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과학’이야, 정치는 ‘처음처럼’이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5.07.1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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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조동원 vs 새정치 손혜원, 유권자 마음 잡기 대결

 

지난 6월 중순께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들 사이에서 기대감 섞인 환호가 터져 나왔다. 광고 시장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유명 브랜드 전문가 손혜원씨가 당 홍보위원장직을 수락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손혜원 신임 홍보위원장이 처음으로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한 7월6일, 문재인 대표는 그녀를 직접 소개하며 “다들 아시다시피 기업·상품 디자인, 네이밍, 로고 면에서 국내 최고로 평가받는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우리 당의 전면적 이미지 쇄신의 전권을 갖고 출발해줄 것”이라며 향후 행보에 힘을 실어주었다. 손 위원장은 소주 브랜드의 양대 산맥 격인 ‘참이슬’과 ‘처음처럼’을 비롯해 화장품 ‘식물나라’, 세탁기 ‘트롬’ 등 수많은 히트 상품을 만든 네이밍 전문가다.

최근 정치권에서 광고·홍보 전문가의 영역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주로 현역 의원들이 담당해왔던 당 홍보위원장직을 외부 전문가인 조동원씨에게 전격 위탁한 바 있다. 당시 조동원 위원장은 당명과 당색까지 바꾸는 파격적인 이미지 전략을 구사해 총선 승리에 기여했다. 같은 해 치러진 18대 대선에서도 2002 월드컵 포스터를 제작했던 변추석 교수, ‘초코파이 정(情)’ 등의 광고 문구로 유명한 최창희 더 일레븐스 대표 등 전문가들이 각각 박근혜 캠프 미디어홍보본부장, 문재인 캠프 홍보고문으로 영입돼 대선 홍보전을 진두지휘했다.

7월6일 새정치민주연합 손혜원 신임 홍보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 광고’에서 ‘정치 마케팅’ 시대로

광고·홍보 전문가들이 한국의 정치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0년대 무렵부터로 알려져 있다. 1980년 한 연합 광고사가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인쇄 광고 및 포스터 제작에 참여하면서다. 그때만 해도 주요 광고기획사가 후보 홍보물 제작 등 정치 광고를 맡아 진행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랬던 것이 점차 후보의 이미지 만들기, 슬로건 제작, 나아가 유권자와의 소통 전략 조언 등을 포괄하는 총체적 홍보 활동에 광고·홍보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유명 광고인들이 정치권의 주요 선거 캠프를 위해 활발히 조언·자문에 나서는 식이었다. 지난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유명 카피라이터 정철씨가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정치권의 ‘이미지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이제는 숫제 당 홍보위원장직을 맡아 정당 이미지 쇄신 및 홍보전략 운용의 전권을 부여받는 등 외부 광고·홍보 전문가의 활동 영역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는 추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정치 캠페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면 답이 보인다. 정치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은 정치 캠페인이 ‘후보자 지향’ ‘정치 광고 지향’ 등의 단계를 거쳐 ‘정치 마케팅 지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 ‘후보자 지향’ 단계에서는 후보자 개인을 일방적으로 어필하는 데 초점을 뒀다. 후보자의 단순 노출 빈도·길이를 늘려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 것이다. ‘정치 광고 지향’ 단계로 넘어오면서는 유권자와 후보자의 관계 쪽으로 좀 더 무게중심이 이동한다. 메시지 개발, 매체별 광고 효과 분석 등을 통해 좀 더 유권자에게 호소력을 갖는 정치 광고의 기획·제작이 선거 홍보의 관건으로 떠올랐다.

선거운동 환경이 변화하고 유권자의 투표 동기가 더욱 개인화하면서 ‘정치 마케팅’ 시대가 도래했다. ‘정치 마케팅 지향’ 단계에서는 유권자의 개별적 욕구 및 만족 쪽으로 선거 캠페인의 초점이 더욱 옮겨간다. 마치 일반 사기업에서 정밀하게 소비자를 분석해 마케팅을 하듯, 유권자의 세밀한 필요·선호 등을 파악해 맞춤형 캠페인에 나선다는 것이다.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만기 남서울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거대 담론 중심의 선거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과거와는 달리 유권자의 요구가 세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빅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개별 유권자의 성향을 면밀히 파악해 맞춤형으로 공략하는 ‘마이크로 타기팅’(Micro Targeting) 기법이 떠오르고 있다”며 “시대정신에 맞는 슬로건·캐치프레이즈 개발, 당 이미지 개선, 관련 정책 제안 및 주요 위기관리 등이 모두 대중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연결된다. 이를 전문적으로 담당해온 광고·홍보 전문가들이 정치권에서 각광을 받기에 충분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30여 년 동안 광고업계에서 활약했던 한 원로급 인사는 “광고 및 마케팅의 핵심은 소비자를 정확히 분석해내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목표 소비층의 심리를 공략할 수 있는 전략을 짜내야 한다. 과거 조동원씨의 경우 광고 전문가였고, 손혜원씨는 브랜드 전문가인 만큼 각자 강점이 있는 전문 영역의 차이는 있겠지만, 유권자 성향을 파악해 이들을 설득하는 홍보 전략을 수립한다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같다. 지금 정치권에 매우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동원 전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2012년 19대 총선 당시 파격적인 홍보 전략을 선보였다. ⓒ 연합뉴스

유권자 심리 꿰뚫는 맞춤형 공략이 ‘미래’

홍보위원장직을 외부 전문가로 수혈하는 것 자체가 당의 ‘쇄신’ 이미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성민 민정치컨설팅 대표는 “외부 전문가가 당에 들어와서 활동하는 것이 변화와 혁신의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새로운 얼굴을 기용하는 것이 유권자들에게는 ‘변화의 상징’일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문재인 대표는 “우리 당이 가야 할 길은 오로지 혁신”이라면서 “홍보위원장을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언급한 바 있다.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7월6일 새정치연합 최고위원 회의 발언에서 “제가 지금까지 했던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람을 움직이는 일로 사람을 움직여 지갑을 열고 물건을 사게 만드는 것을 도왔던 것”이라며 “이제는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다른 목표를 갖고 사람을 움직이는 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향후 구체적 전략 구상 등을 묻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손 위원장은 “아직은 새정치연합에 대해 아는 바가 부족하다. 적어도 두세 달 정도는 지나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일찍부터 가열되는 여야의 ‘홍보 전쟁’이 내년 총선을 둘러싼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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