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으로 어린이집 109개 지을 혈세 날렸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7.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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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전국 재보선 경비 집행 내역’ 입수·분석…쏘나타 1만대 수출 효과 2197억원 낭비

2011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사퇴함으로써 서울 시민들은 226억원을 들여 시장을 뽑는 선거를 한 번 더 해야 했다. 국공립 어린이집 11개를 더 만들 수 있는 돈을 정치인들의 정치놀음으로 허무하게 날려버린 것이다. 매년 두 번씩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는 잠룡들에겐 기회이고 정치 신인들에겐 등용문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차기 대권 주자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도, 정치 신인 안철수를 여의도에 입성시킨 것도,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순천 혁명의 주인공으로 만든 것도, 정치판에서 벗어나 있던 천정배 의원을 호남의 기대주로 만든 것도 모두 재보선이었다. 시민운동을 하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권 후보로 부쩍 큰 데도 오세훈 전 시장의 사퇴에 따른 재보선이 디딤돌이 됐다.

그러나 정치인에겐 기회인 재보선이 그 지역 유권자들이 낸 세금을 털어가 지방 재정을 궁핍하게 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재보선은 유권자가 아니라 그야말로 ‘정치인’을 위한 선거인 셈이다.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거나 당선자가 부정부패를 저질러 다시 치러지는 선거비용을 그 지역 유권자가 대고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치러진 모든 재보선의 경비 집행 내역이 담긴 ‘재보선 관리비용 관리 현황 자료’를 입수해 내용을 분석했다. 해당 기간 동안 들어간 경비는 도합 2197억원에 달했다.

2011년 오세훈 시장은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내건 것이다. 당시 민주당(새정치연합의 전신)뿐 아니라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일각에서도 “주민투표에 들어가는 비용만 120억원”이라며 반대했지만, 오세훈 시장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며 주민투표를 강행했다. 그 결과 오 시장은 투표율이 적정선을 넘지 못해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선거를 앞두고 수차례 “임기를 채우겠다”고 했던 오 시장의 외침은 공염불이 됐다.

 

서울시 무상급식 예산 695억의 절반 이상 써

오 전 시장은 물밑 행보로 자신의 몸값을 키워오다 내년 총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직 사퇴 후 그는 재기를 꿈꾸지만 그 대가로 서울시는 혈세를 퍼부어야 했다. 2011년 10월 서울시는 서울시장을 뽑는 선거를 다시 치렀다. 이때 들어간 돈은 226억2200만원이다. 서울시에 국공립 어린이집 11개를 지을 수 있는 돈이다.

오 전 시장이 시장직을 걸고 반대했던 무상급식에 소요될 서울시 예산은 연간 695억원이다. 그런데 오 전 시장 사퇴에 따른 주민투표와 재보선 비용으로 무상급식 1년 예산의 반을 훌쩍 넘는 346억원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재보선은 주로 어떤 경우에 치러지게 될까. 우선 오 전 시장과 같이 개인적으로 정치적 승부수를 던지기 위해, 혹은 다른 기회를 노리기 위해 직을 내던지고 나가는 경우가 있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는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2012년 도지사직을 사퇴한 바 있는데, 이로 인한 선거에 78억3000만원의 경남도 예산이 들어갔다. 당시 경남도지사직에 대한 재보선은 대선과 함께 치러졌으나 이런 경우에도 해당 지역에서 일정액을 부담하게 된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지역에 재보선 비용을 물려주고 중간에 그만두는 당선자들의 경우 임기를 마치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향후 선거에서도 그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선자가 불법 선거운동 및 각종 범죄 혐의 등으로 당선 무효형을 받았을 때도 재보선이 치러진다. 재보선 사례 중 가장 많은 경우다. 2004년 우근민 당시 제주도지사는 선거 때 상대 후보였던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가 축협중앙회장 시절 축협에 5100억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허위사실을 공표해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로써 그는 고향인 제주도에 19억원의 재보선 비용을 안겼다.

공교롭게도 서울시 선출직 교육감들은 모두 당선 무효형을 받았다. 2008년 7월 최초로 교육감 직선제로 당선된 공정택 전 교육감은 당선되자마자 “초등학교에 ‘수우미양가’를 부활시켜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런데 2009년 억대 차명 계좌를 재산 신고에서 누락한 혐의로 기소됐고 당선 무효형을 받아 교육감 지위를 상실했다. 이후에도 서울시교육청 간부들로부터 1억4600만원의 뇌물을 상납받고 교원 부정 승진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되며 ‘교육 비리 백화점’이라는 오명을 썼다.

