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기억 장치’를 닦고 조여라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7.0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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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박서흥씨의 70대 노모는 치매 환자다. 2년 전 치매 전 단계를 진단받았고 1년 전 치매로 진행됐다. 박씨는 “전화를 하면 아들에게도 누구냐고 묻는가 하면 몇 시간 전에 통화한 내용을 잊기 일쑤였다. 일상생활이 어려웠지만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정상 생활을 하고 있다”며 “치매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누군가와 점심 약속을 했다고 하자. 몇 시인지 깜박하는 정도는 건망증이다. 메모나 힌트를 보면 금방 기억이 난다. 점심 약속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면 치매다. 인지 기능(기억·언어·시간·공간·판단력·충동억제 능력)이 떨어진 데다 일상생활 능력(모든 생활 행동)까지 상실한 상태다.

일상생활 능력에서 세수, 화장실 사용 등 기본적인 활동을 기본 기능이라고 하고, 이보다 약간 더 복잡한 활동을 복잡 기능이라고 하는데 요리, 은행 일 처리 등이다. 초기 치매는 복잡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면 밥을 지을 수는 있는데 김치를 담그면 맛이 예전과 달라진다. 김치 담그기는 밥 짓기보다 복잡한 요리 과정이어서 뇌를 많이 사용한다.

올해 초 경기도에 있는 한 노인복지관에서 주민들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운동을 즐기고 있다. ⓒ 연합뉴스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과정은 4단계로 구분된다. 정상→주관적 인지 장애→경도 인지 장애→치매 순이다. 주관적 인지 장애는 깜박 잊는 일이 잦아져 스스로 ‘혹시 치매?’라는 의심이 드는 단계다. 병원 진단을 받아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 즉 객관적 치매 검사로 확인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경도 인지 장애는 객관적 검사로 판정받은 치매 전 단계다.

치매 예방의 핵심은 전두엽 관리

인지 기능 장애는 얼마나 기능이 떨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기억 장애는 특정 단어가 아니라 일상의 기억을 잊는 정도다. 기억 장애를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중요한 일은 기억하지만 사소하고 구체적인 것을 깜빡하는데, 대부분 힌트를 주면 기억이 되살아나는 상태다. 횟수가 드물면 정상이고 눈에 띌 정도로 잦으면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2단계는 중요한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친구 장례식에 다녀오고도 그 친구가 요즘 보이지 않는다며 찾는다. 증세가 가볍지만 분명히 기억 장애가 시작된 상태다. 3단계는 돌아서면 잊는 시기다. 6시에 저녁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은 후 그 약속을 잊는다. 치매 환자의 공통적인 특징은 최근 일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아주 오래전 추억은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오랜 기억까지 잊는 상태가 4단계다. 1단계는 정상인 사람에게도 나타나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2~4단계가 치매 범주에 든다.

언어 장애는 물건이나 사람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증상이다. 또 표현력, 알아듣기, 말하기 능력이 떨어진 상태다.

가족이 치매 환자를 돌보기 어려운 이유는 기억력 저하보다 이상 행동 때문이다. 예컨대 평소 점잖던 사람이 가족이 보든 안 보든 성적인 동작을 한다. 보호자는 부끄러운 마음에 이 사실을 의사에게 꺼내놓지 않는다. 행동 장애는 약으로 조절할 수 있으므로 의사에게 과거와 달라진 행동을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는 증상도 있다. 예를 들어 뷔페식당에서 자기 자리를 잃어버리거나 주차한 곳이 가물거린다. 심하면 매일 오가는 동네나 아파트 단지에서도 길을 잃는다. 더 악화하면 집 안에서 화장실을 못 찾기도 한다. 또 발음이 이상해지거나 음식 또는 물을 삼키는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기도 한다. 차를 타고 내릴 때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걸을 때 자꾸 뒤처지거나 종종걸음을 보인다.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사실과 다르게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다고 믿거나(부정 망상), 누군가 자신의 물건을 훔쳤다고 하며(도둑 망상),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이 있다고도 하며(피해 망상), 집에 있으면서 자신의 집으로 가야 한다며 집을 나가려고 한다(집 망상). 없는 것을 보고 듣는 환각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그 외에 초조·공격·불안·화냄·토라짐·우울증 등의 증상을 보인다. 드물지만 행복감에 빠져서 항상 웃고 다니는데 심지어 장례시장에서 웃다가 눈총을 받기도 한다.

뇌는 크게 대뇌·소뇌·뇌줄기(간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뇌와 척추를 이어주는 뇌줄기는 생명과 관련이 있다. 소뇌는 균형 감각을, 대뇌는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을 담당한다. 대뇌와 소뇌가 망가지면 의미 있는 생각을 못하는 상태가 되는데 흔히 ‘식물인간’이라고 부른다. 대뇌, 소뇌는 물론 뇌줄기까지 손상돼 심장만 뛰는 상태를 일반적으로 뇌사 상태라고 한다.

