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PD의 방송 수첩] 웹툰에서 성공 열쇠 찾는 드라마쟁이들의 고민
  • 박진석│KBS PD ()
  • 승인 2015.07.2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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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같은 대박 작품 만들어야 하는데…"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거 만들면 되지.’
드라마 PD들의 술자리에서 서로에게 한 번씩 던지는 농반 진반의 이야기다. ‘이번엔 이런 이야기를 해보자’ 하고 머리를 맞대고 골머리를 썩여도,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그런 멋진 이야기가 뚝딱 나올 리 만무하다. 그러다 보면 외부에서 그 열쇠를 찾기도 한다. 널리 읽힌 소설, 해외 인기 드라마, 만화 등이 그것이다. 요즈음 제일 ‘핫’한 열쇠는 웹툰이다.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특히 <미생> 성공 이후로는 ‘웹툰 드라마 전성시대’가 열린 느낌이다. <닥터프로스트> <오렌지 마말레이드> <밤을 걷는 선비> <치즈인더트랩> 등등. 참신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웹툰이 가능성을 인정받고 TV 드라마로 방영됐거나, 혹은 편성 준비 중이다. 웹툰과 만화의 경계가 불분명한 만큼, 출판만화까지 합치면 그 외연은 더 넓다.

 

웹툰. 일단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검증된 콘텐츠다. 아직 구체적인 뼈대가 잡히지 않은 통상의 오리지널 기획안에 비하면 자체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잘 만든 리메이크 드라마의 관건은, 결국 원작의 가장 매력적인 고갱이는 가져가면서 리메이크하는 창작자 고유의 재해석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가 이뤄져야 원작의 아우라에 기대지 않는 생명력을 지닌 결과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알고도 빠지기 쉬운 리메이크의 함정

보통 리메이크 드라마가 빠지는 함정이 여기에 있다. 알면서도 빠지는 함정이니 더 미칠 노릇이다. 재창조에 지나치게 방점이 찍힐 경우 교집합이 희미한 채로 엉뚱한 물건이 나오는 경우가 많고, 원작에 너무 치우치면 매체 간의 차이점이라는 특수성을 살리지 못한 안일한 복제에 그치기 쉽다. 어느 쪽이건 시청자의 외면을 받는 것은 자명하다.

최근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웹툰 원작 드라마 중 원작을 흥미롭게 봤기에 흥미를 느낀 드라마가 2편 있다. 하나는 이제 막 방영을 시작한 <밤을 걷는 선비>이고, 다른 하나는 JTBC에서 방영될 예정인 <송곳>이다. 원작이 워낙 유명한 만화들이어서 일찍이 드라마화가 결정됐을 때부터 많은 사람이 주목했던 작품들이기도 하다.

 

<밤을 걷는 선비>의 경우, 원작의 팬이라는 입장에서만 본다면 다소 아쉽다. 물론 영미권에서 너무 많이 만들어서 클리셰가 된 느낌이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 신선한 뱀파이어물 장르를 사극에 들여놓은 점, 뱀파이어의 시간을 뛰어넘는 처연함과 조응을 이루는 책쾌(조선시대 책 거간꾼)와 책의 세계, 이러한 작가적 상상력들을 사도세자 사후의 조선의 실제 역사에 끼워넣은 팩션으로서의 성질 등 매력이 많은 아이템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제 막 시작한 드라마이니, 드라마 자체의 재미와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다만, 리메이크라는 측면에서 보면 ‘재창조’의 길을 너무 많이 간 듯해, 원작의 매력과는 다른 무기로 승부를 보려 하는 걸로 보인다.

<송곳>의 경우, 많은 호사가가 JTBC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종편 방송사가 하필 이 원작을 드라마로 편성했다는 아이러니를 이야기하는데, 다소 낡은 느낌이다. 이미 비슷한 논리로 손석희 사장이 취임한 후의 JTBC의 저널리즘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았나. 드라마 자체로만 봤을 때, 웹툰 <송곳>과 이를 택한 제작진의 만남이 더 흥미롭다. 많은 사람이 <미생>과 더불어 손에 꼽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웹툰계의 수작이다. 아직 못 본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웹툰 <송곳>은 대형마트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과 파업을 향해 가는 길을 다룬다. 이런 소재에서 자칫 빠지기 쉬운 우가 도식적인 진영 논리나 다소 오글거리는 선동성일 텐데, 만약 그랬다면 ‘수작’이라는 명성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송곳>을 선택한 영리한 기획자들

그런데 <송곳>을 제작하기로 한 김석윤 PD는 이남규-이수진 작가와 함께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부터 <올드미스 다이어리 극장판> <조선명탐정> 시리즈를 만들어낸 제작진이다. 김석윤-이남규-이수진 3인방의 전작들은 트렌드를 읽고 실패하지 않게 만들어내는 매끈한 기획물에 가깝다. 작가적 마인드보다는 어떤 코드를 대중이 더 사랑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는 영리한 기획자라는 인상이 더 강하다. 자본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핫한 트렌드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송곳>이라는 이야기의 힘 자체를 믿고 있기 때문인 건지 그 속내가 사뭇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리메이크 드라마가 원작을 사랑하는 팬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경우는 통상 ‘현재 우리 시청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서인가’라는 질문 때문인 때가 많다. 내부의 사정을 밖에서 어찌 다 짐작하겠는가마는, <밤을 걷는 선비>가 원작과는 너무도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도, 그런 장고 끝에 나온 결과물이 아니겠는가. 철저한 결과주의로 움직이는 드라마 시장에서, 조직적 뚝심 없이는 ‘성공을 향한 전인미답의 도전’보다는 ‘실패하지 않은 트렌드를 따르는 신중함’이 더 많이 발현되기 마련이다.

궁금한 점은 이것이다. 드라마쟁이들끼리 머리 맞대봐야 새로운 이야기가 안 나와서 웹툰이라는 신선한 재료를 가져온 건데, 그 날 선 매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봐 둥글둥글하게 만들 것이면 왜 가져온 건가. 모쪼록 방영 예정인 <송곳>에서는 원작의 날 선 매력과 제작진의 트렌디한 기획력이 시너지를 일으켜 제2의 <미생>이라는,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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