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도 입맛대로…대학에 ‘신관치’ 바람
  • 이승욱 기자 (smkgun74@sisapress.com)
  • 승인 2015.08.27 08:28
  • 호수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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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교수 투신 사망으로 본 ‘국립대 길들이기’ 논란

“총장은 직선제 약속을 이행하라.” 8월17일 오후 3시 부산대학교 대학본부 건물 4층 국기게양대에서 고현철 교수(54·국문학과)가 투신하면서 외친 구호다. 고 교수는 투신에 앞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는 내용의 유인물 수십 장을 현장에 뿌렸다. 고 교수는 유인물에서 “부산대 총장이 처음의 약속을 여러 번 번복하더니, 최종적으로 총장 직선제를 포기하고 교육부 방침대로 총장 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 참담한 심정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고 교수는 “이제 방법은 충격요법밖에 없다. 지난날 민주화 투쟁의 방식이 충격요법으로 더 효과적일지 모른다. 그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다.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걸 감당할 사람이 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 교수는 투신 직후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8월17일 고현철 부산대 교수가 총장 직선제 폐지에 반발해 대학 본관 건물에서 투신해 숨진 뒤, 동료 교수들이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돈과 힘으로 몰아붙인 ‘직선제 폐지’

고현철 부산대 교수의 투신 사망 사건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11년 교육 당국이 총장 직선제 폐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촉발된 총장 선출 방식 논란이 한 국립대 교수의 자살로 인해 더욱 첨예화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단순히 대학 총장 선출 방식을 직선제로 하느냐, 간선제로 하느냐는 논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총장 선출제 갈등 이면에는 대학 운영의 자율권을 침해하고 대학 구성원의 의사를 무시하는 정부의 과도한 관치(官治)에 대한 불만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총장 선출을 둘러싼 교육부와 대학 간의 ‘대학 新(신)관치’ 논란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1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가 ‘2단계 국립대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육부는 1단계 국립대 선진화 방안에 이어 국립대 운영 체계의 효율화 및 합리화와 경쟁 시스템 구축 등을 골자로 한 구조 개혁안을 추가로 내놓았다.

당시 구조 개혁안의 핵심은 총장 직선제 폐지였다. 일부 국립대 총장 선거 과정에서 금품 수수와 파벌 형성 등 직선제의 폐해가 적지 않았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총장 직선제가 국립대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판단한 것이다. 2단계 국립대 선진화 방안을 논의했던 대학구조개혁위원회 홍승용 위원장도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조 개혁 방안의 핵심은 무엇이냐, 첫째는 총장 공모제 도입이다. 역량 있는 내외부 인사가 총장이 될 수 있도록 공모 방식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총장 선출 제도의 개선이 국립대 구조 개혁의 핵심이라는 뜻을 공표한 것이다.

대학 자율권 침해를 주장하는 대학 교수회 등 구성원들의 반발은 거셌다. 하지만 국립대 선진화 방안 발표 1년 후인 2011년 9월 우선 교육대학이 총장 직선제를 폐지했다. 교육부는 교육대학에 이어 다른 국립대를 상대로 직선제 폐지의 고삐를 바짝 당겼다.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적 개선”을 강조하면서도, 사실상 강제적인 총장 선출제 개선을 압박하고 나섰다. 대학마다 25억~30억원에 이르는 재정 지원이 따르는 대학 역량 강화 사업 평가와 연계시키며 재정 압박을 가한 것이다. 이후 2012년 사업 평가를 앞둔 상당수 국립대는 총장 직선제를 보장한 학칙 조항을 거의 대부분 삭제하며 ‘백기 투항’했다.

고 고현철 교수가 몸담았던 부산대는 교수회 등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로 그 당시 총장 직선제 폐지를 명시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산대도 재정 지원 압박이 거세지자 고육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부산대는 2012년 8월 ‘총장 후보자는 총장임용추천위원회에서 선정하되, 세부 사항은 별도 규정을 정한다’는 간선제를 일부 도입하는 학칙 개정을 했다. 하지만 부산대 교수회 등은 당시 학칙 개정이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한 고육책이었을 뿐, 김기섭 총장(사퇴)과 대학본부가 추후 대학 구성원 간에 합의를 통해 직선제를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한다는 전제조건을 걸었다고 주장했다.

