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는 법원 판결도 무시하는가”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9.0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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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부상당해 ‘실명’ 위기…“국가유공자 통보해 놓고 말 바꿔”

A 대학 골프학과에 재학 중이던 장 아무개씨(27)는 2010년 2월17일 육군에 입대했다. 중학생 때부터 골프를 배운 그는 당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었다. 동문수학한 친구들 중에는 국제무대에서 맹활약하는 선수도 있지만, 그의 목표는 세계적인 골프 지도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군에 입대한 지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6월10일 예상치 못한 사고로 장씨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이병이던 그는 부대 내 영점사격장 부근에서 제초 작업을 하던 중 예초기 날에 부딪혀 튀어오른 돌에 오른쪽 눈을 다쳤다. 군 병원은 물론 민간 대형 병원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손상된 동공은 회복되지 않은 채 기능을 상실했다.

장씨의 군 입대를 종용한 건 아버지였다. 유학을 먼저 다녀오겠다는 늦둥이 외아들에게 군대부터 갔다 와야 한다며 등을 떠밀었다. 아버지 장 아무개씨(61)는 “복학한 아들이 다시 골프를 하려고 했지만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나. 결국 포기했다. 우울증에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폐인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 전경. ⓒ 연합뉴스

본인 과실이라며 국가유공자 등록 거부

아들 장씨는 입대한 지 1년 만인 2011년 2월18일 의병 전역했다. 그리고 3월10일부터 이듬해인 2012년 1월31일까지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했다. 군 복무 기간을 마친 장씨는 열흘 후인 2월10일 국가보훈처 서울지방보훈청에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다. 불의의 사고로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할 상황이 됐지만, 군 입대가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부터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보훈처 소속 보훈심사위원회는 2012년 7월10일 장씨에 대해 국가유공자인 ‘공상군경’이 아닌 ‘지원공상군경’으로 심의 의결했다. 장씨가 공무수행 중 부상을 당한 것은 인정되지만, 본인의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구체적으로 ‘제초 작업 중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과실’을 이유로 들었다.

장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국가유공자 등록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진술들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사고 당시 소대장을 맡았던 장교가 작성한 진술서에는 장씨 및 함께 작업한 인원들에게 확인한 결과 ‘보호구를 착용했다’고 돼 있다. 중대장을 맡았던 장교의 진술서에도 장씨와 함께 제초 작업을 한 선임병 두 명에게 확인한 결과 ‘안전장구류를 착용한 상태였다’고 돼 있다. 보훈심사위원회가 국가유공자 등록을 거부하며 밝힌 ‘과실’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진술이다.

보훈심사위원회의 해당 ‘심의의결서’를 살펴보면, 장씨가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삼은 것은 헌병대 수사관이 사고가 난 11일 후인 2010년 6월21일 작성한 참고보고서에 게재된 ‘사고자는 안면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초기를 운용하다가 이물질에 우측 눈 부위를 충격당하였고’라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진술도 마찬가지였다. 헌병대의 재조사에서 전혀 다른 증언이 나왔다.

헌병대 수사과장이 2013년 2월18일 작성한 확인서에 따르면, 헌병대가 이 사고에 대해 최초로 신고를 접수한 날은 사고 발생 일주일 후인 2010년 6월17일이었다. 당시 장씨가 안면 보호구 등 안전장구류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서가 작성됐지만, 헌병대 조사 때 장씨는 치료를 위해 휴가 중이어서 사실 여부를 확인 못한 상태였다. 함께 예초 작업을 했던 병사들은 장씨가 안면 보호구(플라스틱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예초 작업을 하던 중 돌멩이에 눈을 맞아 사고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사건 발생 당시 소속 중대장 등 간부, 함께 작업했던 병사들은 장씨가 예초기 작동 시 안면 보호구를 착용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원, 보훈처 패소 판결…“과실 입증 부족하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2013년 3월26일 장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번에는 장씨가 제초 작업 중 날씨가 더워 안면 보호구를 올려서 작업을 하다가 돌이 옆에 있던 나무에 반사돼 눈에 맞았다고 동료 병사들이 진술한 것을 들었다는 증언이 근거로 제시됐다. 이에 앞서 당시 행정보급관을 맡았던 상사는 2월6일 자신이 병사들과 전화통화를 한 결과 기억에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을 했다. 하지만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그의 이러한 진술은 번복된 진술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행정심판까지 기각되자 장씨는 2013년 6월27일 소송전에 돌입했다. 국가유공자 등록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은 2014년 3월14일 장씨의 손을 들어줬다. 장씨의 과실이 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증거로는 헌병대 수사관이 작성한 참고보고서에 게재된 내용이 유일한데, 이를 작성한 수사관의 증언에 따르면 해당 보고서를 작성할 당시에는 보호구 착용 여부보다는 사고에 관한 보고, 조사 또는 치료가 지연된 경위가 쟁점이 돼 이에 관해 조사한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했다. 장씨 및 현장에 있던 사병들에게 직접 보호구를 착용했는지 확인하거나 조사하지 않은 채 막연히 눈에 이물질이 튀었다는 사고 경위를 듣고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고 짐작해 보고서에 기재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와 같은 보고서에 게재된 내용만으로 장씨의 과실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행정소송에서 패한 보훈처는 항소를 제기하지 않았다. 법원 판결이 있은 지 한 달 후인 2014년 4월15일 장씨에게 ‘국가유공자 공상군경 요건 인정’ 통지를 보냈다. 10월8일 한 차례 더 관련 통지를 보내면서 신체검사 실시 예정일을 안내하기도 했다. 그런데 11월12일 ‘처분 내용 정정’이라는 전혀 다른 통지를 보냈다. 이미 중앙보훈병원에서 신체검사를 실시해 등급기준미달로 판정된 것으로 확인돼 신체검사를 미실시하고, 보훈 대상 및 보상 체계 개편에 따라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그 결과를 다시 통보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혼란을 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했다.

보훈처는 12월15일 장씨에게 ‘국가유공자 요건 비해당 및 보훈 보상 대상자 요건 해당’ 통보를 해왔다. 이번에는 장씨 부상의 경우 ‘국가의 수호, 안전보장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군 직무 수행 또는 교육 훈련 중 입은 부상으로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돼 국가유공자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버지 장씨는 “5년 넘게 피눈물을 흘리며 살았는데 결국 제자리걸음만 한 꼴이 되고 말았다”며 “상사의 명령으로 소속 부대의 사격장 정비를 위한 작업을 하다가 부상을 당했는데 어떻게 관련이 없다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명예만이라도 지키게 해달라는 것이다”며 “보훈처 직원은 체육대회 하다가 다쳐도 국가유공자가 됐다는데 너무한 것 아닌가. 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는 걸 보면 국정원보다 더 막강한 조직이 보훈처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훈처 관계자는 “소송 중간에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국가유공자 요건 기준이 달라졌고 재등록을 신청하면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다시 받게 돼 있다”고 밝혔다. 법원 판결과 관련해서는 “이전 법을 적용해 국가유공자 요건은 됐지만 기존에 받은 신체검사에서 등급기준미달로 판정이 나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별개 사안인데 통지문에 함께 실리면서 오해를 사게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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