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아차 비정규직 위해 6일을 소금과 물로 버텼다”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biz.com)
  • 승인 2015.08.19 13:14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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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사내 하청 노동자 농성 70일째, 농성자 2명 징계 통보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시위 중인 기아자동차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조합원 / 사진=박성의 기자

서울 시청 옆 국가인권위원회 14층 옥상 위에는 사람 두 명이 산다. 기아차 사내하청분회 소속 노동자 최정명(45)과 한규협(41) 씨다. 옥상에 거주한 지 70일째다. 두 사람은 지난주 6일간 섭씨 33도 넘는 땡볕 아래 소금과 물만 섭취하며 버텼다.

두 사람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은 기아차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불법 파견으로 봐야하며 파견 기간 2년 이상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기아차는 즉시 항소했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채용은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미뤄지게 됐다. 최씨와 한씨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내걸고 지난 6월11일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61일째 변수가 생겼다. 옥상 위 광고업체가 지난 10일 광고에 차질을 빚는다며 옥상 출입문을 자물쇠로 걸어 잠갔다. 경찰도 충돌 방지를 이유로 옥상 출입문 계단을 막았다. 농성자에게 음식과 물을 공급할 길이 차단된 것이다.

농성자들은 음식물을 공급 받지 못했다. 그렇게 엿새가 지났다. 농성자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결국 지난 15일 국가인권위, 사내하청분회,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논의한 끝에 농성자에게 음식물과 식수가 전해졌다.

농성은 계속되고 있다. 분회와 광고업체, 기아차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 경제매체 시사비즈는 지난 18일 옥상 위 두 노동자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8일 인권위 옥상에서 농성 중인 최정명(왼쪽), 한규협(오른쪽)씨 / 사진=박성의 기자

- 6일간 음식물을 공급 받지 못했는데.

한규협(이하 한) : 예고 없이 음식이 끊겼다. 옥상 위에 남아있는 음식이라곤 1.5ℓ 생수 3통과 소금이 전부였다. 단식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 물과 소금을 조금씩 나눠 먹으며 버텼다. 날씨는 뜨거웠고 몸은 지쳐갔다. 음식을 공급 받고 많이 회복됐다.

최정명(이하 최) : 배고픔보다 마음이 힘들었다. 우리는 회사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아차는 법을 지키지 않지만 아무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법을 어기자 식사를 끊었다.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다.

- 옥상 광고업체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한 : 광고업체 사장에겐 죄송하다. 농성을 시작할 때 광고판이 사기업 소유라는 사실을 몰랐다. 농성 현수막을 옮겼다. 광고 재개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광고업체 사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본사 앞과 정몽구 회장 사택 등에서 시위해봤지만 기아차는 들어주지 않았다. 절박한 심정으로 국가인권위 옥상에 올랐다.  

최 : 광고업체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우리가 버티는 이유는 하나다. 기아차가 법원 판결을 이행하는 것이다. 원청이자 고용주인 기아차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광고업체가 우리를 옥죄이자 기아차는 상황을 방치했다. 대기업이 보일 행태는 아니다. 이 사안을 광고업체와 농성자 간 다툼으로 몰아가기는 비겁한 짓이다.  

- 기아차는 고공 농성을 중지하면 협상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 우리는 법원 판결을 이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시 대화하자는 게 아니다. 기아차는 사내 하청이 불법 파견임을 인정하지 않고 항소했다. 2심을 이겨도 최종심까지 가면 몇년이 걸릴 지 모른다. 시간 끌기다. 회사는 농성 전 대화를 거부했다. 지금은 농성 탓에 대화하지 못한다고 핑계를 댄다.

최 : 우리도 농성하지 않고 문제를 풀고 싶었다. 기아차는 노동의 대가를 인정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직원들은 더 힘들게 일하고 낮은 대가를 받는다. 이게 왜 당연히 여겨져야 하는가. 법원도 우리 편을 들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제 기아차가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야 할 시점이다.

- 농성 69일째다.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한 : 몸은 힘들지 않다. 이제 장마도 그쳤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다. 낮에는 여전히 무덥지만 적응이 됐다. 하지만 가족이 보고 싶다. 농성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내려가면 가족과 동료부터 만나고 싶다.

최 : 안전장치가 없다 보니 위험하다. 광고판은 경사가 져있다. 잘 때 떨어질 위험이 있어 최대한 웅크리고 잔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계단으로 피신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 한다는 게 가장 힘들다. 지난주 식사를 재개하며 아내와 통화했다. 아내는 “당신을 믿는다. 기왕 하는 거 건강히 잘 버티고 웃으며 보자”라고 말하더라.

인터뷰가 진행된 이날 농성자 2명은 징계를 통보받았다. 하청업체 사장이 오전 11시쯤 옥상에 올라와 약 5분간 확성기를 통해 19일 징계 수위를 결정하겠다고 통보했다.

인권위 옥상 광고업체는 농성으로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법원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농성자들에게 7월16일부터 매일 100만원씩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6억7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 중이다.

한편 수원지검 공안부는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장이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기아차 경영진을 고발한 사건을 수사 중이다. 분회 측은 지난해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에서 승소했음에도 기아차가 불법 파견을 계속하고 있어 경영진을 처벌해달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2심과 3심 법원 판결이 남아있다. 지금으로선 해명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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