부산대 교수회 관계자는 “대학본부가 당초 학칙 개정에 합의했을 때는 대학본부 안과 교수회 안을 각각 제출해 구성원의 결정에 따라 도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학칙 개정 이후 본부 측이 안 제출을 미루면서 시간 벌기를 했다”면서 “결국은 대학본부가 내년 봄 신임 총장 선출을 앞두고 교육부의 완전한 직선제 폐지 쪽으로 기울면서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밝혔다. 결국 부산대 교수회 소속 일부 교수가 200일 이상 농성을 벌이는 등 내부 반발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고 교수의 투신 사망 사건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빚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2월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국 대학 총장 만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육부, 간선제 추천 후보도 임명 제청 거부 

총장 선출제 논란이 대학 자율권 침해 논란으로 증폭된 데는, 박근혜 정부 들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국립대 총장 후보자들의 임명 제청을 잇달아 거부했기 때문이다. 현재 교육공무원법 24조에 따라, 총장의 임용은 대학에서 2~3배수로 후보자를 추천하면 교육부의 자격심사를 거쳐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한 후 최종 결정된다.

그런데 공주대는 지난해 3월 총장후보추천위원회(총추위)에서 1, 2 순위 총장 후보를 추천했지만 교육부에서 임명 제청을 거부한 채로 1년 5개월이 흘렀다. 경북대와 한국방송통신대에 대해서도 1년 넘게 후보 추천자 임명 제청을 하지 않고 있다. 이들 대학은 총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면서 총장 공석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교육부는 총장 후보자들에 대한 임명 제청 거부 사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어 논란을 빚어왔다. 당사자인 총장 후보자와 대학 측이 임명 절차를 미루는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지만 교육부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공주대 총장 후보 1순위자인 김현규 교수는 교육부를 상대로 낸 ‘총장 임용 제청 거부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다. 한국방송통신대 총장 후보 1순위자 류수노 교수는 1심 소송에서 승소한 반면 2심에서 패소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경북대의 경우 8월20일 총장 후보 1순위자인 김사열 교수(생명과학부)가 제기한 임용 제청 거부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라는 법원의 1심 판결을 받았다.

교육부는 패소 판결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결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부는 “국립대 총장 임용은 대학에서 총장 후보자를 2인 이상 추천하면 교육부는 적합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는지를 종합적으로 심의하는 과정을 거쳐 임용 제청 여부를 결정해 해당 대학에 후보자 재추천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자신들이 대학에 요구한 간선제 방식으로 추천된 후보자들의 임용 제청을 원천 봉쇄하는 데 대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교육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총장 후보자의 임용을 거부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실제 교육부의 임용 제청 거부로 논란을 빚은 한국체육대 총장 자리에 경북 구미 출신이자 친박근혜계로 분류되는 김성조 전 의원을 임용하면서 이러한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교육부는 총장 인준 거부 등을 통해 대학에 대한 실효적인 지배권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면서 “최근 제자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거나 금품 살포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총장까지 인준해주는 것을 보면 결국 정부 입맛에 맞는 총장을 임명하려는 움직임이 분명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총장추천위 위원 추첨으로만 뽑아라”

교육부가 총장 직선제 폐지와 재정 지원 사업을 연계하면서 학내 자율적인 의지보다는 강제적인 구조 개선에 집착하다가 내부 반발을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교육부가 직선제를 자율적으로 개선한다는 점을 강조해온 입장과는 달리 과도한 개입을 통해 자율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2단계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 도입 초기였던 MB 정부 당시 교육부는 교육 역량 강화 사업 평가를 총장 직선제 폐지 문제와 연계시켰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그 압박 수위가 더 높아졌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학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정부가 대학에 총장 직선제 폐지를 강요하기보다는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오히려 국립대학 혁신 사업과 대학 특성화 사업(CK) 평가에도 총장 직선제 폐지를 평가 요소로 내걸면서 압박 강도를 높였다.

