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태로 계속 간다면 분당 상황 올 수도...”
  • 엄민우 기자·정리: 유지민 인턴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7.21 00: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인터뷰

“선거에서 패배하고, 무시당하고, 소수당으로서 참담한 심정을 더 신중하게, 더 진중하게 풀어나가겠다. ” 지난 5월7일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새 원내 사령탑으로 선출된 이종걸 원내대표는 비장한 당선 소감을 밝혔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 줄곧 강경함을 견지해온 그가 원내 사령탑에 오르자 향후 정국을 어떻게 풀어갈지 관심이 모아졌다. 이후 두 달 동안 ‘메르스 정국’과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논란’ 사태에 이어 당내 혁신안과 관련한 계파 갈등까지 숨 쉴 틈 없는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최재성 사무총장 임명을 둘러싸고 ‘친노’ 수장인 문재인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다. 친노와 비노 갈등이 그칠 날이 없는 새정치연합에서 그는 늘 쉽지 않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야당 원내대표로서 문 대표와 손잡고 여당에 맞서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친노의 독주를 견제해야 할 입장이다. 안팎에서 조정하고 싸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이종걸 원내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한 7월15일엔 ‘국정원 해킹 사태’라는 새로운 이슈가 국회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시작 전부터 국정원 해킹 의혹에 대해 “국정원 사태, 이건 뭐…”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국정원 해킹’ 파문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당 차원의 대책이 있나.

국정원이 구입했다는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한 다른 나라들을 보면 아프리카의 수단과 이집트 등 거의 개인정보가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곳이 많다. 신용 있는 국가들은 구매할 경우의 부작용을 우려해 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사들였다. 그 시점이 국정원 댓글 사건, 국내 정치 사찰 등 국정원이 특정한 정치적 의견을 형성하기 위해 과욕을 부린 시기와 일치한다. 난 당시의 당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의 스마트폰에 스파이 앱이 깔려 있는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 강한 심증을 갖고 있다. 한때 국정원은 이동기지국 개념의 R2 장비를 활용해 주요 인사들을 도청해 국회 파행을 만든 적이 있다. 그때의 도청이 ‘M16 소총’ 정도의 위력이라면, ‘원자폭탄’급이다. 휴대전화가 내 손 안에 있지만 사실상 제3자의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런 파괴력을 가진 것이 2012년부터 구입돼 지금까지 계속 관리비를 내며 국정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원내 사령탑을 맡은 지 두 달 정도 지났는데 내세울 만한 성과가 있는가.

전임 대표에게서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가 무산되면서 그와 함께 처리되려던 민생 법안 등의 문이 닫힌 상황을 물려받았다. 여당 원내대표와 합의한 것을 여당 측이 먼저 깬 상황이었는데, 정상적인 협상일 경우 이럴 땐 약속을 깬 쪽이 불리하고 당한 쪽이 유리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거꾸로다. 그동안 새누리당이 해온 것을 보면, 그때마다 염치없이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재협상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나마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염치가 있던 사람이었다. 어떤 사유에서든 스스로 서명한 것을 깬 데 대한 부담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유 전 원내대표와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새정치연합이) 우위에 선 협상을 할 수 있었다.

협상 파트너였던 유 전 원내대표를 ‘정상적 판단을 하는 사람’으로 본다는 뜻인가.

그렇다. 유 전 원내대표가 우리 입장을 무조건 배척하지 않고 귀담아들어줬던 것은 빚을 진 당사자로서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청와대의 미션(mission)을 들고 와서 보험회사 외판원과 같은 표현을 하며 공적 연금 체계를 무너뜨리는 발언을 했다. 보건복지부장관으로서 부적절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유 전 원내대표도 이에 대해 공감한 것 같다. 또 하나 보람으로 삼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 때문에 삼권분립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온 국민이 TV 중계로 똑똑히 보게 했다는 점이다. 여당의 다수 국회의원이 권한도 자존심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대통령 휘하에 들어갔다. 지금 여당은 국민이 뽑아준 국회가 아니고, 과거 대통령이 구성했던 ‘유정회’와 비슷하게 돼버리는 역사적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 상황을, 내가 주역이 돼 국민 모두가 알게 했다는 점에 보람을 느낀다.

당 내에도 복잡한 문제가 많았다. 특히 “혁신위가 친노 패권주의 ‘해소위’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더 보완되거나 해소되어야 하는가.

