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허허로운 마음에 달이 뜬다
  • 조은정│미술평론가 ()
  • 승인 2015.06.1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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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까지 이대박물관에서 열리는 <조선백자전>

 

조선백자를 떠올리면 마음속에 달이 뜬다. ‘달항아리’가 머리와 마음속에 깊이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위와 아래를 따로 만들어 결합한 제작 방식 탓에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다. 가운데 가로로 균열이 있기도 한 조선백자는 보름달과 같이 한민족의 원형으로 존재한다. 오죽하면 고고학자 김원룡이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한다. 느끼지 않는다면 아예 말을 맙시다”라고 말했을까.

수화 김환기는 전쟁 통에도 마루 밑에 넣어두고 온 백자를 그리워했다. 그래서 마당이며 광 속에 조선의 백자를 즐비하게 늘어놓고 살았다. “파리의 르 코르뷔제의 건축이나 정원에 우리 이조자기를 놓고 보면 얼마나 어울리겠는가. 르 코르뷔제의 예술이 새롭듯 이조자기 역시 아직 새롭다”고 말했던 그의 캔버스가 백자 그 자체의 색을 재연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조선백자의 다양성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2016년 1월30일까지 이화여대박물관에서 열리는 <조선백자전>이 반가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형태나 크기, 문양이 제각각인 조선백자의 다양성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 진열실의 1, 2층에 빼곡히 들어찬 조선백자는 당시의 생산 시스템이나 문화적 향유 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쓰임새를 우선시하는 공예지만, 때로는 회화 작품에 견주어 손색이 없는 순수 작품을 보여주기도 한다. 박제화한 백자 접시는 깨가 송송 뿌려진 나물 반찬을 담던 것이었음을, 준엄해 보이는 사발은 뭉게뭉게 김이 오르는 국을 퍼 담았던 생활 기물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수려한 그림이 가득 들어찬 청화백자의 바탕은 한지와 같은 흰빛이었음을 또한 알게 한다.

백자청화 송죽인물문 호, 백자철화 포도문 호, 백자철화 매죽문 시문 호(왼쪽부터) ⓒ 조은정 제공

조선은 성리학적 이상에 의한 제도로 사회를 운영했다. 예(禮)의 실천은 여러 의례를 통해 가시화됐다. 제도를 실행하기 위해 베풀어진 연향이나 제사에서는 많은 기물이 필요했고, 다종다양한 백자도 그런 제도의 결과였다. 전시는 조선 왕실의 백자, 백자에 담긴 출생과 죽음, 문인문화의 유행, 무늬로 보는 상징과 의미, 지방 백자 등 크게 5개 주제로 구분돼 있다.

고려청자의 당당한 매병을 연상케 하는 백자항아리, 연봉오리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뚜껑 있는 항아리, 여섯 잎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잔에 이르기까지 왕실에서 사용한 순백색의 그릇들은 당당하며 단단한 느낌을 준다. 담담한 형태는 기능에 충실했고, 수복(壽福) 등의 글씨나 국화 문양은 미적으로 과하지 않다. 자연에 의거해 절제와 순리를 따르던 정치 이념이 일상생활의 기물에도 반영돼 있는 것이다. 접시나 대접의 굽바닥 안쪽에 있는 천(天)·지(地)·현(玄)·황(黃) 같은 글자들은 제작 연도와 사용처를 명시한 이른바 ‘정부 재물 조사표’의 관리 체계를 보여준다.

웃전·대전 등의 글씨를 통해 청화로 불수감 무늬가 그려진 임금님의 국그릇과 찬을 비우면 ‘수(壽)’가 드러나는 접시를 볼 수 있다. 값비싼 귀금속을 박아넣지도,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으로 채우지도 않았던 조선 왕실의 검약한 생활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구우면 희게 되는 태토와 투명유 덕분에 백자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치 한지를 만들면 나타나는 자연의 색처럼 백자는 빈 공간을 제공한다. 그 자연스러운 바탕에 붓을 들어 그려넣은 세상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이상과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공간에서 나뭇짐을 진 동자와 이야기하는 신선, 좌탁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시상에 잠긴 인물은 모두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자연과 함께하고 싶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꿈꾸던 삶을 보여준다. 어깨가 당당하고 굽이 높은 항아리에 그려진 정경은 숙달된 화가가 아니면 구현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회화다. 김홍도나 장승업 같은 전문 화사들이 정기적으로 분원에 가서 백자에 그림을 그렸던 시대였기에 가능한 작품인 것이다.

도자기 같은 생활용기의 특징은 회화와 장식, 공예와 회화가 함께하는 종합 예술을 가능케 했다는 점이다. 사군자가 사방에서 자신의 절개를 드러내는 항아리의 어깨에는 여의두문이 장식돼 있다. 이 장식은 이상의 꿈과 현실의 장식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이 된다. 때때로 그릇의 입체적인 형태로 인해 평면인 종이나 비단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3차원의 공간도 나타낸다.

백자가 일상의 기물인 것은 그 장식에서 증명된다. 입맥이 선연한 투각붓꽂이, 용이 승천하는 필세, 복숭아 모양 연적에 이르기까지 기능과 함께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은밀한 욕망이 노출돼 있다. 용이 그려진 온갖 병과 항아리, 봉황이 그려진 항아리와 접시, 펄떡이며 튀어오르는 잉어가 장식된 접시, 밤송이가 톡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밥그릇은 사소한 개인의 식기에 걸맞은 일상의 욕망과 소원을 보여준다.

지방에서 만들어진 백자는 전시의 별미

지방에서 만들어진 각종 백자들은 이번 전시의 별미로 해체주의적인 붓질을 보이는 <용준>은 지나는 사람의 발길을 붙들어 맨다. 지네같이 꿈틀거리는 몸체의 용은 수염도 구불구불해 곤충을 닮았고, 위에서 내려다본 눈에 옆에서 본 주둥이를 가진 용은 입체파를 연상시킨다. 이 천진한 시각에 눈물이 나도록 웃다가 어차피 본 적 없는 용을 그르다 맞다 할 이유도 없음을 눈치 채며 순간 숙연해진다. 전란 후 그릇은 도공에 의해 잘 만들어졌지만 그림을 그릴 화사가 파견되지 못하는 지방에서 누군가에 의해 그려진 용과 화초들은 닮음에 목적이 있지 않고 문양의 본질을 노출한다.

전통의 상징이자 한국인의 정서와 동일시된 조선백자, 그것은 달항아리로 비유된 근대기 식민사관에 의한, 혹은 그것을 극복하고자 다른 성격으로 풀어낸 허상의 이미지였다. 실상이란 때로는 허망할 정도로 누추한 경우가 많지만 조선백자는 본디 다양하고 화려한 것임을 이 전시는 보여준다. 이미지를 넘는 실상, 허상을 넘어선 실재를 통해 조선의 산업과 관리 체계를 반영하는 백자 감상의 마지막 장면은 조용히 불빛이 잦아드는 공간에서 완성된다. 조선 전기 포도문이 유려한 항아리를 둘러보며 완상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는 장치는 이 전시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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