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들이 약물 유혹에 빠져드는 이유
  • 김형자│과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7.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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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율 1푼 오르고 장타 늘어난다”

최근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최진행 선수가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 약물인 ‘스타노졸롤(stanozolol)’을 복용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운동선수의 약물 복용 사건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등장하는 이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약물 복용이 적발된 경우는 2002년 진갑용 선수를 시작으로 이번이 여섯 번째다.

최진행에 대한 도핑 적발로 프로야구에 다시 약물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대체 금지 약물이 뭐기에 운동선수들은 이 유혹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는 걸까. 또 왜 유독 야구선수들의 약물 복용이 많은 것일까.

야수는 파워업, 투수는 빠른 회복 유혹 느껴

2003년 미국 프로야구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투수 스티브 베클러가 훈련 도중 급사하는 일이 생겼다. 사망 원인은 에페드린 과다 복용이었고, 이후 약물에 대한 제재가 시작됐다. 그럼에도 약물 복용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선수가 많다. 그중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선수는 배리 본즈였다. 2007년 8월7일, 본즈는 행크 에런이 세운 755개의 통산 홈런 기록을 깨고 756번째 홈런을 때려내며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썼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세웠던 그의 화려한 기록은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깨끗한 홈런왕’이라던 행크 에런도 암페타민 복용자였고,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나 에릭 가니에 등 당시 메이저리그를 주름잡던 투수들도 약물과 관련해 매스컴에 회자됐다.

 

그 이전이라고 자유로울까. 1990년대 후반의 메이저리그는 ‘약물의 시대’였다. 약물로 몸을 키운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는 홈런 경쟁을 펼치며 리그 흥행을 이끌었고 구단주를 비롯해 코칭스태프와 기자들은 이런 부도덕한 일에 고개를 돌리고 싶어 했다.

지금까지 운동선수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약물은 ‘아나볼릭(단백 동화) 스테로이드’다. 스테로이드는 스테롤·담즙산·성호르몬 같은 지방 용해성 화합물의 총칭이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테스토스테론 같은 남성호르몬을 합성해 만든 약물로, 남성화를 촉진하는 효과를 이용해 근육을 폭발적으로 키울 수 있다. 사춘기 남자에게서 나타나는 근육 성장 같은 신체 변화도 이 호르몬에 의해 일어난다.

이 때문에 많은 운동선수와 보디빌더들은 단기간에 몸을 만들기 위해 테스토스테론 역할을 하는 아니볼릭 스테로이드를 복용한다. 이것은 근육을 늘리는 효과 외에도 에너지 대사 속도를 높여 단시간에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게 한다. 또 적혈구 숫자를 늘려 산소를 더 많이 흡수할 수 있게 해줘 결과적으로 운동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

스테로이드는 의학적으로 매우 유용한 약물이다. 스테로이드의 주된 역할은 염증 완화다. 의료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코티솔’은 염증을 가라앉히고, 신경 부종(붓는 현상)을 막는 데 탁월해 빠른 피로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또 알레르기 같은 우리 몸의 지나친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데도 유용하다. 이런 효과 때문에 오늘날 스테로이드는 환자를 치료하는 데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약물이다.

야구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던 가장 큰 이유도 근육을 키워 파워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상이나 피로에서 빨리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투수들이 그랬다. 선발투수의 경우 당장 던지는 경기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 선발 등판까지 손상된 어깨 근육을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 필요했다. 매일 대기하고 불펜에서 몸을 풀며 등판하는 불펜투수의 회복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 것도 없다.

염증 억제는 어깨나 팔꿈치에 발생하는 근육 파손을 방지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타자의 경우 염증을 억제하면 피로가 빨리 회복되고 더욱 많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빠르게 근육을 생성할 수 있다. 짧은 시간에 워크아웃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근육을 키우고 파워를 길러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유독 야구선수들이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이슈화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로감 줄고 순간 집중력 향상

야구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해 강한 체력과 집중력을 갖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하다. 또 선수 생명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약물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도 쉽지 않다. 홈런이나 안타 하나에 따라 주전이냐 후보냐가 결정될 수 있고 연봉에 영향을 미치니, 주전으로서 위태로움을 느낀다면 선수 생명을 연장할 수단으로 복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스포츠 잡지가 국가대표 육상선수를 대상으로 ‘이 약을 복용하면 확실히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대신 부작용으로 7년 후 사망한다. 당신은 복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80%의 선수가 복용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약물의 유혹이 강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스테로이드는 선수들의 기록이 엄청나게 변화할 만큼의 효과를 줄까. 다시 말해 ‘평범한 선수가 인크레더블 헐크로 변신’할 만큼 신기한 묘약일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약물의 힘을 빌릴 경우 피로감이 평소보다 줄고, 순간 집중력이 향상되는 건 사실이다. 스테로이드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씩 5주간 복용하면 웨이트트레이닝 1~2년에 맞먹는 체력 훈련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 조사에서는 타자의 경우 시즌을 치르고 나면 타율이 1푼 정도 높아지고 장타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물 효과는 성분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확실히 실력을 끌어올린다. 그러나 아무리 약물을 복용하더라도 인간의 신체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아마추어 선수가 약물을 복용한다고 해서 프로 선수가 될 만큼 엄청난 향상을 경험할 순 없다. 배리 본즈가 약물의 시대에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원래부터 탁월한 실력의 소유자였고 스테로이드를 ‘기적의 영약’으로 믿고 훈련을 게을리 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훈련을 병행해 그 효과를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간과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해도 스테로이드를 오랫동안 복용할 경우 신장과 간이 손상되고, 혈중 콜레스테롤이 늘어나 심근경색·동맥경화 등으로 갑자기 사망할 수 있다. 특히 과도한 스테로이드 복용은 우리 몸의 자연적인 성호르몬 생산을 중단시켜 중성화를 가져올 수 있다. 남성의 경우 테스토스테론 생산이 완전히 중단돼 남성 특징이 사라지고 고환 감소, 젖가슴 발달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여성에게는 무월경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수한 노력만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는 선수가 더 많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신기록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유는 그 숫자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오랜 땀방울 때문이 아닐까. 선수와 코치가 금단의 유혹을 떨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해 감동을 선사해주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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