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 홀대해 메르스 사태 터졌다
  • 서인석 |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 ()
  • 승인 2015.06.1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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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가가 대책본부 좌지우지…복지와 분리해야

메르스 공포가 대한민국을 뒤덮은 지 벌써 3주가 지나가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뉴스의 대다수를 메르스(MERS) 기사가 채우고 있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사이 대한민국의 의료제도에 대해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됐다.

정부·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들은 우리나라 의료제도에 대해 하나같이 우수한 의료 기술과 더불어 짧은 기간 적은 비용으로 전 국민의 건강보험을 달성했다고 자랑한다. 실제 우리나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해당국의 의료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인 기대 여명과 영아 사망률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고 수준이며, 암 환자 5년 생존율과 같은 높은 의료 기술을 나타내는 지표 역시 의료 선진국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의료비 지출이 OECD 국가 평균 9.3%보다 적은 7.6% 정도를 쓰면서도 최고의 의료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 있는 국민, 의료인 그리고 정부까지 모두 불만과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라는 말이 대한민국 의료에도 예외는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영국·독일은 보건부 별도 구성

이번 메르스 사태의 원인은 여러 언론에서 비교적 잘 지적했다. 우리나라 보건 당국의 국가 단위 전염병에 대한 무기력함, 1차 의료기관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안감으로 하루 만에 2~3곳의 의료기관을 옮겨 다니는 것이 가능한 닥터 쇼핑, 그리고 의료 전달 체계의 부재는 한 지역 의료기관 내 감염을 전국 의료기관 감염으로 확산시켰다. 또한 하루 평균 15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감염 관리 수가 등 이른바 저수가 정책은 병원이 적정 의료 인력을 고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결국 보호자가 직접 간병을 하게 됨으로써 병원 감염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거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고스란히 의료계에 전가하는 정부와 일부 지자체, 그것에 동요하고 공포심을 극대화시킨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일부 언론, 가족이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만으로 등교한 학교에서 돌아가라는 이야기까지 듣는 사회적 분위기는 자신과 가족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의료진의 사기를 꺾고 너무나 큰 실망을 주었다.

비전문가가 대책본부를 좌지우지하는 현실, 질병 및 전염병 예방 관리 등 민간에서 하지 못하는 공중보건 사업을 해야 하는 시·도 의료원과 보건소는 메르스 같은 국가 단위 전염병이 발생한 이후에도 무기력했다. 또 민간 의료 자원에서 감염내과 전문의를 차출해 메르스 의심 환자에 대한 책임과 대책을 모두 민간 의료기관에 맡겼다. 격리병실과 음압병동 역시 대부분 민간 의료기관에 있다.

그 결과 최전선에서 의무와 책임을 떠안은 민간 의료기관과 의사·간호사·보건의료인들은 중노동과 막중한 책임감뿐만 아니라 만에 하나 실수가 발생할 경우 전 국민의 비난을 받는다는 두려움 속에서 메르스와 싸운다. 일선에서 진료하면서 메르스를 진단하게 되는 경우 의료기관을 폐쇄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6월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 입구에 설치된 메르스 의심 환자 격리센터 앞을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지나가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메르스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면, 앞에서 말한 우수한 의료 수준에 비해 대한민국 의료와 안 어울리는 사실이 있다. 바로 메르스와 마찬가지로 호흡기계 질환으로 공기 감염의 대표적 전염병인 결핵의 발병률과 사망률이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1위라는 것이다. 과연 정부는 우리나라의 높은 의료 수준에도 불구하고 발병률과 사망률 1위라는 오명을 얻고 있는 결핵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얼마나 고민을 해보았을지 의문이다.

의료계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삼는 것 중 하나는 보건복지부가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가 하나로 묶여 이뤄졌기 때문에 국민에게는 익숙할 수 있으나 미국·영국·독일·뉴질랜드·캐나다·타이완 등은 보건부를 별도로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1955년 보건부와 사회부를 통합해 보건사회부를 구성한 이래 계속 보건과 복지를 같은 부처에서 담당하고 있다. 또한 2015년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 53조4000억원 가운데 보건의료 예산은 2조2800억원으로 4.3%에 불과할 정도로 대다수 예산이 복지 쪽에 편중돼 있다.

의료계는 전문적인 계획과 정책 집행을 위해 보건부의 독립 및 전문 인력 채용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예산의 96%가 기초연금, 기초생활수급자 지원 등 사회복지 분야에 쏠려 있다 보니 보건의료는 우선순위에서 처질 수밖에 없다.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 대다수가 관련 교육을 받은 공중보건의이며 ‘진짜 공무원 역학조사관’은 2명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은 질병관리본부 및 역학조사, 보건예방 사업에 많은 예산을 투자한다. 이런 투자는 이번 메르스 같은 국가전염병이나 결핵 퇴치, 특히 건강 형평성이 떨어지는 경제 취약층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게 만든다.

의료 제도·체제 고칠 때 됐다

더불어 지역 보건예방 사업의 주력인 도심지의 보건소와 보건지소는 지자체장의 전시 행정 도구로 전락했다. 이걸 막기 위해서는 지금의 1차 의료기관과 경쟁하는 일반 진료 행태에 집중된 기능을 바꿔야 한다. 진정한 보건소의 역할인 상시 지역 건강 파수꾼으로서 전염병 감시 및 공중보건 의료와 교육 사업에 전념해야 한다.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계절 전염병, 장애우를 위한 방문 지원 서비스, 여성 및 모자 보건 등 수요가 많다. 이런 수요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일반 진료에 집착하고, 평소 눈에 띄지 않는 질병 감시 업무와 국가 단위 전염병 예방 사업에 소홀했기 때문에 메르스나 결핵과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필자가 토론회 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사회 제도 내에 속한 사람의 행태를 도덕적 잣대로 보지 마라. 그 사람은 그 제도 내 최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제도는 반드시 실패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로 의료제도의 문제점으로 인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현상’ 해결에 집착하면 문제점은 매년 반복될 것이다. 더 이상 결과물인 ‘현상’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본질적 문제인 ‘의료제도’ 자체를 고칠 시기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번 메르스 사태를 보고 향후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정리해본다. △보건부의 독립 및 필요한 영역에 보건의료 전문가를 배치해야 한다 △공중보건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보건소·보건지소는 일반 진료를 최소화하고 전염병 감시·관리·예방 및 공공의료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 △의료기관의 위험과 감염을 관리하기 위해 저수가를 적정 수가로 개선해 충분한 인력을 고용하고, 국민의 건강을 보장해야 한다. 다인실 운영, 보호자 간병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의료 전달 체계를 확립하고 의료기관 내 다른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의료기관 간 이동을 필요 수준으로 통제해야 한다 △정부와 언론은 보건의료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신뢰하고, 불필요한 공포심을 유발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정부는 실현 불가능한 싸고 좋은 의료제도를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OECD 선진국 수준에 맞는 적정 가격의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의료제도로의 전환을 조속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하루빨리 보건부가 독립돼 전문가에 의한 올바른 보건의료 정책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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