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 등 금호그룹 수사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특수2부에서는 2008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허위의 부동산 개발 사업 시공을 빙자해 금호산업 비자금 150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또한 검찰은 2009년 박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등의 계좌에 보관 중이던 30억원 상당을 금호종합금융 직원 계좌 등으로 분산해 자금 세탁을 거친 후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도 박 회장은 금호산업 인수가격을 낮추려는 목적으로 금호그룹 임직원이 보유한 금호산업 주식을 이른바 ‘누르기 방식’으로 매도 주문해 주가를 고의로 낮췄다는 혐의로 피소됐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에 배당돼 있는 상태다. 야당 측에서는 금호그룹에 대한 수사가 결국 야당 의원들에 대한 수사로 비화할 것이라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를 촉발시킨 경남기업 수사의 호남판 버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광주를 근거지로 하는 중흥건설도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5월부터 수사에 착수해 9월4일 현재까지 정원주 사장을 비롯한 4명을 구속 기소하고 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정 사장은 지난 2006년 이전까지 1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이 중 일부 자금을 전·현직 공무원 등에게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정 사장의 횡령액 중 125억원의 사용처를 밝혀내지 못했는데, 이 돈 가운데 일부가 야당 의원에게 흘러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밖에 전남 신안 출신인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도 부인 명의의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탈세를 한 혐의로 구속됐다. 박 회장은 지난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당시 신민당 후보의 공보비서를 맡을 정도로 정치권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호남이 지역구인 한 야당 의원은 “금호를 비롯한 호남 기업 수사가 시한폭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역시 비자금 사용처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야당 의원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겠는가”라고 우려했다.

야당 측에서는 검찰 수사에 맞서 ‘특수활동비’ 카드를 꺼내들었다. 특수활동비는 정보 및 수사 관련 국정 수행에 소요되는 경비인데 올해 예산만 8810억여 원에 이른다. 그러나 지출 영수증을 첨부할 필요가 없고 내역이 공개되지 않아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다. 야당 측은 부처별 집행 실태를 비공개로라도 보고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검찰의 특수활동비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의 한 야당 의원은 “공안 정국 실태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특히 검찰의 집행 내역을 보면 어떤 식으로 야당 탄압이 이뤄지고 있는지 확연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저승사자’ 특수4부…“공안특수부냐” 비판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폐지되면서 서울중앙지검에 신설된 특수4부(부장 배종혁)가 새로운 저승사자로 떠오르고 있다. 특수4부는 지난 9월4일 분양대행업체 I사 대표 김 아무개씨(44)에게 수차례에 걸쳐 3억원 상당의 현금과 금품을 받은 혐의로 박기춘 당시 새정치연합 의원(현 무소속)을 구속 기소했다. 이보다 앞서 중앙대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명박(MB) 정부 시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지낸 바 있는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을 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박 전 수석의 구속은 MB 정권 관련 수사에서 유일하게 성과물을 낸 수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특수4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특수4부는 과거사 진상 규명을 위한 위원회에서 활동한 후 관련 사건을 불법 수임한 혐의(변호사법 위반 등)로 민변 소속 변호사 5명을 기소하면서 ‘보복 수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최근 야당 의원의 입법 로비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야당 측으로부터 ‘표적 수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한 야당 의원은 “현재 검찰의 모습을 보면 공안부와 특수부에 차이가 없는 것 같다”면서 “하나같이 위로부터의 하명 수사에 몰두하고 있다. 특수4부가 지금까지 맡아왔던 사건 역시 대부분 공안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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