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에 동물적 감각 지닌 35세 CEO”
  • 소성렬|전자신문 기자 (.)
  • 승인 2015.08.19 15:19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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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이 임지훈 단독대표 카드 빼든 이유

“축하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많은 분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 올린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당분간은 소셜 미디어를 못할 것 같다. 다들 건승하시길 바란다.” 연매출 1조원, 시가총액 8조원, 임직원 3000명인 다음카카오의 차기 대표로 전격 발탁된 임지훈 케이큐브벤처스 대표(35)가 8월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마지막 글이다.

어떻게 보면 실험(?)에 가깝다는 다음카카오의 임지훈 내정자 관련 뉴스는 8월10일과 11일 포털의 주요 뉴스에 랭크되며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렇다면 다음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은 왜 이 같은 실험을 감행했을까.

8월11일 다음카카오 단독대표로 내정된 임지훈 케이큐브벤처스 대표.

캐주얼 게임 ‘애니팡’ 제작회사에 투자

다음카카오 측은 ‘속도감 있는 모바일 시대에 발맞춰 더 빠르고 강한 조직으로의 전환이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빠르게 변화하는 모바일 시대에 맞춰 강하고 속도감 있게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필요가 있었다”며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 시너지 효과를 본격화하기 위한 적임자로 임지훈 대표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 내정자는 30대 중반임에도 ‘투자에 탁월한 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과도 인연이 깊다. 임 내정자는 KAIST 산업공학과 졸업 후 NHN(현 네이버) 기획실 전략매니저로 근무하면서 당시 공동대표였던 김범수 의장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잠시 스쳐가는 사이였다. 이후 김 의장은 네이버에서 나와 카카오를 창업했고, 임 내정자도 퇴사 후 일본 소프트뱅크 계열의 벤처투자사인 소프트뱅크벤처스 수석심사역으로 벤처투자업계에 뛰어들었다. 2010년 소프트뱅크벤처스 재직 시절 게임 개발사 선데이토즈의 성공 가능성을 엿보고 30억원을 투자받도록 한 일화는 아직도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선데이토즈는 국민 캐주얼 게임 ‘애니팡’을 제작한 회사다.

김 의장과 임 내정자의 본격적인 인연은 2011년 모바일 커머스 스타트업 로티플 인수를 통해 이어졌다. 임 대표는 당시 로티플에 투자한 김 의장과 인수 협상을 벌이면서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김 의장과 임 내정자 사이에 접점이 있다면 그건 선데이토즈의 ‘애니팡’이지 않을까 싶다”며 “임 내정자는 애니팡을 개발한 회사에 투자를 유치했고, 애니팡은 지금의 카카오가 있게 만들어준 대표적인 콘텐츠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가교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김 의장은 2012년 임 내정자에게 자신이 자본금 100%를 출자해 설립한 벤처투자사 케이큐브벤처스 대표를 맡겼다. 임 내정자의 나이 서른두 살 때였다. 임 내정자에게 대표라는 중책을 맡긴 김범수 의장은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 회사를 방문해 케이큐브벤처스를 챙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범수 의장의 눈은 정확했다. 임 내정자는 3년간 키즈노트·핀콘·프로그램스·레드사하라 등 50여 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해 수십 배 넘게 가치가 오른 기업들을 발굴해냈다. 임 내정자가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이었다. 실제로 임 내정자는 투자한 회사가 성공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매달 스타트업 대표들이 모여 노하우와 정보를 공유하며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도록 ‘케이큐브 패밀리 CEO 데이’를 열었다. 미국 페이팔 출신 창업자들이 유튜브나 링크드인과 같은 성공 기업을 만드는 데 상시 도움을 주고받으며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로 불렸던 것과 비슷하다. 케이큐브벤처스를 설립한 김범수 의장도 ‘케이큐브 패밀리 CEO 데이’에 종종 방문해 스타트업을 위한 조언을 공유했다. 임 내정자의 뛰어난 투자 안목은 김 의장의 신뢰를 키웠고 그것을 바탕으로 결국 다음카카오의 새로운 수장에 발탁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임 내정자가 그동안 외부 투자나 컨설팅 관련 일만 해왔기 때문에 모바일 신규 서비스 개발보다 투자나 인수·합병(M&A) 쪽으로 회사 경영의 중심이 옮겨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분석했다. 임 내정자는 김 의장의 생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경영인이다. 젊은 만큼 판단이 빠르고, 모바일 관련 전문가이기 때문에 다음카카오의 대표 자리에 적합하다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이 2월24일 서울 연세대에서 강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모바일 전자상거래·게임 등 여러 분야 경험

임 내정자를 아는 지인들도 그가 모바일 관련 스타트업 기업의 탄생부터 성장, 인수·합병 등 모든 과정을 거친 전문가라고 말한다. 실제로 소프트뱅크벤처스 수석심사역을 제외하고도 2012년 케이큐브벤처스를 설립한 이후 총 52개 기업에 250억원 넘게 투자를 했다.

투자 대상도 모바일 전자상거래부터 게임, 콘텐츠 추천 서비스 등 다양하다. IT업계에는 게임·상거래·서비스 등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는 많지만, 임 내정자처럼 여러 분야를 경험해본 이는 드물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평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임 내정자는 스스로 ‘가능성 있는 벤처기업을 인수해 생태계 파괴 논란은 피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출시해 국내는 물론 새롭게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시험대를 통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임 내정자는 카카오택시를 성공적으로 이끈 정주환 부사장 등으로 구성된 ‘뉴리더’ 팀을 꾸리고 조직 개편에 시동을 걸었다. 9월23일로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대표로서 공식 업무에 들어간다. 임 내정자는 “다음카카오를 대한민국 모바일 기업에서 나아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모바일 리딩(선도)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카카오의 새로운 수장을 맡게 된 임지훈 내정자의 꿈이 현실에서 이뤄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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