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MC’ 유재석도 홀딱 넘어갔다
  • 하재근│문화평론가 ()
  • 승인 2015.07.0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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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께 JTBC 예능 프로 출연…지상파 방송사들의 ‘추락’ 방증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유재석이 드디어 종합편성 채널(종편)인 JTBC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한 것이다. 오는 8월 방송을 목표로 현재 준비 중이라고 한다. 과거 KBS에서 <해피투게더>를 통해 호흡을 맞췄던 윤현준 PD와의 인연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윤 PD는 지금 JTBC에서 <비정상회담>과 <크라임씬2>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많은 방송인이 종편으로 갔지만 국민 MC로 불리는 유재석과 강호동은 최후의 보루였다. 이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 지상파 PD들의 마지막 자존심이란 이야기까지 있었다. 요즘 상황이 좋지 않은 강호동에겐 종편행을 모색해보라는 조언도 간간이 있었지만, 설마 유재석이 이렇게 빨리 결단하리라곤 예측하기 어려웠다. 김구라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빠르다”고 했다.

ⓒ 연합뉴스

종편이 출범할 때, 자리 잡으려면 최소한 3~4년이 걸릴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한두 회사는 사라질 것이라고들 했었다. 예측은 빗나갔다. 종편은 예상보다 빨리 성장했고, 지상파 방송사는 생각보다 빨리 무너져내렸다. 국민 MC 유재석의 종편행은 종편이 이제 지상파급이 되었음을, 혹은 지상파가 종편급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제 전면전이다. 그동안 지상파 방송사들은 1부 리그, 후발주자인 케이블TV와 종편은 2부 리그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젠 그런 구질서가 와해됐다.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무너지자 춘추전국 백가쟁명의 시대가 도래한 것과 같다. 지상파 방송사의 절대적 아성이 무너지고 모든 방송사가 계급장 떼고 콘텐츠로만 무한 경쟁하는 시대가 왔다. 질서는 가고 혼돈이 온다.

유재석, 비지상파로의 돌파구 모색하던 상황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PD로는 최초로 TV 부문 대상을 받은 이는 바로 나영석 PD다. 한때 KBS PD였지만, 지금은 CJ E&M 소속이다. 그는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같은 히트작을 냈다. 지상파 입장에선 이것이 한 사람의 특출한 재능과 운 때문에 발생한 우연적 사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와 연관 있다는 점에서 특히 뼈아프다. 많은 사람이 지적한다. 지상파 방송사였다면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는 아예 제작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예능인과 아이돌을 적당히 세트로 구성하는 기존 관습, 또 게임이나 러브라인 등 정해진 성공 공식을 따르는 관행이 <꽃보다 할배>나 <삼시세끼>와 같은 느슨한 프로그램을 결코 용납할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지상파에선 불가능해 보이는 모험을 케이블TV는 감행했다. 그 결과는 케이블TV의 ‘퀀텀 점프’다. 순식간에 뛰어올라 지상파 방송사의 목줄을 위협하게 됐다.

CJ E&M은 <응답하라> 시리즈와 <미생>으로 드라마계도 뒤흔들었다. 지상파 미니시리즈들은 요즘 시청률도 저조하거니와, 젊은 세대에서의 화제성이 너무 떨어져 점점 트렌드에 뒤처진다는 느낌마저 준다는 게 문제다. 특히 지상파 방송사와 틀어져 tvN에서 방영한 <미생>의 ‘초대박’은 지상파 방송사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요즘 지상파는 케이블TV와 종편 따라 하기 모습을 보일 때가 많은데, KBS는 <응답하라> 시리즈와 <미생>의 성공 공식을 본떠 나름으로 야심 찬 시도인 <프로듀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KBS치고는’ 상당히 성공적이지만, <미생>보다는 못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신동엽은 종편과 케이블TV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당대 톱 MC 반열에 올라섰다. 전현무·김구라·김성주도 비(非)지상파에서 활약하며 입지를 다져나갔다. 반면에 유재석은 최근 답보 상태에 있었다. 여전히 원톱 국민 MC이긴 하지만 그 위세가 과거와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도마저 성과가 변변찮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러니 자연스럽게 비지상파로의 돌파구를 모색하다가 JTBC행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JTBC 예능 프로그램 .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 JTBC 제공

JTBC, 젊은 층 어필 전략으로 타 종편과 차별화

유재석의 선택에 PD와의 개인적 인연이 작용했다고 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원톱 국민 MC의 비지상파행이라는 방송사적 사건인데 개인 인연으로만 이루어졌을 리가 없다. 당연히 마땅한 곳을 고르고 골랐을 것이다. 그런데 왜 JTBC였을까.

종편은 종일 뉴스 편성과 중년층 타깃의 ‘떼 토크쇼’로 시청률을 급신장시켰다. 이로 인해 지상파가 낮 뉴스를 토크쇼 형태로 강화하기도 하고, 종편 패널들이 지상파를 잠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기는 어려웠다. 특히 트렌드를 주도하는 젊은 세대는 종편을 외면했다. 최근 TV조선이 이런 부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격적 재편을 시도한다는 소식이다. 그럼에도 종편이 젊은 층의 사랑까지 받기엔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것은 보수 일변도의 정치적 편향성 때문이다. JTBC는 바로 이 부분을 해결했다. 손석희를 보도부문 사장으로 영입한 이후 젊은 네티즌 사이에선 지상파 방송사보다도 더 큰 신뢰가 나타나고 있다. 한때 CJ E&M이 정치적으로도 네티즌의 신뢰를 받을 뻔했지만, 이재현 회장 구속 이후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에 급급하다는 의혹이 일었다. CJ E&M이 꺾인 후엔 JTBC가 젊은 네티즌에게 어필하는 방송사로 급부상했다.

여기에 예능 쪽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한때 김구라가 지상파 복귀를 위해 거쳐가는 프로그램처럼 보였던 <썰전>은 이제 토크쇼의 새 영역을 개척하면서 김구라의 본진이 되었다. <히든싱어>도 파란을 일으켜 MBC <복면가왕>의 선구자가 되었다. <비정상회담>은 지식인들에게까지 인정받는 토크쇼이고 <마녀사냥>은 연애 토크쇼의 새 장을 열었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셰프 폭풍의 진원지다. 종편은 드라마의 무덤이었지만 유독 JTBC만은 <밀회>와 같은, 인기와 작품성 모든 면에서 당대의 정점을 찍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밀회>의 제작진이 다른 종편과 손을 잡긴 어려울 것이다. 기본적으로 종편들이 보여주는 보수 편향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JTBC만 다르다. 다른 종편이 보수 편향, 중년 이상 시청자층 편향, 정치 뉴스 편중의 문제를 안고 있다면 JTBC만 여기에서 벗어나 글자 그대로의 ‘종합편성’을 지향하고 젊은 층과 친화적인 전략으로 나갔다. JTBC는 과거 TBC의 위세를 재현하려 한다. 지상파급 수준으로 올라서는 것이 목표인 셈이다. 이런 점도 유재석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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