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일 자꾸 떠올라 잠자리 ‘뒤척뒤척’
  • 김윤태│고려대 교수·사회학 ()
  • 승인 2015.07.1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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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중독’ 수면 부족으로 삶의 질 저하…노동 시간 줄여야

전기가 인간에 도움을 주었을까. 잠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미국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하기 전에 수면 시간은 9시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기 사용으로 밤 활동이 증가하면서 8시간으로 줄었다. 에디슨은 “수면은 시간을 잡아먹는 벌레”라고 말하며 “4시간만 자도 충분하다”고 공언했다.

최근 사람들의 수면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수면 시간은 감소하고 있다. 반면에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잠자기 직전 활동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대신 텔레비전 시청으로 변한 지 오래인데, 그것을 이제 스마트폰이 대체하고 있다. 인터넷이 침대까지 침입하고 있다.

늦은 시각에 퇴근한 한 직장인이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수면 부족은 사회적 현상

수면 부족은 새로운 사회 현상이 되고 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수면 부족을 ‘공중보건 전염병(public health epidemic)’이라고 분류했다. 수면 부족 현상이 전염병처럼 사회에 확산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수면의학회는 성인이 하룻밤에 7시간 이상 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수면 부족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식욕을 증진하는 호르몬 수치가 상승해 과식을 하게 되고 비만과 심장 질환과 뇌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수면 장애가 있는 사람이 심장마비와 뇌졸중을 일으킬 확률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도 있다. 하루 ‘4시간 수면’에 ‘절대 잠들지 않는 총리’로 유명한 마가렛 대처 여사는 뇌졸중과 치매로 고통을 겪었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건강보험회사 바이탈리티헬스의 의뢰를 받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구는 수면 부족과 생산성 저하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분석했다. 영국의 노동자 2만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수면 시간으로 7~8시간을 사용한 노동자보다 6시간 이하만 잔 노동자의 생산성이 매우 낮았다. 물론 개인마다 수면 시간은 다르지만, 수면 부족이 효율적인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수면 부족으로 회사에서 해고되지는 않겠지만, 최상의 능력은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수면 부족 현상은 미국과 영국의 문제뿐 아니라 국제적 현상이다.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수면 시간은 가장 짧다. 7시간 14분에 불과하다. 한국은 7시간 50분으로 일본 다음으로 적다. 스페인은 전통적인 낮잠(시에스타) 문화 때문에 저녁의 부족한 잠을 보충하지만, 경제 위기 이후 없애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 반면에 세계에서 가장 수면 시간이 긴 나라는 중국이다. 평균 9시간이다. 그다음은 프랑스, 인도, 뉴질랜드 순이다.

2013년 미국 국립수면재단(National Sleep Foundation)은 세계 최초로 수면 시간에 관한 국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본과 미국이 각각 6시간 21분과 6시간 40분으로 가장 적었다. 일본인 66%와 미국인 56%가 수면 시간이 7시간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영국인 39%, 독일인 46%, 캐나다인 30%만 수면 시간이 7시간 미만이라고 답변했다. 이러한 국제 비교는 수면 시간이 사회적·문화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수면 부족 현상의 원인으로 일 중심 문화, 장시간 근무, 스트레스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장시간 노동 수면에 영향

한국에서는 무엇보다도 장시간 노동이 수면 시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노동 시간은 멕시코에 이어 세계 2위다. OECD 회원국 평균보다 325시간(8.1주 이상) 더 일한다. OECD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연평균 노동 시간은 2090시간이다. 2000시간이 넘는 나라는 멕시코·칠레·그리스·한국 등 4개국이다. 한국의 노동 시간은 주 40시간제 도입, 시간제 노동 확대로 지난 10년 동안 500시간 줄었지만, 여전히 OECD 회원국들 중 연간 노동 시간이 가장 긴 국가 중 하나다.

장시간 노동은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장시간 일을 하는 노동자는 건강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고, 산업재해를 겪을 위험도 크다. 기업은 유능한 직원들과 임원들에게 더 많은 일을 요구한다. 결과적으로 가족과 지낼 시간이 감소하고 대화가 줄어들고 관계의 단절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과 가정의 균형’이 깨지면서 야근과 특근을 피하지 않으며 돈을 더 벌기 위한 ‘일 중독’ 현상이 확산된다. 기업의 회식과 접대문화도 밤늦은 유흥문화를 조장한다. 이처럼 장시간 노동은 개인의 건강과 가족의 유대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집중력 약화를 유발해 기업의 경쟁력에 부정적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한국의 노동 생산성은 선진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그러면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장시간 노동은 왜 유지되는 것일까. 법정 근로 시간은 일주일 40시간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현행법상 연장근로 12시간과 휴일근로까지 일주일에 최대 68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다. 근로 시간 특례 업종의 경우 연장근로 12시간을 초과할 수 있어, 더 늘어날 수 있다. 주 5일 근무제도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통계청에 따르면, 주 5일제를 시행하고 있는 기업의 노동자는 65.8%에 불과하다. 경제활동인구의 40%에 육박하는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밤늦은 11시가 되어야 문을 닫는 가게와 식당이 많다. 심지어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할인점이 부지기수다. 피곤해도 일찍 잘 수 없는 고단한 삶이 너무 많다.

박근혜 정부는 2012년 대선에서 노동 시간의 단축을 공약했다. 그러나 말과 달리 아직 실천은 없다. 무엇보다 주 5일제의 확대가 중요하다. 12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무가 가능한 업종·업체도 제한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해 신규 고용을 촉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노동조합도 연장근로와 특근을 줄이는 대신, 임금 인상과 정규직 확대를 기업에 요구해야 한다. 해외에 간 한국 여행객은 저녁이 되기 전에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고 불평하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친구와 가족을 위해 ‘저녁이 있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원한다면 일찍 잠들 수 있다. 어느 삶이 더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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