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표절에 김영사 파문 “오호통재라”
  • 김성곤│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15.08.05 18:01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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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 배신감 상상 이상…만신창이 된 출판계

국내 출판업계가 연이은 메가톤급 악재로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태가 미처 수습되기도 전에 국내 최대 출판사 중 하나인 김영사 내부의 추악한 경영권 분쟁이 수면 위로 불거진 것이다. 지난해 11월 국내 출판업계의 숙원이었던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출판 시장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지만 초대형 악재 여파로 출판 시장 정상화는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신경숙 표절 사태와 김영사 파문에 의한 독자들의 생채기가 워낙 커 출판계가 다시 독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7월30일 서울의 한 대형 서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온갖 추문으로 독자 신뢰 뿌리째 흔들

국내 출판업계는 만신창이가 됐다. 최근 출판 시장은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환경의 급변으로 탈출구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나마 팔리는 책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출판사들의 ‘미디어 셀러’가 대부분일 정도로 출판 시장 양극화는 심각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최근 몇 년간 출판계 안팎에서는 악재가 줄을 이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낙하산 논란,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조작설, 모 출판사 임원의 성추행 사건, 구름빵 저작권 시비 등등.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 파문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표절에 독자들은 ‘신도리코’ ‘표절과 두둔’이라고 조롱하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지만 해당 작가와 출판사 창작과비평은 요지부동이었다. 자기반성과 사과보다는 어설픈 핑계와 변명으로 시간을 끌다가 사태를 악화시켰다. 급기야 문학권력의 카르텔 구조와 출판 상업주의 논란까지 불거졌지만 해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김영사 내부의 경영권 다툼도 만만치 않다. 국내에서 가장 모범적인 성장 코스를 밟아온 출판사가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갈등 속에 추악한 막장 드라마의 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은주 전 사장은 30대 초반 김영사 대표이사로 발탁된 후 수많은 ‘대박 신화’를 써온 국내 출판계의 전설이다. 하지만 오너 김강유 회장과의 진흙탕 싸움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위상이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쳤다. 박 전 사장은 김영사에 재직하던 1984년부터 2003년까지 20년간 김 회장이 주도한 법당에서 숙식을 하며 월급, 보너스, 주식 배당금 등 28억원을 바쳤다고 폭로했다. 지난해 5월 박 전 사장이 김영사를 퇴직할 때 불거졌던 구구한 억측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파문이 국내 문학계의 고질적인 표절 관행에 메스를 들이댔다면 김영사 파문은 전근대적인 경영 방식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독자들의 신뢰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신 작가의 대표작 <엄마를 부탁해>를 200만부나 사주고 김영사가 만든 수많은 책들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줬던 만큼 독자들이 느낄 배신감은 상상 이상이다.

오너와 전문 출판인 관계 도마 올라

이번 김영사 파문은 국내 출판계에 적잖은 숙제를 안겼다. 박은주 전 사장과 김강유 회장은 서로를 “수백억 원대 횡령의 장본인”이라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제지간으로 만났다가 돈 때문에 원수가 된 꼴이다. 김영사 내부의 더러운 경영권 분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출판계 역시 후계 구도를 둘러싸고 피도 눈물도 없는 싸움을 벌여온 재벌가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출판사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국내 출판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업계도 마찬가지겠지만 대다수 출판사의 전문경영인은 파리 목숨과 다를 바 없다”며 “사회적 명성과 경제적 성공을 얻으며 출판사를 발전시켜온 전문경영인이 오너와의 사소한 트러블로 하루아침에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실제 출판계 안팎에는 오랜 기간 성공 신화를 써온 스타 출판인들이 하루아침에 토사구팽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내 출판계를 좌지우지하는 대형 출판사들이 친정 체제를 강화하거나 2세 경영 체제에 나서면서 전문경영인의 파워는 예전보다 약해졌다. 김영사 사태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박은주 전 사장이 김영사를 떠나고 매출이 급전직하했다. 이대로 가면 김영사가 몰락할 것”이라며 “출판은 열정과 비전 등 사람의 파워가 크다. 오너십으로는 예전에도 안 됐고 앞으로는 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판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 전 사장은 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통했다. 그녀의 손을 거친 수많은 책이 한국 사회를 뒤흔든 베스트셀러가 됐다. 박은주 체제의 김영사는 ‘황금시대’를 열어갔다. 뛰어난 기획력과 마케팅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내놓았다. 국내 최초의 밀리언셀러였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등은 책이 나온 지 20여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할 정도다. 그 밖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먼 나라 이웃나라> <정의란 무엇인가> <안철수의 생각> 등 김영사가 만들어낸 베스트셀러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연 매출 수억 원에 불과했던 김영사가 500억원 규모의 국내 최대 단행본 출판사로 성장한 것은 ‘박은주의 파워’ 덕이라고 자타가 인정한다. 또 우여곡절 끝에 도서정가제를 정착시킨 데도 박 전 사장의 공이 크다. 이 때문에 박 전 사장의 몰락을 바라보는 출판계에서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이번 사태에 따른 출판계의 충격은 지난해 5월 박은주 전 사장이 김영사 대표직에서 돌연 물러났을 때보다 더 커 보인다.

김영사 시절 박은주 전 사장에게 출판을 배웠다는 한 편집자는 “박은주 사장이 없는 김영사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며 “선배 편집자로 늘 존경해왔던 박 사장의 폭로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김영사 파문은 소설보다 더 기막힌 리얼스토리”라며 “김영사는 기획력과 마케팅 역량이 뛰어났던 단행본 출판사인 만큼 이번 사태로 업계에 지각변동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덧붙여 “장기적으로 김영사의 몰락은 출판 시장 전체로 보면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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