치매는 대뇌와 관련이 있다. 대뇌를 위에서 보면 오른쪽과 왼쪽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오른쪽 뇌는 그림, 블록 쌓기, 노래 부르기, 길 찾기, 시각적 기억 등을 담당하며, 왼쪽 뇌는 말하기, 읽기, 쓰기, 셈하기, 언어적 기억을 관장한다.

대뇌를 옆에서 볼 때 이마에 해당하는 앞부분이 전두엽(이마엽)이고, 뒷부분을 후두엽(뒤통수엽), 그 중간을 측두엽(관자엽), 머리 윗부분을 두정엽(마루엽)이라고 한다. 전두엽은 판단, 운동 기능을 담당한다. 후두엽은 촉각·청각·시각 등 감각을 받아들이는 부분이다. 후두엽은 외부 정보를 받아 전두엽으로 넘겨준다. 전두엽은 그 정보를 판단하고 어떻게 반응할지를 결정한다.

 

알츠하이머·뇌경색이 치매 원인의 90%

대뇌에서도 전두엽이 치매 증상과 관련이 깊다. 전두엽에는 부위별로 동기센터, 기획센터, 충동조절센터가 있다. 동기센터는 의지력을 담당하므로 이 부위가 손상되면 매사에 의지가 없고, 게을러지고, 외출·운동을 피하며 멍한 상태가 된다. 은퇴한 사람이 이런 증세를 보이면 은퇴 우울증인가 하고 오인하기 십상이다. 계획·판단·실천을 담당하는 부위인 기획센터가 망가지면 계획·판단을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변하며 융통성도 사라진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고집불통이 된다. 충동조절센터에 이상이 생기면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욕을 한다. 주변 사람들은 은퇴 후 무시당해 화를 낸다고 오해한다.

왜 치매가 생기는 것일까. 사회·경제·인종·지역·연령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생기는 치매는 병이 아니다. 여러 원인으로 두통이 생기는 것처럼 치매도 여러 질병으로 생긴 증상이다. 치매를 일으키는 병은 약 50가지나 된다. 퇴행성 질환인 알츠하이머(60%)와 혈관성 질환인 뇌졸중(30%)이 대부분이다.

알츠하이머는 뇌에 노폐물(아밀로이드 베타)이 끼면서 생긴다. 수많은 뇌세포는 연결망으로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데, 그 연결망 사이에 아밀로이드 베타가 끼면서 연결망이 끊어진다. 이 물질은 주로 생각하거나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뇌피질)에 쌓인다.

뇌피질 중에서도 측두엽이나 해마에 생기면 기억력이 떨어지고 물건이나 사람 이름을 잘 잊는 증상이 나타난다. 또 두정엽에 이 물질이 끼면 방향감이나 계산 능력이 떨어진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정상인에게도 생길 수 있다. 주로 생기는 사람은 고령자, 여자, 저학력자, 뇌를 다친 사람 등이다. 과거에는 사람이 죽은 후에야 부검을 통해 아밀로이드 베타가 생긴 것을 살펴봤지만 지금은 뇌 사진을 찍어 확인할 수 있다. 아밀로이드 베타가 관찰되면 치매 위험률이 높다는 징조이며 언젠가는 알츠하이머로 발전한다.

세계 학자들은 이 물질을 없애는 약을 개발했다. 약을 환자에게 반복 투여했더니 아밀로이드 베타가 줄어드는 것이 입증됐다. 그러나 치매 증상은 개선되지 않았다. 학자들은 이 약으로 치매 전 단계(경도 인지 장애)에서 증상이 개선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UC버클리 대학 뇌과학자들은 최근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아밀로이드 베타가 체내에 축적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65~81세의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120개 단어를 기억하게 한 후 8시간 푹 자게 했다. 다음 날 아침 뇌 사진을 검사한 결과 단어를 생각해내려고 할 때 뇌의 해마보다 전두엽 피질이 활성화됐다. 또 아밀로이드 베타 값이 큰 사람은 수면의 질이 낮고 기억하는 단어 수가 절반 이하로 매우 적었다. 잘 자는 것만으로도 기억 장애를 억제할 수 있다는 게 이 연구팀의 결론이다.

혈관성 질환은 대부분 뇌졸중의 한 종류인 뇌경색(뇌혈관 막힘)을 의미한다. 혈관에 기름이 끼거나 고혈압이 있으면 혈액이 혈관에 강하게 부딪히면서 상처를 만든다. 피부에서 피가 나면 피딱지가 생기듯이 뇌혈관에도 피딱지가 생겨 혈관을 막는다. 혈관 중에서 큰 혈관(심장에서 뇌로 올라가는 경동맥)이 막히면 전체 뇌에 피가 공급되지 않아 위험해진다. 신경과 의사가 청진기를 환자의 목에 대보기도 하는데, 큰 혈관이 막혀 피가 힘겹게 지나가면서 쉭쉭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즉시 수술로 기름기나 피딱지를 제거해야 한다.

