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거포 vs 로보캅 “내가 더 세다”
  • 배지헌│베이스볼랩 운영자 (.)
  • 승인 2015.08.27 13:07
  • 호수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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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테임즈, 세부 지표로 본 ‘방망이 대결’

라이벌의 존재는 성장의 원동력이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전쟁터의 적이나 서로를 박살내는 게 목표인 숙적과는 다르다. 훌륭한 라이벌의 존재는 경쟁심을 일깨우고, 끊임없이 발전하려는 동기를 부여하며, 한계를 뛰어넘어 한 계단 더 위로 올라서게 만든다. 프로야구 역사를 돌아보면 최고의 선수에게는 언제나 최고의 라이벌이 함께했다. 선동열과 최동원, 김성한과 이만수, 양준혁과 이종범, 이승엽과 우즈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서로 경쟁하고 자극을 주고받으며 레전드 반열에 올랐다.

2015 시즌 KBO리그에 또 한 쌍의 역사적인 라이벌이 탄생했다. 4년 연속 홈런왕에 도전하는 ‘국민 거포’ 박병호(29·넥센 히어로즈)와 타격의 신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로보캅’ 테임즈(29·NC 다이노스)가 리그 타격 전 부문을 휩쓰는 중이다. 8월19일 기준으로 박병호는 홈런·타점·안타에서 1위, 테임즈는 타율·득점·출루율·장타율에서 1위다. 박병호가 3연타석 홈런으로 ‘장군’을 부르면, 테임즈는 시즌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히트 포 더 사이클)로 ‘멍군’을 받아친다. 박병호가 사상 최초 2년 연속 50홈런 기록을 바라본다면, 테임즈는 역대 최초 40홈런-40도루 대기록 달성에 도전하고 있다. ‘누가 더 나은 타자인가’를 묻는다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

ⓒ 연합뉴스

전통적 스탯은 박병호, 세이버 지표는 테임즈

야구에서 가장 기본적인 타격 기록인 안타·홈런·타점만 놓고 본다면 박병호가 테임즈보다 우위에 있다. 8월19일 기준으로 박병호의 홈런 개수는 43개로 테임즈(37개)보다 6개 많다. 타점도 116타점으로 테임즈(107점)보다 9개 앞선 1위다. 박병호는 지난 시즌에도 테임즈(37홈런)보다 많은 52개의 홈런을 쳤고, 124타점을 기록해 121타점의 테임즈를 눌렀다. 올해는 145안타를 때려내며 최다 안타에서도 팀 동료 유한준(140안타)과 테임즈(134안타)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선 상황이다. 전통적인 기록이라면 올해도 박병호의 판정승이다.

하지만 좀 더 심층적인 지표들을 살펴보면 양상이 달라진다. 우선 테임즈는 타율(0.373), 출루율(0.487), 장타율(0.794), OPS(1.280)에서 압도적 1위에 올라 있다. 지금 이대로 시즌을 마친다면 타율과 출루율은 역대 3위, 장타율과 OPS는 1982년 백인천의 기록을 뛰어넘어 역대 1위가 된다. 박병호도 아주 뛰어난 타율(0.348)과 출루율(0.432), 장타율(0.731)을 기록하고 있지만, 테임즈의 기록이 인간계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테임즈가 달라진 점은 출루율이다. 지난해 테임즈는 타율(0.343)과 장타율(0.688)에서는 박병호(0.303, 0.686)를 제쳤지만 출루율은 0.422로 0.433을 기록한 박병호에 뒤졌다. 하지만 올해는 역대 3위에 해당하는 0.487의 출루율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0.432)인 박병호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다.

타석에서 참을성까지 늘어난 완전체

테임즈의 변화는 줄어든 삼진과 늘어난 볼넷 때문이다. 2014 시즌 테임즈는 타석당 19.26%의 확률로 삼진을 당하고, 10.31%의 확률로 볼넷을 얻었다. 반면 박병호의 타석당 삼진 확률은 24.87%로 테임즈보다 높았지만, 16.29%꼴로 볼넷을 얻어내며 출루율을 높였다. 올 시즌 테임즈는 삼진율을 15.8%로 낮췄다. 반면 볼넷을 15.2%까지 끌어올리면서 삼진(71)보다 더 많은 볼넷(77)을 얻어내고 있다. 박병호의 경우 올 시즌 볼넷 비율은 10.5%, 삼진 비율은 26.4%로 지난해보다 볼넷/삼진 비율이 오히려 떨어졌다.

각종 세이버 매트릭스 지표로 본 생산력은 어떨까. 우선 ‘가중출루율’이라 부르는 wOBA 스탯을 보자. wOBA는 타자의 홈런·안타·볼넷 등 생산력을 득점 가치(run value)에 따라 출루율과 비슷하게 나타내는 지표다. ‘타석당 득점 기대치’로 불리기도 한다. 이 지표에서 테임즈는 무려 0.528의 wOBA를 기록해 0.488을 기록한 박병호에 크게 앞선 것은 물론, 역대 1위인 2014년 강정호의 0.504를 뛰어넘을 기세다. 참고로 역대 KBO리그에서 0.500 이상의 wOBA를 기록한 선수는 단 3명(강정호·심정수·호세)밖에 없다.

타고투저(打高投低)를 반영하고 구장에 따라 조정해 타자의 득점 생산력을 산출하는 조정득점생산력(wRC+)에서도 테임즈는 압도적이다. 213.1의 wRC+로 박병호(187.5)를 멀찍이 따돌리고 있고, 1982년 백인천의 224에 도전 중이다. 참고로 wRC+의 리그 평균은 100이며, wRC+가 213.1이라는 건 테임즈가 리그 평균인 선수에 비해 113.1% 더 우수한 득점 생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에는 박병호가 wRC+ 168을 기록하며 테임즈(wRC+ 165)에 판정승을 거뒀다.

‘대체 선수 대비 기여 승수’를 나타내는 WAR에서도 테임즈는 7.4를 기록해, 박병호(6.2)보다 높다. WAR은 이 선수가 팀에 몇 승을 추가로 가져다주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가령 1루수 자리에 테임즈 대신 후보 선수를 시즌 내내 기용할 경우와 비교할 때, 테임즈를 기용해 팀이 추가로 얻은 승수가 7.4승이라는 의미다.

만약 테임즈가 현재의 페이스를 계속 유지한다면 WAR 10.1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2002년 이승엽(WAR 8.9)을 뛰어넘는 역대 1루수 1위 기록이자, 전체 타자 중에서도 1994년 이종범(11.3)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이다. 물론 박병호도 WAR 8.5로 역대 1루수 2위로 시즌을 마감할 수 있다. 자신의 데뷔 후 최고 기록인데 박병호가 대단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면 테임즈는 ‘역사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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