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그리스에 빌려준 돈 못 받을 것”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5.07.2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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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싱크탱크 ‘폴리시 네트워크’의 르노 티예 부연구소장 현지 인터뷰

그리스 3차 구제금융안 합의 소식이 전해진 7월13일, 트위터에서 ‘이것은 쿠데타’라는 해시태그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독일이 그리스 국민의 반대에도 오히려 전보다 더 강력한 긴축안을 이끌어내 경제 주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이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역시 7월12일자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유럽의 요구는 미친 짓”이라며 ‘이것은 쿠데타’라는 해시태그가 “정확히 옳다”고 평했다.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 채권단이 긴축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리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정부를 흔들어놓는다는 비판이 점점 확산되는 분위기다.

2010년 시작된 그리스 부채 위기는 지난 한 달간 극적인 고비를 넘겼다. 구제금융 조건 완화를 두고 EU와 벌인 협상의 결렬, 은행 영업 중단 조치, IMF에 대한 채무 불이행, 국민투표 실시와 두 차례의 재협상이 불과 2주 사이에 벌어졌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유로존 긴급 정상회의 직전인 지난 7월12일 오전이었다. 독일 측에서 그리스가 긴축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5년간 유로존에서 제외시키는 이른바 ‘한시적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안을 마련했다는 정보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날 저녁 시작된 회의는 장장 16시간 만인 13일 오전에야 끝났다.

7월12일 EU 정상회의에서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융커 EU 집행위원장,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왼쪽부터)와 대화하고 있다. ⓒ AP 연합

시사저널은 런던에 소재한 EU의 정치 싱크탱크 ‘폴리시 네트워크(Policy Network)’의 르노 티예 부연구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2주간 일어난 일들을 정리해봤다. 천문학적 규모의 부채와 26개 EU 회원국의 정치적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그리스 문제를 채권국 독일과 채무국 그리스로 간단하게 도식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준 독일은 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으며, ‘그리스 대 독일’의 대결 구도가 낳은 EU의 균열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집중 진단했다.

 

이번 협상안에 대한 각국의 반응이 어떻게 다른가.

영국·프랑스·독일 언론의 반응을 모두 살펴보고 있다. 서로 관점이 달라 균형 잡힌 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과 영국 언론의 보도 관점 차이가 눈에 띈다. 영국 언론은 “EU가 이 협상을 관철시킨 방식은 그리스에 대한 독재나 다름없다”라며 몹시 분노하고 있다. 이런 반응은 독일 언론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슈피겔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에 대해 비판적인 편이다.

프랑스는 어떤가.

프랑스 언론은 독일에 대한 비판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독일과 함께 EU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긴축 기조에 대한 찬성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라 리베라시옹’ 등 좌파 진보 언론은 비판 강도를 높였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그렉시트를 끝까지 반대했지만,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으려면 조건(긴축 정책 시행)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그 조건들이 쇼이블레가 내세우는 것처럼 강경하진 않았다.

독일이 내건 조건들이 가혹하다고 보는가.

그런 조건들을 내건 배경은 이해한다. 그리스가 그동안 약속한 개혁 정책이 다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6개월간 그리스의 경제 상황이 나빠졌다. 부채가 증가했다. 독일 입장에서는 과한 조건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은 좀 더 현실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채무 조정 없는 상환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혁을 다 시행해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독일 정치인들은 이런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EU는 일단 그렉시트를 막았다. 그리스에도 곧 돈이 들어갈 것이다. 이것으로 유로존 위기가 끝난 것일까.

(단호하게) 끝나지 않았다. 이번 합의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 의회뿐 아니라, 핀란드·독일·네덜란드 등 그리스에 대해 회의적인 나라에서도 이 합의안이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리스도 개혁안들을 모두 실행해야 한다. 아직 불확실성이 크다. 그리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적어도 10~15년이 걸릴 것이다. 앞으로는 그리스 구제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전이나 부채 상환 전에 그리스와 다른 유로존 국가가 지금보다 더 자주 만나 개혁 진행 상황을 검토해야 한다. 그동안 그리스에 제공한 돈의 사용처에 대한 관리가 엄격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스 치프라스 총리와 바루파키스 전 재무장관이 저지른 실수가 있다면 무엇인가.

국민투표가 유럽 전체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것이 착오였다. 자신들에게 EU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의 EU에서는 불가능한 일(부채 탕감)에 대해 일반론적인 얘기들을 많이 했다. 동시에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부당하며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행동은 다른 유로존 국가의 관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치프라스와 바루파키스는 시행 중인 개혁을 중단시키고 재협상에 나섰다. 이들은 선의를 보이지 않았고, 이것이 결국 악영향을 미쳤다.