평소 병원 문턱에도 가보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는데 재수가 없어서 뇌혈관이 막혔다고 환자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그동안 몸속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몸은 버틸 때까지 버텨준 것인데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작은 혈관이 반복적으로 막혀도 치매(피질하 혈관성 치매)가 생긴다. 뇌 사진에도 찍히지 않을 정도로 가는 혈관이 막히면 뇌 사진에는 하얀 점처럼 나타난다. 여러 곳이 막히면 작은 점이 뭉쳐 덩어리로 보인다. 손상되는 뇌세포가 적어 자각 증상이 없어서 이를 무증상 뇌경색이라고 한다. 초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치매까지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학자들이 혈관이 지저분해지는 원인을 찾아보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흡연, 심장병, 비만, 운동 부족으로 나타났다.

이런 것들이 밝혀지면서 치매 환자가 100명이라고 가정할 때, 술을 끊는 것으로 11명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학자들은 결론 내렸다. 금연으로 14명, 뇌 손상 예방으로 1명, 우울증 관리로 8명, 고혈압 관리로 5명, 당뇨병 관리로 3명, 비만 관리로 2명, 꾸준한 운동으로 13명 등이 치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치매의 절반은 예방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기타 치매 증상은 엉뚱한 경우로 나타나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심한 치매 증상을 보인 한 할머니는 병원 진단 결과 뇌에서 양성 종양이 발견됐다. 이 종양이 뇌를 눌러 치매와 같은 행동 장애가 나타난 것이다. 그 할머니는 종양 제거 치료를 받은 후 멀쩡해졌다. 또 다른 할머니는 종종걸음을 걸어서 치매로 보였다. 그런데 검사해보니 수두증으로 판명 났다. 뇌에 물이 차서 두뇌를 압박한 것이다. 물을 빼는 수술로 완치됐다. 머리를 자주 부딪히면 작은 핏줄이 터져서 출혈이 생기는 데 이 피가 고여 뇌를 압박하는 경막하출혈도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많은 사람은 치매에 걸려 사랑하는 가족에게 부담을 주는 일을 두려워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평소 뇌피질과 뇌세포 연결망을 튼튼하게 만들어놓는 일이다. 운동해서 체력을 키우듯이 뇌 손상 저항력을 기른다고 이해하면 쉽다.

 

평소 삶이 투영되는 치매 증상

정상인의 뇌피질 두께를 100이라고 할 때, 70~80으로 얇아질 때까지는 증상이 없다가 50~60이 되면 증상이 나타난다. 평소 전두엽 뇌피질을 110 이상으로 두껍게 만들어놓으면 치매에 걸려도 증상이 가볍게 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대목동병원 연구팀이 2010년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 장애 환자 60명에게 1년 동안 운동 치료를 했더니 대부분 인지 기능이 좋아졌고 그 가운데 16명은 치매로 진행되지 않았다. 정지향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세포를 연결하는 가지가 두꺼우면 인지 기능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약, 운동 치료 등으로 그 가지를 두껍게 만들어 인지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60대 여성은 몇 해 전 삼성서울병원 기억장애클리닉을 방문했다. 오전에 있었던 일을 오후에 기억하지 못하고 방향 감각까지 떨어진 중증 치매 환자로 진단됐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계산 능력이 뛰어났다. 수십 년 동안 동네 슈퍼를 운영하면서 돈 계산이 몸에 밴 것이었다. 계산과 관련된 뇌 신경망이 두꺼워졌기 때문에 치매에 걸려도 이른바 계산 신경망은 상대적으로 유지된 것이다. 이 사례는 세계 의학계에 보고될 만큼 큰 의미가 있다. 일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치매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우자와 사이가 나빴던 사람이 치매에 걸리면 그동안 억울했던 감정이 나와 상대방에게 소리 지르고 싸우려고 한다. 평소 고집이 세거나 화를 잘 내던 사람은 치매 후 그런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뇌피질이 얇아지면서 그 아래에 있는 감정 신경망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평소 웃고 긍정적으로 살았던 사람은 끝까지 웃고 긍정적인 성격을 보인다. 치매에 걸려도 주변 사람을 힘들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이를 ‘예쁜 치매’라고 이름 붙였다.

평소 긍정적인 사고를 습관으로 만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잠자리에 들어서 오늘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며 긍정 또는 부정 평가를 해본다. 만일 10명 중 3명만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면 자신의 긍정 점수는 30점이다. 점수를 매일 높이려고 노력하다 보면 100일 후에는 이것이 습관이 되고 뇌가 변하기 시작한다.

과거 노망이나 망령이라고 치부했던 치매는 현재 예방 가능한 병으로 간주된다.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면 치매에 걸리지 않을 수 있고, 치매에 걸리더라도 증상이 예쁘게 나타난다.

 

치매 상담은 어디서 할까 

보건복지부와 국립중앙치매센터가 운영하는 치매상담콜센터(1899-9988)다. 치매 환자의 증상, 진행 단계에 따른 정보를 받을 수 있다. 의료·복지 기관 출신자 및 치매 전문 교육을 수료한 치매 상담사가 24시간 대기한다. 또 홈페이지(www.nid.or.kr 또는 www.edementia.or.kr)에서 치매예방법 자료와 동영상을 내려받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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