국가적 재앙이 될 수도 있었던 메르스 사태 때문에 친노니 비노니 하기가 어려웠지만, 이제 그런 상황이 어느 정도 종결된 시점이다. 지금의 혁신위가 구성된 배경은 지난 4· 29 재보선 참패다. 원인이 뭐였나? 계파 간 분열이다. 참패를 다시 승리의 가능성으로 바꾸기 위해선 분열을 통합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런 취지로 혁신위가 구성됐다. 그 과정에서 친노 계파가 주도했는데, 분열적인 상황으로 가고 있고 이것이 바로 패권주의 때문이다. 일부는 내치고 다른 일부는 대우하는 과정에서 불공정이 있었던 것이다. 분열이 극복되려면 한 번은 서로 진통을 겪고 이를 통해 성찰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 절차가 생략되면 침소봉대일 뿐이다. 의원총회나 이럴 때 (계파 간) 부딪치는 게 싸움으로 보일지라도, 그런 과정을 거쳐 다음으로 가는 결단이 나오면 긍정적인 것이다. 혁신위원들이 제3자의 위치에서 가치 중립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고 결정을 존중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문제가 뭔지 확실히 알고 했으면 좋겠다. 정치는 앞으로 가야지, 뒷걸음질치면 죽는다.

6월26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오른쪽)와 이종걸 원내대표. © 뉴시스

지금 혁신위가 추진 중인 ‘선출직공직자평가위’가 현역 의원, 특히 호남 지역의 비노 의원들에 대한 물갈이용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혁신위의 개혁 노력에도 계속 이런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4년 전 총선 때 공천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데 그것을 주도한 이들이 또 주체가 돼버렸다. 4년 전에도 우리가 거의 이긴다고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의 비대위원장이 되면서 새누리당이 과반 이상을 획득하는, 우리의 참패가 있었다. 그 참패에 대한 원인 분석이 없었다. 내가 몇 번이고 원인 분석을 하자고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평가위원회라고 해서 문희상 비대위원장 체제가 들어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평가 자료도 정식 자료로 채택이 안 될 정도로 총선 참패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재보선 평가도 못하게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당시 패배한 지도부가 지금도 지도부가 돼 그걸 반복하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4년 전 총선을 치렀던 지도부와 지금의 지도부는 유사하지 않나. 지난번을 생각하며 걱정하는 것이다. 난 이런 걱정들이 단순히 심리적인 불신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향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객관적인 개선 방향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지금 가동되는 ‘김상곤 혁신위’의 혁신안이 잘 수용된다면 다행이지만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분당 이야기까지 다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최악의 경우 어떤 상황이 되면 분당까지 갈 수 있다고 보는가.

내년 총선 때까지 지금의 상황이 이어지면 곤란하다. 지금 호남에서는 탈당한다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고, 이들이 천정배 의원과 연계할 가능성도 있다. 당 내에선 친노니 비노니 하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고, 생산적 이야기가 아닌 불신이 팽배한 상태다. 일치와 통합으로 갈 수 있는 조치가 나와서 힘을 합쳐 목표를 이뤄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특단의 대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탈당하거나 분당하는 것은 신중치 못한 것이라고 본다. 당의 미래를 위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이 계속 이 상태로 개선되지 않고 간다면, 걱정할 만한 그 상황이 올 것이다.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예산 22조원을 투입하려는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메르스 사태와 관련한 추경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추경은 예외적이고 부득이한 경우에 하는 것인데, 우리는 지금 22조원씩 쏟아부을 상황이 아니다. 메르스 사태로 인해 여러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은 예외적인 것이다. 그래서 추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 때 우리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의 정부임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었다. 중동에서 낙타를 데려오다시피한 이 정부에 사후 복구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병원에 있는 사람들만 죽을 고생을 했다. 나도 병원에 가봤지만, 가족들이 불안해할까 봐 집에 안 간다고 하더라. 자기는 일하다 죽을지언정 가족은 살리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병원에 간 사람들만 폭탄 맞다시피 했다. 아파서 들어간 사람, 치료했던 의사와 간호사, 이송요원 등이 무슨 죄가 있나. 낙타를 데려온 정부가 책임져야 하고 이 때문에 추경으로 2차적 배상을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 일부 책임이 있는 삼성병원의 오너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배상을 안 받겠다고 했으니 고마운 일이지만 혹시라도 그 핑계로 고통 분담 차원이라며 병원에서 고생한 사람들의 월급을 깎는다든지 하면 당 차원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