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호랑이’가 다시 포효했다
  • 안성찬│골프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9.0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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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에서 희망 찾은 ‘흥행 보증수표’ 타이거 우즈

 

‘골프 지존’ 타이거 우즈(미국)가 ‘발톱만 살짝 세우고’ 시즌을 마감했다. 날카로운 호랑이 발톱을 드러냈지만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그린에서 내려와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이 때문에 비록 4300만 달러(약 510억8000만원)가 걸린 ‘쩐의 전쟁’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출전은 좌절됐지만 우즈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즈는 자신의 재단이 주최하는 비공식 대회인 히어로 월드 챌린지를 제외하면 참가한 11개 대회 중 4라운드를 완주한 대회가 6개밖에 안 된다.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면서 4개 대회에서 컷오프됐고, 1개 대회는 기권했다. 특히 4개의 메이저 대회 중 US오픈, 디 오픈, PGA 챔피언십 등 3개 대회에서는 컷오프됐고 그나마 마스터스에서 공동 17위에 오른 것이 메이저 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 AP연합

데이비드 러브 3세 “우즈 스윙 좋아졌다”

8월24일 끝난 윈덤 챔피언십은 우즈가 기록한 공동 10위라는 성적 그 자체보다 경기 내용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전성기 때의 기량이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오버파에 시달리던 우즈는 올 시즌 가장 좋은 성적인 4라운드 합계 13언더파 267타를 쳤다. 특히 3일간 60타대를 쳤고 최종일에도 이븐파로 마감했다. 아쉬움이 큰 것은 4라운드 11번홀(파4)이었다. 그린 주변을 오가며 3타나 더 쳤다. 아마추어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연장 기회나 역전 우승을 기대해볼 만했다. 하지만 우즈는 변했다. 계속 망가지는 플레이를 차단했다. 그는 트리플 보기에 이어 보기를 범하고도 남은 홀에서 3개 홀 연속 버디,  마지막 18번홀에서도 버디를 챙겨 팬들을 기쁘게 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즈는 드라이버 평균 거리 303.9야드, 페어웨이 안착률 62.50%, 그린 적중률 77.78%, 퍼팅 스트로크 게인드 1.184점으로 시즌 내내 부진했던 것과 달리 회복된 지표를 보여줬다. 대회를 마친 우즈는 “4라운드 후반 허리 아래쪽에 통증이 왔다”면서 “이번에 우승했으면 플레이오프 1차전에 출전할 예정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20년 이상 한 번도 출전하지 않았던 대회까지 출전한 우즈에게는 그만큼 절실한 대회였던 것이다. 반면 51세 4개월의 고령으로 윈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데이비드 러브 3세(미국). 우즈와 대회 전 연습 라운드 9개 홀을 함께 돌아본 그가 “우즈의 스윙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봐서 우즈가 분명히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 시즌 평균 기록과 비교하면 시즌 내내 우즈의 기량은 부실했다. 11개 대회에 출전해 총 36라운드를 치른 우즈가 60대 타수를 기록한 적은 12번이었다. 아마추어 수준의 80대 타수도 3번이나 나왔다. 시즌 평균 타수는 71.933타로 프로 데뷔 이후 최악의 스코어다. 우즈는 허리 수술을 받느라 7경기 출장에 그친 2013~14시즌 71.646타를 기록한 때를 빼면 시즌 평균 타수가 70타를 넘은 적이 없었다. 2010년(70.32타)과 2011년(70.46타) 두 시즌을 빼면 시즌 평균 타수는 늘 60타대였다.

우즈의 올 시즌 기록을 보면 드라이버 평균 거리 300.2야드, 페어웨이 안착률 55.75%, 그린 적중률 65.10%, 퍼팅 스트로크 게인드 0.328점, 샌드세이브율 35.42%, 그린을 놓치고 파를 잡을 확률인 스크램블링 46.77%로 그린 주변에서 어프로치샷 감각이 많이 떨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형편없는 성적은 결국 아이언의 정확도를 나타내는 그린 적중률이 낮은 데다 들쑥날쑥한 드라이브샷, 종종 뒤땅까지 치는 이해하기 힘든 쇼트게임, 그리고 퍼팅이 총체적으로 부실한 탓이었다.

올 시즌 우즈는 특히 파4 홀과 파5 홀에서 티샷이 엉망이었다. 자신감 있게 때렸지만 페어웨이를 벗어나기 일쑤였다. 이번 시즌 드라이브샷의 페어웨이 안착률은 55.75%로 시즌 5승을 올리며 재기에 성공했던 2013년 시즌 62.5%에도 한참 못 미친다. 사실 우즈는 티샷 고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올해는 이게 유독 심했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 드라이버로 친 티샷이 아웃오브바운스(OB)가 나거나 해저드에 빠졌고, 나무숲이나 깊은 러프로 날아갔다. 그러다 보니 세계 골프 랭킹에서는 한참 뒤로 밀려난 257위, 페덱스 랭킹에서는 178위에 머물렀다. 2009년 섹스 스캔들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절대강자’였던 우즈로서는 스스로 생각해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특히 시즌 1000만 달러의 상금을 벌어들이는가 하면 초청료만 300만 달러를 상회하던 우즈가 올 시즌에 벌어들인 상금은 겨우 44만8598달러(약 5억3800만원)에 그쳤다. 상금 랭킹은 162위다.

10년간 메이저 대회 우승자 중 40세 이상은 3명

이런 우즈지만 그는 여전히 그린의 영웅이다. 세계 골프 랭킹 1위인 ‘라이징 스타’ 스피스는 “윈덤 챔피언십을 TV로 지켜봤다. 올해 가장 흥미로운 대회 중 하나였다. 우즈를 보기 위해 TV 시청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며 “멋졌다. 우즈의 열정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우즈는 흥행 보증수표다. 우즈가 첫날부터 돌풍을 일으키고 본선에 진출하자 갤러리 티켓이 5만장이나 추가로 팔려나가 지난해보다 3만9000장이 더 판매됐고, TV 시청률은 200% 상승했다.

우즈는 두 달 가까이 대회 출전을 쉬면서 체력과 기량을 보강하고 오는 10월15일(한국 시각) 시작하는 2015~16시즌 개막전 프라이스닷컴오픈에 나선다. “체력 훈련과 샷 연습을 충분히 해서 더 나아진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다짐한 우즈지만 12월 말이면 40대에 접어드는 만큼 ‘나이의 걸림돌’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큰 문제로 다가올 것 같다. 우승하는 선수의 나이가 갈수록 낮아지는 데다 마흔 살이 넘으면 일단 체력 면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PGA 투어에서 40세를 넘은 선수들의 우승 소식은 ‘가뭄에 콩 나기’다. 그만큼 우승이 어렵다는 얘기다. 지난 10년 동안 40차례의 메이저 대회 중 40세를 넘어 우승한 선수는 단 3명뿐이라는 통계는 우즈의 메이저 대회 우승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타이거 우즈가 이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팬들은 궁금하다. 그를 필드에서 보려면 2개월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그를 아끼는 팬들은 좀 더 콤팩트한 스윙과 샷 감각을 되찾고, 절대강자로 돌아와 그린에서 포효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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