특히 바루파키스는 공격적이고 도발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당신의 생각은.

유럽 정치에서는 특히 양식(스타일)이 중요하다. 예컨대 유로그룹 회의는 공동의 결정을 존중하라는 불문율에 의해 움직인다. 바루파키스는 이를 어겼다. 치프라스는 국민투표에서 협상안을 거부하라고 나서 유로존 장관들이 등을 돌리게 했다. 만약 ‘투표 결과에 상관없이 국민들의 의견을 따르겠다’고만 했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리스의 태도 불량을 이유로 벌을 주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선의를 보이는 것이다. 때로는 상대방이 옳다고 하고 한 수 접는 것도 필요하다. “개혁 정책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러한 안에는 반대한다”는 식으로.

독일은 충분히 선의를 보였나.

좋은 질문이다.(웃음) 독일이 협상 막바지에 “그렉시트가 가능하다”는 초강수를 두긴 했다. 그러나 결국은 그렉시트를 막았다. 독일이 그리스에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독일 입장에서도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영국 현지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는 르노 티예 부연구소장. ⓒ 폴리시 네트워크 제공

그리스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나.

확신한다. 모두가 알고 있다. 단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채권국 입장에서는 채무국을 상대로 권력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 ‘돈은 빌려주겠지만 조건이 있다. 비록 돈을 갚지 못한다 할지라도 개혁은 해야 한다. 공짜로 주는 돈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EU에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그리스 시스템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메르켈은 이런 점에서 특히 관대했다.

메르켈이 관대했다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독일 국민의 80%가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에 반대한다. 하나의 민주주의가 다른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상황이다.

국민 반대를 무릅쓰고 돌려받지 못할 차관을 제공하는 것은 국내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이제 남은 것은 독일이 힘이 세다는 이유로 엄혹한 조건들을 관철시키는 게 온당한가 하는 (국제 정치적) 문제다. 그러나 만약 독일 상황이 안 좋아진다면 독일도 (힘의 논리를 내세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EU의 결정에 대해 ‘쿠데타’라고 말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독일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는 좌파 세력이다. 이들이 옳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독일의 입장에 공감할 필요도 있다(르노 티예 부소장 또한 EU에서 좌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유로존에 독일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올바른 경제정책이 무엇이냐를 두고 열띤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독일이 지지하는 방안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 이를 증오하는 폴 크루그먼(미국 프린스턴 대학 교수로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과 같은 이들도 있다. 이들이 옳을 때도 있다. 나도 독일의 안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독일에 대한 비판이 단지 이론적 견해 차이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2013년 중순까지 그리스가 받은 2070억 유로 중 77%가 금융권으로 흘러들어갔으며, 이 중 다수가 독일과 프랑스 기업에 유입됐다는 분석이 있다.

치프라스와 바루파키스의 주장은 현실을 간단하게 축소시킨 것이다. 만약 독일과 프랑스 은행이 1차 구제금융 당시 헤어컷(부채 탕감)을 받아들였다면 결국 독일과 프랑스 정부가 이 손해를 보전해주어야 했을 것이다. 메르켈과 올랑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그리스에 제시된 조건은 그리스가 변하기 위해 중요하다.

그리스가 무엇을 달리해야 할까.

개혁 지속 의지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당신이 말했듯 지금 상황은 ‘민주주의 대 민주주의’의 대결이다. 그리스인은 총선과 국민투표를 통해 개혁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시리자 지지자들이 찬성한 개혁안도 있다. 정부 구조를 효율화하고 부유세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치프라스는 당선 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를 실현시켰더라면 채권단에 다른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은 무엇을 달리해야 할까.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협상 내내 매우 강경하고 비판적이었다. 어조를 달리했어야 한다. 또한 지난 몇 달간 침묵하면서 상황을 관망하기만 한 메르켈도 의사를 분명히 했어야 한다. 치프라스와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번 협상 이후 유럽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당장 예상하기 어렵다. 협상안 통과와 이행 여부부터 불투명하다. 그리스에서는 정권 교체 가능성이 있다. 시리자 중 일부는 이미 치프라스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올랑드와 메르켈 등 각국 정상들이 유럽의 긍정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않는다면 반(反)EU 정서가 퍼질 위험이 있다. EU가 긍정적이라는 점을 설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인 제안이 있나.

그리스뿐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도 청년 실업률이 매우 높다. 이들에 대한 유럽 차원의 지원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EU가 이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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