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동네 골퍼’ 됐다
  • 안성찬│골프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6.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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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 최근 경기 85타…6월19일 US오픈 성적에 관심

“우즈가 왜 저래, 아마추어같이~.”

메모리얼 토너먼트 3라운드 경기를 시청한 골퍼들은 타이거 우즈(미국)의 경기를 보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90타를 오가는 보기 플레이어들은 슬며시 웃음을 지었을 터. “나도 양파(더블 파)를 안 하는데. 천하의 ‘골프 지존’이 쿼드러플 보기를 다 하고”라면서.

상황은 이렇다. 3주 만에 그린에 복귀한 우즈는 이 대회에서 프로 중 가장 많은 5승을 달성해 이번 대회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6월7일(한국 시각) 미국 오하이오 주 더블린 뮤어필드빌리지 골프코스(파72·7366야드)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총상금 620만 달러) 3라운드.

8번 홀(파3)에서 티샷한 볼이 그린 오른쪽 벙커로 날아갔다. 벙커에서 샷한 볼은 그린 너머 벙커에 다시 빠져 더블 보기. 9번 홀(파4)에서는 세컨드 샷이 그린 앞 해저드에 퐁당하며 더블 보기. 전반 9홀에 버디 없이 보기와 더블 보기를 2개씩 범했다. 후반 들어서는 더 망가졌다. 11번, 12번, 14번 홀에서 보기를 했고 15번 홀에서 버디를 잡았지만 17번 홀에서 다시 보기로 무너졌다.

6월7일(현지 시각) PGA 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 4라운드에서 그린을 나서는 타이거 우즈(미국)의 표정이 어둡다. ⓒ AP 연합

악몽은 18번 홀(파4·468야드)에서 벌어졌다. 우드를 잡고 티샷한 볼이 개울의 워터해저드로 날아갔다. 1벌타를 받고 친 세 번째 샷도 짧아 그린 앞쪽에 떨어졌다. 핀과 40야드도 안 되는 네 번째 샷에서는 볼이 오르막 그린 중간에 떨어진 후 뒤로 굴러 페어웨이로 내려갔다. ‘빽 도’였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샷이 나온 것이다.

다섯 번째 어프로치 샷은 그린 앞의 벙커로 들어갔다. 여섯 번 만에 그린에 볼을 올렸고, 2퍼트로 막아 스코어카드에는 4오버파인 ‘8’자가 적혔다. 꼴찌로 가기 위한 수순이었을까. 결국 우즈는 4라운드 14오버파 302타(73-70-85-74)를 쳤다. 첫날 공동 85위로 출발해 다음 날 공동 64위, 셋째 날 단독 71위, 최종일 71명 중 단독 71위였다.

최종일에는 홀로 플레이를 했다. 2명이 한 조를 이뤄 티오프를 했는데, 우즈는 꼴찌로 짝이 없어 혼자 경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도 새벽부터 몰려든 1000여 명의 갤러리가 우즈의 뒤를 따르며 환호했다.

‘연인’과 이별 후 미스 샷에 ‘짜증’

우즈는 경기를 마치고 “팬들에게 감사한다. 지금의 샷 난조는 스윙을 바꾼 탓이다. 초반에는 새로운 스윙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즈는 또 “US오픈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상황이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US오픈에서 우승할 준비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우즈가 6월18일 개막하는 US오픈에서 부활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성은 반반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스윙이 안정되면 좀 더 나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윙이 나아진다고 원하는 스코어를 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골프는 멘탈이 90%라고 한다.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우즈가 보여준 플레이는 기술보다는 정신적인 문제가 더 컸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는 자신이 원하지 않은 ‘스키 스타’ 린지 본(31·미국)과의 결별이다. 본과 열애 중일 때는 조그마한 실수에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메모리얼 대회에서는 미스 샷을 한 뒤에 화를 참지 못하고 클럽으로 땅을 후려치는 등 짜증을 냈다.

본과 우즈는 2013년 연인으로 발전한 이후 최근에 관계가 끝났다. 5월7일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앞두고 이별 통보를 받은 우즈는 “잠을 못 잤다. 정말로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는 우즈가 섹스 스캔들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것과 일치한다.