교육부의 집요한 ‘총장 직선제 죽이기’도 논란의 한 대목이다. 교육부는 2011년 당시 2단계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을 처음 발표할 때만 하더라도, ‘총장 직선제와 관련해 각 대학의 사정에 맞게 다양한 방식의 개선 방안을 마련토록 한다’고 하고, 총추위를 ‘교직원 및 학생 등의 추천 인사’로 구성하도록 했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입수한, 2014년 3월 교육부가 각 국립대로 내려보낸 공문에는 총추위 위원 구성을 할 때 아예 추천을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뒤바뀐 입장을 보였다. 이 공문에서 교육부는 “총장 직선제 요소를 학칙에서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면서 “추천위원 구성도 무작위 추첨(추출·표집) 방식이 아닌 투표나 추천 등을 통해 총장임용추천위원회 내부 위원을 선정하는 방식은 총장 직선제 요소가 있다”며 삭제를 요구했다. 특히 이 공문에서 “교육부가 예시로 안내한 총장 직선제 이외에도 총장 직선제 요소가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 모두 삭제 완료하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2단계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에 대해 논의한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위원은 “교육부가 총장 직선제로 인한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간선제 도입을 유도했지만 이 역시 문제가 생기자 또 다른 개선책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직선제 폐지, 간선제 도입이라는 교육부의 총장 선출제 개선안도 완벽한 방안이 아니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부산대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고 있는 박홍원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총장 직선제가 맞느냐, 간선제가 맞느냐가 아니다”면서 “정부가 대학 자율화를 이야기하면서도 학내 구성원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막으며 대학의 민주화를 가로막고 힘으로 누르려고 하는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총장 직선제 폐지에만 몰두하면서 관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합리적인 대안 마련도 어렵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방 국립대의 한 교수는 “과거 총장 직선제에 문제가 있으면 선거 투명성을 위해 총장 선거 투표권을 교수만이 아닌 직원과 학생으로 확대하는 안을 보완해 도입할 수 있다”면서 “교육부가 총장의 권한에 대해 대학 내부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제도 보완을 하면 되는데 무조건 직선제 폐지를 강요하면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대는 고 교수의 투신 사망 이후 대학본부와 교수회 비상대책위 간 논의를 거쳐 총장 직선제를 고수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러한 부산대 사태가 다른 국립대나 사립대의 총장 직선제 도입 움직임으로 확산될 여지도 적지 않다. 대학 총장 임용이 교육부의 임용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재가를 하는 만큼 교육부의 일률적인 총장 직선제 폐지라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으면 이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 활동 문제 삼으면 대통령이 부끄러워해야”
임용 제청 거부당한 김사열 경북대 총장 후보자

경북대는 1년 2개월 이상 장기 ‘총장 공석’ 상황을 빚고 있다. 총장임용추천위원회에서 선출된 김사열 교수에 대한 임용 제청을 교육부가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부산대 교수의 투신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 만인 8월20일 교육부를 상대로 낸 총장 임용 제청 거부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교육부가 구체적인 근거와 이유는 전혀 제시하지 않고 ‘교육공무원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추천 후보자를 임용 제청하지 않기로 했다’라고만 (임용 제청 거부) 이유를 밝히고 있다”며 “피고의 임용 제청 거부에는 절차적인 위법 사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판결이 나온 다음 날인 8월21일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부산대 고현철 교수 사망 사건을 지켜보는 심정이 남다를 것 같다. 

“고인이 투신한 것은 단순히 격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훼손과 대학의 위기에 대한 걱정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고인의 죽음을 바라보면 참담한 마음이지만, 고인의 희생이 알량한 권력을 휘두르는 교육부의 행태와 한국 사회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총장 선출제를 두고 논란이 많다. 논란의 핵심은 무엇인가.

“정부가 대학 자치를 무조건 배제한 채 대학을 길들이려고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부산대는 다른 대학과 달리 그 의미를 가볍지 않게 여기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대학이다.”

교육부에서 임용 제청 거부 사유를 공식 통보받은 바 있나.

“전혀 없다. 대학본부나 교수회에서 교육부에 (거부 사유를) 물었는데 당사자가 아니라고 말 안 하고, 내가 물어도 재판 진행 중이라 말 못한다고 한다. (거부 사유에 대한) 소문이 기사화됐지만 그 소문들도 근거 없는 이야기다. 일부에서는 내가 박근혜 대통령을 반대하고 광화문에 가서 데모를 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가 박 대통령을 (선거에서) 찍었는지, 안 찍었는지를 그들이 어떻게 아나. 그리고 (데모하러) 광화문에 간 적도 없다.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한 것은 맞지만 정당 활동을 한 적도 없다. 교육부가 내가 (시국) 서명을 한 것을 문제 삼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을 한 행동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납득이 안 된다. 그걸 문제 삼는 게 맞으면, 교육부장관과 대통령이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총장 공석 사태로 인한 피해도 많다고 들었다.

“기본적으로 학사 행정에서 학생들의 불이익이 있다. 무엇보다 대학도 경쟁과 발전을 위해서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추진해야 하지 않나. 총장이 없으면 힘든 일이다. 대학이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로 있는데, 이러면 대학 발전이 후퇴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교육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지 말고 즉각 임용 제청을 하고 대학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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