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장남 이맹희씨 별세...비운의 황태자로 죽은 '복잡한 상황'
  • 김지영 기자 (kjy@sisabiz.com)
  • 승인 2015.08.14 17:18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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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왼쪽)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오른쪽) / 사진 = 우먼센스

이맹희 전(前) 제일비료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다. 이맹희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형이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아버지다.

그는  ‘비운의 황태자’로 불린다. 부친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장남 맹희와 차남 창의를 제치고 삼남 건희에게 그룹 경영권을 상속했다.  

이씨는 2012년2월 이건희 회장 상대로 느닷없이 상속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해 상소를 포기하고 동생에게 화해하자는 뜻을 밝혔으나 이건희 회장이 받아들이지 않아 둘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 이맹희의 경영 능력에 대한 엇갈린 평가

이맹희씨는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장남이지만 경영에서 배제됐다. 이병철 회장은 이씨를 무능하다고 평가했다.

이병철 회장은 1986년 펴낸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주위 권고도 있고 본인 희망도 있어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보았다. 그러나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본인이 자청해 물러났다”고 서술했다.

이맹희씨는 달리 주장한다. 그는 1993년 펴낸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 에서 “내가 물러난 것은 기업이 혼란에 빠져서가 아니다. 몇 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책에서 그는 “‘1967년부터 1973~1974년 사이 삼성의 역사를 뒤져보면 어느 책이나 이 부분에 대한 기술은 명확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기간이 바로 내가 (삼성에서) 활동한 기간”이라고 주장했다. 본인이 삼성에서 일한 기간이 6개월이 아니라 7년 이상이라는 것이다. 

◆ 사카린 밀수 사건과 동생 창의씨 투서로 아버지 미움 사

이맹희씨가 아버지의 미움을 사고 물러날 수밖에 없는 복잡한 상황은 무엇일까.

그 중심엔 차남 이창희씨가 있다. 삼성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1966년 건설자재로 가장해 사카린을 대량 밀수하다 적발됐다. 이 사건으로  이창희 당시 한국비료 임원이 같은 해 9월27일 구속됐다. 이병철 회장은 한 달 뒤 10월22일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경제계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을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이맹희씨는 자서전에서 “아버지는 1967년 7월 첫 월요일에 나를 삼성의 총수로 정하고 아버지를 대신해 삼성을 이끌어갈 권리를 부여한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했다”고 썼다. 이맹희씨는 삼성 경영의 전면에 나섰다.

1972년 10월 상황이 바뀌었다. 유신헌법이 제정된 뒤 박정희 정권과 삼성의 관계가 원만해졌다. 이병철 회장은 경영 복귀를 원했다. 이맹희씨는 “아버지가 복귀하고 싶어 하는데 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비키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창희씨는 감옥에서 6개월을 지낸 뒤 출소했다. 창희씨는 박정희 대통 령에게 투서를 보냈다. 아버지 이병철 회장은 외화를 밀반출한 책임이 있으니 경영에서 은퇴해야 한다 등 6가지 내용을 담았다.  

이맹희씨는 자서전에서 “권력자들이 사건을 막으려 한 것이 아니라 집안의 분란을 자신들이 삼성을 조종할 무기로 활용했다”며 자신은 투서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항변했다.

이맹희씨는 당시 그룹 총수로서 17개 직함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가 복귀하자 이맹희는 삼성물산·삼성전자·제일제당 부사장 등 3개 직함만 갖고 물러나야 했다. 창희씨는 외국으로 쫓겨났다.

이맹희씨는 사카린 밀수 사건과 투서가 삼성의 후계 구도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그는 “아버지가 삼성의 차기 경영자로 건희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처음 발표한 것은 1976년 9월 이었다. 아버지가 암 수술차 일본으로 출국하기 직전이었다”고 밝혔다.

◆ 승계와 재산 상속 다툼이 소송으로

이맹희씨는 2012년2월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7100억원 규모 상속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당시 “이병철이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해둔 주식(차명 주식)을 이건희가 다른 형제 몰래 자기 명의로 변경했다”고 주장했다.

이건희 회장과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해 삼성생명 주식 824만 주와 삼성전자 주식 20주, 배당금 1억원 등 7100억원을 나눠달라는 것이 소송의 요지였다. 이병철의 차녀 이숙희, 차남 이창희의 둘째 아들 이재찬의 부인 최선희와 두 아들도 함께했다. 형제간 다툼에서 삼성가(家)의 소송전으로 번졌다.

결국 이맹희씨가 지난해 2월26일 상고를 포기하면서 소송은 끝났다. 이맹희씨는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서신에서 “저와 건희는 고소인과 피고소인이기 전에 피를 나눈 형제이기에, 화해하는 것은 10분 아니 5분 만에 끝날 수도 있다”라며 화해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이건희 회장이 1988년 초 이맹희씨를 찾아온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맹희씨는 2012년12월 폐암 2기 확진을 받고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이어 왔다. 그러다 지난해 5월 갑작스레 쓰러졌다. 이맹희씨가 14일 세상을 떠나면서 두 형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이별의 시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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