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권력 뒤 성폭력 담합 구조 깨라
  • 전현희 | 변호사 (.)
  • 승인 2015.08.19 15:50
  • 호수 9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내 성범죄 형사 처벌 강화보다 근본적 개선이 우선

교육 현장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차마 믿기 어려운 성희롱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교장을 포함한 50대 남교사 5명이 여교사와 여학생을 상대로 상습 성추행 및 성희롱을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성폭력의 하나인 성추행은 강제추행을 뜻한다. 강제추행이 성희롱과 다른 것은 ‘폭행’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추행’을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안은 학교 내의 교사와 학생, 선임 교사와 신입 여교사라는 수직적 상하 관계에서 일어난 일로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저항하기 어려운 무언의 압박으로 피해가 더 커졌다는 점에서 심각한 범죄 행위로 봐야 한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8월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 ‘중학교 자유학기제 시행 계획’ 시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구나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경력도 오래되고 주요 보직을 맡고 있거나 입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터였다. 때문에 피해 학생들은 진학에 불이익이 생길까 봐 두려운 마음에 자신들이 당한 피해를 쉬쉬하며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릴 수 없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신입 여교사들도 이들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충격적인 사건이 알려지자 교육계는 뒤늦게 해결에 나서고 있다.

교육부는 8월13일 학교 성폭력 사안을 고의적으로 은폐하면 최고 파면까지 할 수 있도록 징계 규칙을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범죄 교원의 형이 확정되면 당연 퇴직하게 해 교단에서 영구 퇴출시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전면 시행하기로 했다.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경력자는 교원 자격 취득을 제한하고, 후에도 성범죄를 저지르면 교원 자격을 취소하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한다. 또한 성범죄 교원이 해임되면 연금을 삭감하기로 했다고 한다.

교내 기득권 문화 혁파해야

제도 개선은 만시지탄이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범죄 근절을 위해 학교 내 성범죄의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치 없이 단지 처벌 수위만 높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들의 어쩔 수 없는 묵인과 학교 측의 소극적 대처로 저지른 죄에 합당한 응징과 예방을 하기보다는 성범죄가 은폐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형사 처벌 수위가 높더라도 학교 내 성범죄에 대해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서는 그 실효성도 의문이다. 실제로 성범죄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조사 방안을 강구하는 게 더 시급하다.

먼저 교내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 평가권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바꾸고, 학교 내 기득권 문화를 혁파해야 한다. ‘교육 현장’이 성범죄로 인해 오염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신성한 교육 현장에서 이렇게 성범죄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우리나라의 학교 문화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교내 성범죄 발생 시 피해 학생들과 보호자들은 수치심 때문에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만약 학교마저도 교내 성범죄 사실에 대해 사건 은폐를 시도하게 된다면 경찰 수사에서 성범죄 교사가 혐의를 벗을 확률은 높아진다.

이번 사안처럼 교장과 주요 보직교사들이 연루된 경우에는 그들이 교사 근무평정 평가권 대부분을 쥐고 있어 일반 교사들이 이들의 눈치를 보고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교내 성범죄로 인해 물의를 일으키는 교사들이 주로 학교 내 기득권층인 이유와도 연결된다. 교내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 평가권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바꾸고, 다양한 기준을 적용해 교사 평가가 보직교사들의 주관적인 의사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해 기득권 문화를 타파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교육부 산하 OCR(Office for Civil Rights·미국 교육부 시민권리교육국)에서 교내 성희롱 사건 발생 시 대응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있고, 학교가 성희롱 사건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일 경우 연방 재정 지원을 끊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학교 내 성범죄 대응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압박하는 제도로 우리나라도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학생·교사·학부모 모두 성범죄 감시자 돼야

둘째로는 학생·교사·학부모 등 교육 구성원들 모두가 참여해 자발적인 학교 성범죄의 감시자가 될 수 있도록 학교 성폭력 교육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교육부는 교내 성범죄 해결 방안으로 교원들에 대한 성범죄 예방 교육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교원들에게 형식적인 성범죄 예방 관련 교육만 강화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교사들은 1년에 2번씩 교내 성범죄 예방 교육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교내 성범죄 사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공식적인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사안까지 합친다면 교내 성범죄 사건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교내 성범죄 예방 교육의 내실화가 적극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교사 입장에서는 단지 친밀도를 나타내는 행위라고 해도 어린 학생 입장에서는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성추행에 해당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교사들이 성추행 행위의 범위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또 교육 내용에 성추행을 했을 경우 받게 되는 처벌과 학생들의 피해에 대한 교사로서의 대처 방안 등도 포함시켜야 한다. 이러한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한 확인도 형식적인 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 단지 교육청 보고용으로 교육받았다는 확인 서명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성범죄 예방 교육이 일선 교사들에게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 성범죄 예방 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학교 내 성범죄 교육 대상에 학생들과 학부모도 포함시켜 이들이 학교 내 성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교육학개론’에 따르면 교사의 인간상은 학생들의 가치관·태도·신념·인성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성희롱을 하는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 교사에게 교육을 받은 학생이 성인으로 자라 그런 행동을 답습하게 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현재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교직에 종사할 예비 교육자를 채용할 때도 성희롱 관련 인성을 신중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