우즈는 지난 2009년 11월 올랜도 인근 아일워스 자택 근처 도로에서 자신이 몰던 차로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이 교통사고는 우즈의 불륜 사실을 안 아내 엘렌 노르데그렌(35·스웨덴)과 싸운 이후에 발생했다. 이 일이 섹스 스캔들로 번지면서 투어를 중단했다. 6년 만에 결혼은 파경을 맞았다. 3년여 동안 절치부심하던 우즈는 2013년 복귀해 본과 사귀면서 안정을 찾았고, 시즌 3승을 거두며 부활에 성공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부상 재발로 투어를 중단했다가 12월에 그린으로 돌아왔다. 새 코치에게 스윙 교정을 받았다. 지난 4월 마스터스에서 공동 17위에 오르며 재기의 신호탄을 쐈다. 하지만 연인의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와 함께 또다시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이 호랑이’ 다시 포효할 수 있을까

우즈가 80타대 타수를 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덕분에 4라운드 300타 이상을 치는 신기록(?)을 수립했다. 아마추어 시절인 1994년 네슬레 인비테이셔널 1라운드에서 80타를 쳤다. 프로 전향 후 2002년 비바람이 부는 디 오픈 3라운드에서 81타를 쳤다. 올 시즌 들어 피닉스 오픈 2라운드에서 82타를 때렸다. 그리고 이번 메모리얼 대회 3라운드에서 최악의 스코어 85타를 기록한 것이다.

78타 이상 친 것은 22년 동안 13차례다. 17세이던 1993년 닛산 오픈에 초대받아 2라운드에서 처음으로 78타를 쳤다. 지난 3년간 78타 이상 스코어를 낸 것이 여섯 번이다. 

우즈의 경기력은 이전과 다르다. 70타대 후반을 치더라도 다음 날 회복해 60타대 초반을 바로 쳤다. 2002년 디 오픈 3라운드에서 81타를 친 후 최종일에 65타를 쳐 20위권으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이어 출전한 뷰익 오픈에서는 우승했다.

이런 결과를 놓고 봤을 때 1차적으로 경기력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맞다. 이는 툭하면 부상에 시달리고, 언제부턴가 가뭄에 콩 나듯 대회에 출전하면서 감이 떨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는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해줄 연인도 없다. 스스로 모든 걸 감내해야 한다. 팬들이 그가 정상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우즈도 잘 안다. 이것이 심리적 압박감으로 작용해 제 기량을 발휘하기 쉽지 않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어프로치 샷에서 뒤땅을 칠 때 혹시 국소 근육 긴장 이상증의 일종인 ‘입스’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나타냈으나 이는 기우였다. 이번 메모리얼 대회에서도 짧은 거리의 어프로치 샷을 제대로 핀에 붙이지 못하고, 벙커 샷도 엉뚱한 방향으로 한 것을 보면 입스와는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의 말대로 아직 새로 익힌 스윙이 완벽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주 바뀌는 스윙 코치, 이로 인한 잦은 스윙 개조, 체력 저하, 몸에 무리를 주는 스윙 탓에 각종 부상에 시달리는 것이 우즈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PGA 투어 통산 79승을 올린 우즈. 메이저 대회에서만 14승이다. 46세 노장으로 마스터스를 제패한 잭 니클라우스(75·미국)와는 4승 차다. 우즈는 12월이면 만 40세가 된다. 니클라우스와의 마지막 승부가 아직 6년이나 남아 있다.

우즈가 US오픈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40% 안팎의 페어웨이 안착률과 그린 적중률을 무조건 60%대로 끌어올리고, 퍼트 수도 크게 줄여야 한다. 무엇보다 그린 주변에서의 미스 샷을 없애야 한다. PGA가 아닌 미국골프협회(USGA)가 운영하는 US오픈은 코스를 무척 까다롭게 세팅한다. 또한 워싱턴 유니버시티 플레이스의 챔버스 베이 GC의 코스는 그 자체가 링크스를 많이 닮아 공략하기가 쉽지 않다. 볼이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숲속으로 들어가거나 듬성듬성한 억센 풀과 모래흙에 파묻힌다. 

올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우즈는 ‘부활이냐, 몰락이냐’의 귀로에 서게 된다. 우즈를 아끼는 팬들은 그가 더는 이빨 빠진 종이 호랑이가 아니라 전성기 때의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포효하는 진짜 호랑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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