이어 당선된 곽노현 전 교육감 역시 상대 후보를 매수한 혐의로 징역 1년형이 확정돼 당선 무효형을 받았다. 이에 따라 173억1600만원의 추가 선거비용이 들어가게 됐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조희연 현 교육감 역시 상대 후보였던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의혹을 제기했다가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5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아직 항소심이 진행 중이지만, 어쨌든 서울시교육감 재보선 탓에 상당액의 서울시 예산이 낭비됐다.

 

지방선거 재보선 비용은 모두 지자체 부담

당선자의 사망으로 부득이하게 다시 선거가 치러진 경우도 있다. 이는 불가항력적인 것이기도 할뿐더러, 본지가 약 13년 동안의 재보선 실시 사유 관련 자료를 들여다본 결과 그런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후보자 개인에게 과오가 있거나 개인의 정치적인 목적을 이유로 끝까지 임기를 채우지 않아 재보선이 실시된 경우가 대다수였다.

지난해 6·4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당선 무효형을 받은 당선자가 적지 않다. 현재 6·4 지방선거 당선자들 중 36명이 소송에 휘말려 있다. 이 중 당선 무효형을 받은 이는 모두 16명이고 그 가운데 하학열 고성군수는 당선 무효형이 확정됐다. 위에서 언급한 조희연 교육감과 권선택 대전시장 등도 당선 무효형을 받고 재판을 진행 중이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물러나야 한다. 현재 대전시는 약 6700억원의 채무를 안고 있다.

총선 재보선 비용은 국고로 충당하지만 지방선거 재보선 비용은 해당 지자체에서 부담하도록 돼 있다. 예컨대 서울시장 재보선에 들어가는 비용은 서울시 비용으로 충당해야 한다. 때문에 재보선은 지방 재정을 악화시킨다. 가뜩이나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의 현실을 감안할 때 재보선에 들어가는 비용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재보선은 비용 문제만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 지자체장 및 교육감의 부재는 행정 공백 사태를 낳는다. 전임 시장이 추진하던 공약 사업들 역시 올스톱된다. 시장 자리가 비면 부시장이 대행을 맡기는 하나, 이들은 대부분 현상 유지에만 힘쓸 수밖에 없다. 결국 후보자의 공약을 기대하고 밀어줬던 지역 유권자들은 불필요한 비용만 쓰게 되는 꼴이 된다. 실행하다 만 공약은 엎어지고 또다시 혈세 낭비 논란을 부른다.

이처럼 문제가 많다 보니 지난 7월1일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선 연 2회 실시해온 재보선을 1회로 줄이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은 법사위를 거쳐 7월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인데 큰 어려움 없이 통과되리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이다. 재보선으로 낭비되는 행정력 및 지역 혈세에 대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다.

 

 

 

당선 무효자들, 선거비용 펑펑 써놓고 ‘배 째라’ 

선거는 시작부터 끝까지 돈이다. 명함 및 플래카드 제작, 차량 운행 등 아무리 합법적 테두리에서 선거를 치르더라도 기본적으로 수십억 원씩 돈이 들어가게 돼 있다. 개인 돈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정치권의 설명이다. 그래서 우리 선거법은 출마자들이 일정 득표 이상을 하면 선거비용을 보전해주도록 하고 있다. 특히 당선한 경우엔 전액을 보전해주는데 당선 무효형을 받으면 받았던 지원금을 모두 토해내야 한다.

그런데 이 돈에 대한 환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선관위는 직접적인 징수 권한이 없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 비용을 반환하지 않으면 해당자 주소지 세무서에 징수를 위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몇 년이 지나도록 돈을 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사저널이 이번에 입수한 ‘당선 무효자 보전비용 반환 현황’에 따르면, 자진 납세를 하는 비율은 매우 낮았고, 오랜 기간 동안 징수가 진행 중이거나 아예 돈이 없어 징수 불능인 상태인 사람도 많았다.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은 이 돈을 반환하지 않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가 재판장들의 전원 일치로 또 한 번 패배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돈을 제대로 반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 전 교육감이 당선 무효형을 받은 것은 2009년이다. 그런데 확인 결과 올해 6월1일 기준으로 당선 무효형을 받은 지 6년이 흘렀지만 반환해야 할 돈 28억8500만원 중 6000만원만 반환했다. 전체의 2%만 반환한 것이다. 그 뒤를 이어 당선된 곽노현 전 교육감 역시 마찬가지다. 35억3700만원 중 0.4%에 해당하는 1300만원만 반환했다. 나머지 액수가 언제 반환될지는 기약할 수 없다. 재보선이 낳은 또 다른 ‘혈세 도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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