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박야김’(晝朴夜金)이란 말이 나돈다. 김무성 대표를 보는 의원들의 시선이 그만큼 달라진 거다. 아직 대선까지는 한참 남았고 그래서 어떤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 ‘김무성 대세론’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최근 6주 연속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온 후 한 친박계 재선 의원이 기자에게 들려준 얘기다. “김 대표의 지지율은 여전히 충성도 높은 박근혜 대통령 지지층에 기반해 있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미래 권력’에 대한 여권 내 기류 변화가 조심스럽게 읽힌다.
방미 기간 중 비난 여론에도 지지율 올라
김무성 대표 지지율은 최근 안정적인 20% 초반대를 유지하고 있고, 때에 따라선 20% 중반대를 넘나들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미터의 8월 1주 차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김 대표는 24.2%를 얻어 6월 마지막 주부터 6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5.8%,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4.4%로 각각 2, 3위였다.
김 대표 측은 이번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 직전 다소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한 측근 의원은 “(김 대표의) 미국 방문 기간 중에 언론들이 비판적인 보도를 쏟아내 솔직히 좀 걱정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김 대표가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큰절을 한 것을 두고 과공비례 논란이 일었고, “중국보다 미국이 먼저”라는 발언이 외교의 기본을 망각했다는 질타를 받은 점 등을 의식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 여론조사 결과는 딴판이었다. 김 대표 지지율은 일주일 전에 비해 오히려 3.0%포인트 상승했고, 같은 기간 2.6%포인트 하락한 박 시장과의 격차도 8.4%포인트로 더 벌어진 것이다. 이 측근 의원은 “언론이 아무리 삐딱하게 봐도 국민이 김 대표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지지율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김 대표 측으로서는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권 대선 주자 지지도 1위 자리를 줄곧 유지해오고 있고, 이제는 안정적인 20%대 지지율이 굳어지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여론의 바로미터이면서 여권 입장에선 버거운 싸움이 예상되는 수도권에서도 1위를 질주하고 있다. 게다가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한때 ‘반짝 인기몰이’를 했지만, 여전히 김 대표와의 격차는 크다. 여권 주자들만 놓고 보면 압도적인 1위다. 김 대표 측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여권 주자들의 지지율을 전부 더해도 야권 유력 주자들 몇 명보다 낮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김 대표의 지지율이 안정기에 접어드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박 시장이나 문 대표 등과 양자 대결 구도가 형성되더라도 결코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치권 안팎의 실질적인 관심사는 김 대표 대세론이 굳어질 것인가에 있다. 여권 내부에 아직 뚜렷한 대항마가 없는 상황에서 내년 4월 총선을 지나 내후년 12월 대선이 가까워올수록 지지층의 위기감은 커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지지율 측면에서 김 대표가 ‘밴드왜건 효과’(대세를 쫓아가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사실 김 대표 측의 대권 전략도 이 같은 가능성에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중국 방문 중 ‘개헌 봇물론’을 제기했다가 곧바로 청와대의 반격에 무릎을 꿇을 때부터 김 대표가 보여온 일관된 모습이 그렇다. 한 측근 의원은 “한때 이명박 정부 당시의 ‘박근혜 모델’을 생각했을 수 있지만, 개헌 논란을 계기로 김 대표가 ‘살아 있는 권력’과의 충돌은 자해 행위라고 생각한 듯하다”고 전했다.
잠룡들 중 맞설 인물 아직 없어
실제 김 대표 지지율은 지난해 10월 개헌 발언 직후 일주일 새 각종 여론조사에서 7~8%포인트 급락했다. 그런데 김 대표가 바짝 엎드린 이후 지금까지도 이 같은 출렁거림은 없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지금은 박 대통령 지지층이 김 대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상황이고, 김 대표도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물려받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 대표의 ‘박근혜 코드’ 맞추기 전략이 최소한 지금까지는 성공적이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여권 내에선 진작부터 ‘잠룡’으로 꼽혀온 이가 적지 않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정몽준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 김태호 최고위원 등은 이미 대권에 도전한 경험이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유력 후보로 거론돼왔다. 여기에다 최근엔 유승민 전 원내대표도 자천타천으로 하마평에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아직까지 이들 중 김 대표의 맞상대로 거론될 만한 이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김 전 지사는 내년 총선에서 여권의 본산 격인 대구·경북(TK) 출마로 활로를 모색 중이고, 오 전 시장도 ‘정치 1번지’로 꼽히는 서울 종로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대선 도전 의지를 내비쳤고, 지난해 광역단체장으로 말을 갈아탄 남 지사와 원 지사는 행정 능력을 키우면서 협치(協治) 실험에 한창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이는 단연 유 전 원내대표다. 무엇보다 여권 내 최대주주인 TK 출신이고, 안보국방 분야에선 깐깐한 보수이면서도 경제사회 분야에선 개혁 색채가 짙다. ‘포스트 박근혜’를 찾는 TK 민심을 업을 가능성이 열려 있고, 여야 간 맞대결에서 중도층을 끌어올 수 있는 잠재력을 갖췄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의 말이다. “내년 총선 직후부터 대선 국면이 시작되면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여당 대선 주자들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김무성 대표는 어떤 식으로든 지금보다는 박 대통령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 전 원내대표는 그때 역으로 ‘박근혜 지킴이’를 자처할 수 있다. 그러면 TK 민심은 언제든 유승민 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